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보기가 쉽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도시에서도 지붕 추녀에 대롱 대롱 매달린 고드름은 말할 것도 없이 도랑이나 웅덩이에 언 얼음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냇가와 강이 얼면 개구장들이 뛰어 노는 놀이 마당으로 변해 얼음판은 그야말로 동삼(冬三)의 백미였다.
창세 신화 창세가(創世歌)에 보면 미룩과 석가가 얼음 얼리기 내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은 성천강(成川江)을 얼어 붙게 하기로 한다.
먼저 석가는 입춘(立春) 제사를 지냈지만 성천강은 얼어 붙지 않았다. 이를 지켜 본 미룩은 동지(冬至) 제사를 지냈는데 강 전체가 꽁꽁 얼어 붙어 내기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이런 고사도 있다. 이성계가 아직 젊었을 때 사냥을 나갔는데 별안간 숲 속에서 범이 나타났다. 활쏘기와 담대하기로 이름난 그였지만 갑작스러운 터라 말을 몰아 도망 칠 수밖에 없었는데 살얼음이 낀 냇가가 나타났다. 건너자니 빠질 것이 뻔했지만 뒤쫓아 오는 범도 피해야하기 때문에 강으로 뛰어 들었는데 빠지지 않고 강을 건너 목숨을 건졌다. 이는 큰 인물임을 안 하늘이 도와 준 천우신조(天祐神助)였던 것이다.
옛날 나라 안에 흉사가 있으면 얼음이 얼지 않았다고 한다. 신라 내물왕(奈勿王) 33년 4월과 6월에 경주에 지진이 났는데 그해 겨울 얼음이 얼지 않았고, 실성왕(實聖王) 5년 7월에 메뚜기가 극성을 부렸는데 얼음이 얼지 않았다. 조선시대엔 한강 얼음을 떠서 동빙고(東氷庫)와 서빙고(西氷庫)에 보관했다가 이듬해 해동하면 제일 먼저 어전에 바쳤다. 얼음을 관리하는 관아를 빙고전(氷庫典)이라 하고 빙부(氷夫)들의 식량 조달을 위해 설정한 토지를 빙고전(氷庫田)이라 했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관계를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또는 빙탄상반(氷炭相反)이라고도 한다. 포박자(抱朴子)에 “숯이나 얼음은 제 능력을 자랑하지 않아도 얼음은 스스로 차고, 숯은 스스로 뜨겁다.”고 했다. 우리 사회엔 얼음과 숯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