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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미국이라는 나라에 떠도는 사탄의 흔적

162. 롱 레그스- 오즈 퍼킨스

 

미국 캐나다 산 영화 ‘롱 레그스’는 요령부득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이야기인가를 잠깐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는 데는 영화가 시작된 지 57분이나 지나서이다. 주인공 리 하커(마이카 먼로)의 상관인 카터(블레어 언더우드)가 요약을 해 준다.

 

둘은 FBI 요원이고 리 하커는 신참이다. 마치 과거 조너던 드미 감독이 만든 ‘양들의 침묵’(1991)에서 팀장인 잭 크로포드(스콧 글렌)와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의 관계와 같다.

 

‘양들의 침묵’에서 둘은 버펄로 빌이라는 연쇄 살인범의 뒤를 쫓는다. 이번 영화 ‘롱 레그스’에서 리 하커는 카터와 함께 가족들만 골라 연쇄적으로 죽이고 다니는 일명 롱 레그스라는 이름의 살인범을 추적한다.

 

 

‘롱 레그스’는 기본적으로 ‘양들의 침묵’의 저예산 버전이고 여성 수사관의 캐릭터를 상당 부분 가져오되, 다소 비틀어서 가져온 작품이다. 그만큼 서로 같은 척, 사실은 상당 부분 다른 모습과 느낌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롱 레그스’는 그런 의미에서 ‘양들의 침묵’보다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2018)을 더 닮아 있다. 일종의 사탄 숭배(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영화, 사탄(학) 영화이다. 이런 영화에는 수많은 상징이 나오고 익숙하지 않은 계시록의 성경 구절이 나오기 마련이며, 색깔과 소리로 오컬트(심령)의 느낌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이게 사실상 상당히 서구적이고 기독교적이어서 작품을 내재적(內在的)으로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건 마치 우리의 무당 굿, 빙의(憑依)에 대한 이야기, 풍수지리, 사주 역술의 갖가지 문양 등등을 뒤섞어 놓으면 서구 기독교인들이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튼 팀장 카터는 신참인 리 하퍼가 사건의 미스터리를 척척 풀어 오는 걸 약간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이렇게 정리한다. “자, 자, 그러니까 1974년 1월 13일에 일가족을 죽인 롱 레그스란 인간이 20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살인극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이지? 그런 거라는 거지?”

 

 

영화는 오컬트의 환상과 미스터리, 실제 벌어졌음직한 살인극의 이야기를 오버랩 시키면서 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 속에 롱 레그스는 실재하는 인물로 나온다. 이 역할은 놀랍게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으며 그는 요즘 비교적 개성이 강한 작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 투혼을 다시 불사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2022년작 ‘피그’는 발군의 작품이었다. 케이지는 이후 24년까지 2년간 ‘올드웨이 : 분노의 추적자’ ‘렌필드’ 등 무려 10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 행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영화에서 케이지는 얼굴과 헤어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서인지 전혀 그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실제 사탄이 있다면 저런 스타일, 마치 하드 록커의 흉내를 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의 모습으로 나온다. 영화는 오프닝과 클로징 앞뒤로 록밴드 T-rex의 ‘집스터(Jeepster)’와 ‘겟 잇 온(Get it on)’을 사운드트랙 음악으로 사용한다. 일부의 사람에게 로큰롤은 악마의 음악으로 들렸다.

 

 

살인범 롱 레그스가 극 중에서 출현하는 방법은 마치 토마스 알프레드손의 뛰어난 드라큘라 영화 ‘렛 미 인’(2015)을 닮아 있다. 악마는 누군가 초대하지 않으면, 곧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상대에게 들어갈 수가 없다. 사탄에게는 늘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드라큘라든 악마든 연쇄살인자든 그 불행과 비극은 우리 자신들이 초래한 것이라는 얘기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거나 우리 사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탄론의 정치사회학이다.

 

 

첫 살인극이 벌어진 1975년과 다시 연쇄 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1995년은 미국으로선 특기할 만한 시대이다. 70년대는 베트남의 공산화와 닉슨의 하야, 강경 보수주의자 레이건의 등장을 앞두고 큰 혼란을 겪었으며 1995년은 빌 클린튼이 등장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자본주의의 극단적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됐던 시기였다.

 

미국이란 나라와 공간은 이제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고립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분위기가 영화 ‘롱 레그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FBI 팀은 의도적으로 단출해 보인다. 팀이나 기동타격대 같은 건 꿈조차 꿀 수 없을 정도로 보이지 않고 요원들은 거의 혼자서 탐문과 수사를 하며 다닌다. 리 하커는 철저히 혼자이며 그녀가 다니는 곳도 거의 집 한 채만 있는 농장의 외딴곳이거나 버려진 곳이다. 리 하커의 엄마 루스(알리시아 위트)도 혼자 살아가는 기독교 광신도이다.

 

 

엄마 루스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딸 리 하커에게 “너 요즘 기도 는 하니?”라고 묻고 딸이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한참을 낄낄댄다. 그리고 “기도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

 

엄마 루스는 리 하커가 좇는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키를 쥐고 있음이 나중에 드러난다. 1975년에서 1995년까지의 미국이나,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미국이나 문제가 되는 건 정치나 사회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종교에도 큰 이슈가 자리하고 있음을 영화 ‘롱 레그스’는 느끼게 해준다.

 

광신도들이 암약했고 사회 한구석에 버젓이 자리해 왔음을 보여 준다. 이들로부터 툭하면 튀어나오는 성경 구절과 그에 대한 강박이 사회를 이상하게 몰아 간 측면이 있다. 사회의 이상성과 종교의 강박증이 만나면 인간의 정신은 마비되고 왜곡된다. 살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클린튼 정부 때 텍사스 주 웨이코에 있던 다윗파가 FBI에게 체포, 충돌하는 과정에서 집단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시대의 어둠은 마치 사탄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듯 퍼지는 법이다.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롱 레그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마에게 지배당한다. 사탄은 (내부의) 동조자가 없으며 사람을 해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은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을 해하고 죽인다. 결국 사탄이 되는 건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탄화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인 셈이다.

 

 

오컬트 영화가 줄곧 만들어지고 있고 일부에서 나마 마니아 계층들에 의해 비교적 마니악(maniac)하게 향유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세상사가 이상하게 변형돼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긴,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 남성들이 민주당의 낙태권 주장에 반기를 들어 자신들 같은 이민자들이나 유색인 하층 노동자를 탄압하는 트럼프에게 오히려 많이들 표를 찍었다는 그 종교적 특이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 또한 사탄에 동조하는 현상일 수 있다.

 

‘롱 레그스’는 그런 정치적 은유를 담고 있는 영화일 수 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오스굿 퍼킨스는 그 옛날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이다. 영화 ‘사이코’에서 식칼 살인마로 나왔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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