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댁 세도가 불길처럼 융성하던 날/드높은 누각엔 풍악 소리 울렸고/가련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배는 고파 빈 통이요,/집은 다북쑥/그러다 하루 아침에 가문이 기울면/그제야 백성들을 부러워한다./흥망과 성쇠는 때마다 바뀌는 것/누가 감히 하늘의 뜻을 어기랴.”
허난설헌의 시다.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에 태어나 1589년(선조 22) 27살 때 강물에 몸을 던져 한과 고뇌로 가득찬 젊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는 양친과 두 오빠 그리고 동생들이 하나같이 문장가였던 것처럼 역시 신동 소리를 들을만큼 문장에 뛰어났다. 15살 때 김성림과 결혼했지만 11년만에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녀는 애정이 없는 남편과 고된 시집살이에 더해 자식들의 잇딴 죽음, 오빠의 귀향살이까지 겹치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절망을 시로 적었다. 시만이 그녀를 지탱해주는 힘이자 벗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죽자 시댁에선 그녀가 남긴 시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오늘날 남아있는 213수의 시는 친정에 남겨 두었던 것을 소설‘홍길동’의 작가이면서 동생인 허균이 보관해온 것이다. 1606년 허균과 친분이 있던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허난설헌의 시를 읽고 감동한 나머지 명나라로 가지고 가서 ‘난설헌집’을 펴냈다. 이로써 그녀의 유작시는 한권의 시집이 됐고, 우리나라로 되돌아와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또 1711년(숙정 37)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돼 문학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 시단에는 여성 시인이 적지않다. 허난설헌의 문학혼과 관련 짓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여성 시가 하루가 다르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스물이라 일곱 송이 부용꽃은 붉은 빛 다 가신채/서리찬 달 아래 떨어지네.” 시인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예감하는 것일까. 허난설헌이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 같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