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극과 극을 좋아한다. 어정쩡한 상태를 경멸조차 한다. 그러다 보니 강경해지고 토론의 여지가 없다.
요즈음 중도(中道)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를 듣는 국민들도 중도에 대해 신선감 마저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극단적인 다툼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중도와 동의어랄 수 있는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공자의 논어에서도 등장한다. 공자는 덕을 논하면서 중용의 덕을 지극한 것으로 쳤다. 치우치지 않는 덕이야 말로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또 논어 요왈편에서도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기중(其中)을 잡으라고 했다. 유교에서 중은 정치하는데 있어서나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시 여겼다.
또한 중도라는 말은 불교에서도 중요시 여긴다. 석가모니는 극단의 길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며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택할 것을 제자들에게 권했다. 유(有)와 무(無)를 비롯 감정에 나타나는 희로애락 등에 있어서도 극단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과 더불어 좌우대치가 극에 이를 때 김구 선생에 의해 중도라는 말이 나온다. 통일한국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다. 근대 정치에서는 과거 박정희 정권시절에 이철승씨에 의해서 중도라는 말이 나온다. 유신독재에 투쟁만 하지 말고 참여하여 중도통합하자는 논리였다.
물론 두 사람의 주장이 실현되지 못했다. 한국 사람들의 성품이 중도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도 또는 타협을 얘기하면 회색주의자로 몰려 곤혹을 치루는 것이 우리나라 전반의 사회분위기다.
얼마 전 이부영 열린우리당 대표가 사퇴하면서 극단의 폐해를 토해 반향을 일으켰다. 정치력의 소생을 위해서는 극단ㆍ과격주의와 투쟁해야 된다는 것이다. 회색주의에 힘을 실어 줄 때가 되었다. 교조주의적인 사고를 버릴 때가 된 것이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