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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 93주기 추모식' 구리시 교문동 망우리공원에서 열려

 

일제강점기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답게 살았던, 조선의 산야를 푸르게 만들고, ‘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를 집필한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1891~1931)의 제93주기 추모식이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소재 망우리공원에서 열렸다.

 

한국과 일본이 합동으로 지낸 이날 추모식은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이동식 현창회 회장, 일본대사관 카와세 가즈히로 공사(광보문화원장),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한국외교협회 신봉길 회장,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운영위원회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원 김영식 위원장,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사무처장과 구리시와 중랑구 망우리공원 문화해설사, 소리꾼 장사익 등 30명 남짓이 함께했다.

이날 이동식 현창회 회장은 "우리가 아사카와 다쿠미를 존경하고 사모하고 추모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울 때 와서 많은 애정을 쏟아주고 대변해줬기 때문이다. 한일 두 친구가 만난 자리가 더 널리 알려져서 바다 건너에서도 이런 마음을 같이 나누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축원한다"라고 말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획기적인 '잣나무(오엽송) 노천매장법'이라는 양묘법을 고안해 조선의 소나무의 양묘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그래서 민둥산이었던 산하를 푸르른 상록수로 입히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임업연구원(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원장을 역임한 조재명 원장은 “우리나라의 인공림 37% 그의 작품이며, 광릉국립수목원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1931년 식목일 행사를 준비하다가 과로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그는 죽기 전에 남긴 '조선식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묻혔다가 1942년 망우리공원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른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는 임업에 종사하면서도 조선만의 독특한 작은 밥상인 소반과 목공기구 등 민예와 도자기를 수집해 1929년 ‘조선의 소반(朝鮮の膳)’과 1931년 ‘조선도자명고’를 출간했다. 이 책들에는 아사카와가 오랫동안 수집한 조선의 공예와 도자기의 명칭, 형태와 기원을 조사해 정리한 책이다.

그에게는 7살 많은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1884∼1964)와 우애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도자의 신’으로 부를 정도로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았다.

그의 묘역에 홍림회가 세운 공덕비가 있고,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청화백자추초문각호를 본 따 만든 탑이 있다. 그 탑을 형인 노라타카가 디자인했으며, 1945년 “묘에 핀 들꽃 우리에게 바치고 고이 잠들게 언젠가 찾아와 줄 사람 있을 테니”라고 시를 적기도 했다.

[ 경기신문 = 신소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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