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00여 년 전 공자는 인사원칙을 간명하게 밝혔다. 바른 사람을 발탁해서 쓰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바른 사람이란 것은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읽는다. 합당한 인사란 주위의 여론과 시대적 요청 등을 모두 아우르는 것을 일컫는다. 공자는 이같이 인사할 때 바르지 못한 관리는 마음을 고쳐먹게 되고 이를 본 각지의 인재들이 등용을 바라며 백성들은(衆) 임금을(인사권자) 신뢰한다는 것이다.
조선조(祖)때 인사를 독특하게 한 임금으로는 개국 초기 왕권을 확립한 태조 이성계의 차남인 방원 태종을 꼽는다.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한 군벌 및 토호제압과 개국공신 배척을 비롯한 세자 책봉은 왕조국가의 인사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태종의 국가기초 다지기 인사로 치적이 많은 세종이 탄생되었고 500년 사직을 지킬 수가 있었다.
반면에 연산군은 편집된 인사로 도중하차, 죽임을 당했다. 이극돈을 전왕 성종실록 작업의 당상관으로 임명 무오사화를 일으킨 것을 필두로 임사홍을 끌어 들여 갑자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인재를 버렸다. 잔혹한 악정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연산군은 폐위되고 사약을 받았다. 잘못된 인사의 대가치곤 혹독했다.
근대에 들어 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 쌓인 인사로 4ㆍ19의거를 자초했다. 대한민국을 연 대통령으로서 국부의 추존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말기에 반듯치 못한 인사로 비명횡사, 후일 대통령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요즈음 지자체의 정실인사, 편중인사가 회자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요직은 인사권자의 측근들이 싹쓸이 하고 측근들이 시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비난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해를 산다는 그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교훈을 곱씹어 볼 일이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