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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칼럼] 올림픽의 민주화는 아직도 멀다

 

파리 올림픽. 지난 금요일 드디어 막이 올랐다. 흩날리는 빗속에서 센 강의 다리 위를 수놓은 프랑스 삼색기와 축구선수 지단이 아이에게 건넨 올림픽 성화, 셀린 디옹이 부른 ‘사랑의 찬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레이디 가가의 파리 ‘리도쇼’와 아야 나카무라의 ‘자자’와 ‘푸키’ 메들리는 첨단쇼를 연상케 했다.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지켜본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면은 아마도 배를 타고 등장한 각국 선수단 이었을 것이다. 이 선수단은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어 올림픽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음을 감지케 했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이 열렸을 때 출전한 여자 선수는 2%에 불과했다. 총 997명의 선수 중 22명의 여성은 테니스, 요트, 크로켓, 승마, 골프, 5개 종목에 출전했다. 이 중 골프와 테니스만 여성 전용 종목이었다. 올림픽 헌장에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역할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수준에서 여성의 진흥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실천은 아직도 요원하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 비율이 30%를 넘는 데는 약 100년이 걸렸다. IOC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연맹 및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협력해 올림픽에서 여성 종목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12년 여자 복싱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추가되면서 그해 열린 런던 올림픽은 모든 종목에 여성이 출전한 최초의 대회였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참가 선수의 45%가 여성이었다. 이 비율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48.9%로 증가해 가장 성 평등한 대회가 됐다. 이처럼 올림픽에는 또 다른 이야기, 즉 성차별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올림픽이 왜 차등의 역사로 범벅된 것일까?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1912년 6월, 눈 하나 깜짝 않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올림픽은 남성들을 위한 대회여야 하며, 여성의 박수와 (…) 남성 스포츠의 엄숙하고 주기적인 고양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

 

사회학자 루보(Catherine Louveau)에 따르면, 쿠베르탱은 여성을 “남성의 동반자이자 가족의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제한해 생각했다. 물론 이 남작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시대적으로 남성지배 체제였다. 그렇다 쳐도 그 시대에도 진보적인 남성들은 존재했건만 쿠베르탱은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올림픽 초기에 그가 만든 문화는 쉽게 변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남녀비율이 동수가 된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이 숫자의 평등 뒤에 가려진 얼룩은 어찌할 것인가. 루보는 “평등은 남성처럼 대우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스포츠 분야에서는 이와 거리가 멀다. 여전히 남성이 지배하는 관리 체제이고 출신에 관한 불평등도 지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지금껏 여성 IOC 위원장을 본 적이 있던가. 여성은 차치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의 위원장을 본 적도 없지 않은가. IOC는 이 차등의 역사를 언제 개선할 것인가? 개막식을 보며 던져보는 질문이다.


네티즌 의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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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필칼럼중독
    • 2024-08-05 14: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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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여성 종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도 뒤늦게 추가됐다든가, 엄연히 남성 종목과 여성 종목이 나눠져 있는데도 여성 선수의 비율이 최근에 와서야 겨우 반수에 가까워졌다든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취급하지 못할 정도로 양성 평등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나 봅니다. 잘 모르고 있었던 내용인데 주필님이 시원하게 지적해주셔서 좋습니다. 위원장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고 미국도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눈앞에

  • 푸른하늘
    • 2024-08-02 13: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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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개막식이란 초유의 색다른 타이틀을 기획하여 프랑스 파리 하늘에 화려한 성화 기구를 쏘아 올리며 지구인의 축제를 선포한 지 일주일이 지난 요즘, 밤잠을 설쳐가며 올림픽의 진한 감동의 장면을 찍고있다 . 특히 어제 신유빈의 8강전은 딱 영화의 한 장면, 벼랑끝까지 몰린 그 절망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같은 승리는 결승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준 스토리텔링이었다. 살펴보면 어디 감동적이지 않은 경기가 있겠는가. 하여튼 남녀 평등 비율의 참가를 주창하신 교수님의 뜻이 이뤄지고 인욕의 댓가로 더 않은 금빛 열매를 기대한다

  • ㅇㅇ
    • 2024-07-30 21: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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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올림픽 보면서 성차별도 그렇고 동서양 차별도 눈에 띄더라고요

  • 이성희
    • 2024-07-30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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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한 깨달음이 있는 칼럼 잘 읽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도 끊임 없이 거론되고 있는 문제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장석
    • 2024-07-29 20: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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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의 의한 평화를 내세운 강권주의 전쟁정복사~^^이렇듯 인류 역사는 힘의 논리가 압도하는 호전광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제는 그 종말을 고하고 끝장을 내야 한다.
    봉합과 통합의 가치기준이 되는 공정과 정의, 차이와 차별을 분별 포용과 상생의 열린사회, 평화는 상호 존중, 호혜, 인류정신이 발현하는 지덕체의 총합이다. 스포츠는 육체를 단련 몸으로 체득하는 공정의 평화축제이다.
    개벽세상에서 남성의 강인함보다 여성성의 부드러운 포용의 리더십은 평화세상을 열어가는 절대적 시대정신이자 인류의 희망메시지다. 이루는 그날까지...

  • 유평공
    • 2024-07-29 19: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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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헌장에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역할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수준에서 여성의 진흥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실천은 아직도 요원하다.
    가족, 민족, 인류의 평화번영과 인간의 존엄은 근본을 알고 원칙을 지키며 실천하는데 있다. 차별없는 세상, 남녀평등의 원칙은 사람사는 세상의 근본이 된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공명정대한 가치실현을 이루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있다. 반칙 변칙이 아니라 원칙있는 승리, 원칙있는 패배를 통해 승복하는 감동있는 올림픽을 희망한다.

  • 여담
    • 2024-07-29 15: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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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변하면 올림픽에 대한 인식또한 달라져야한다고 봅니다
    남녜평등이란 문구는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너무나 당연해서 이슈가 될 이유가 없어져야 하는데
    지금도 올림픽에서는 차별이 보인다면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 평화누리
    • 2024-07-29 1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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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개막식의 화려한 광경아래 남녀의 평등한 참여의 역사를 살펴 장차 더 아름다운 올림픽을 바라보게 하는 서사! 감동입니다

  • 오사카 일상
    • 2024-07-29 10: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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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타나고 보여지는 현상으로만 판단하고는 한다. 그래서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펼쳐졌던 이채로은 개막식과 대한민국에 메달 소식에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주필님의 글을 통해 올림픽에 있어서의 성평등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알게됨으로 인하여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음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도 이처럼 다른 관점에서 되돌아 보면 새롭고 신나는 하루가 될 수도 있다는 일깨움을 주신 글에 감사하며 오늘도 화이팅을 외쳐본다!

  • 고고
    • 2024-07-29 10: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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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글을 읽고서 올림픽에도 아직 유리천장이 존재함을 느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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