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祖) 중종 때 명신으로 이름을 날린 양연(梁淵)은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호연지기를 키운 것으로도 회자된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양연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끼니 잇기조차 어려울 때이니 학용품인들 오죽했겠는가.
양연은 그의 장인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품위를 지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점잖게 시 한수를 올렸다.
책상위에 등잔 불빛이 어둡고/ 벼루에는 물빛이 맑구나/ 관성이 내소원이고/ 저선생도 바라네. 서찰을 받은 장인은 사위의 궁색한 형편을 헤아려 지원했다. 이 시에서 등잔 불빛이 어둡다는 것은 등잔기름이 없다는 얘기고 벼루에 물빛이 맑다면 먹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관성(管城)은 붓이고 저선생(楮先生)은 종이다. 자신의 학업진도도 알리면서 품위를 지킨 지원요청이다.
이승훈, 정약종과 함께 영세를 받은 것이 들통 나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은 조선후기 실학자이면서 개혁주의자였다. 소위 실사구시로 조선을 개혁하는데 앞장섰다. 그가 유배 생활할 때 찾아 온 큰 아들로부터 작은 아들의 근황을 듣고 서찰을 보내어 심기의 일단을 표하며 삶의 자세에 대해 훈계했다. 정약용은 서찰에서 “닭을 기른다고 들었는데 닭을 기르는 데에도 우아하고 비속한 것, 맑고 탁한 것의 구별이 있다. 남보다 달라야 될 것이다. 닭이 살찌고 기름지며 윤기가 흘러 다른 집보다 낫게 하고 하는 것 등이 독서한 사람의 생활 태도다”라고 했다.
살기 어려워 비록 닭 한마리를 기를지언정 긍지와 품위를 유지하라는 아버지로서의 간곡한 훈계다. 소위 가난하더라도 난(亂)하지 말라는 유가의 가르침을 리마인드 시킨 것이다. 모두가 가난을 즐기는 선비정신의 실천이다.(貧而樂)
얼마 전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떳떳치 못한 삶이 드러나면서 나라 안팎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불똥이 청와대에까지 튀었다. 참 딱한 인생이다. 듣기만 하면 무엇 하나 실천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