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초월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동에 따른 충격이 온 나라에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잖아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국제 경제환경도 날로 강퍅해지고 있는 판이다. 정신을 똑바로 가누고 헤쳐 나가도 어려울 판에 이런 정변 사태라니, 땅을 칠 노릇이다. 정략적 관점을 넘어서는 지혜가 더없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 대다수의 생존과 직결되는 경제와 안보만큼은 빈틈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미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덮친 계엄·탄핵 정국의 소용돌이로 우리는 국가적 다층 복합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운 상태다. 외신들도 계엄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더 심해졌고 탄핵 불발로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쉽지 않지만, 정치와 경제 현안을 분리해 대응하는 슬기로 대외신인도의 급전직하를 방어해나가야 한다.
우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목전에 닥친 가장 큰 외생변수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 아래로 끌어내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쏟아진다. 느닷없는 메가톤급 ‘자폭 정치’로 인한 국정 마비 위기가 민생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국가안보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는 염려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두 번의 탄핵 정국을 경험한 불행한 나라다. 직시해야 할 현실은 성장기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리 경제는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제기됐던 2004년에는 3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인 2016년 4분기 민간 소비 증가율은 같은 해 2분기(0.8%)·3분기(0.4%) 실적에 뚝 떨어져 0.2%였다.
국제적인 안보 환경 또한 최악이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러-우 전쟁에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면서 휴전상태인 한반도의 위기 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북한이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상황에서 세계 여러 전문가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 전망하기 시작한 형편이다. 만에 하나 북한의 도발로 이 땅에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민생은 어찌 되고, 국민의 생사는 또 어찌 되는가.
이런 천만뜻밖의 소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정치는 엉망이었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은 도무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하릴없는 주도권 싸움으로 내홍을 악화시키며 지리멸렬해왔다. ‘시고도 떫은’ 졸장부 정치로 나라 정치를 하릴없는 격투기 판으로 이끌어 왔다.
국회 다수당 더불어민주당 역시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정부를 골탕 먹이기 위해 23차례나 탄핵을 감행한 일은 지나친 힘자랑이었다. 그 끝에 정부의 2025년도 예산안을 4조 원이 넘게 감액하면서 검찰·경찰의 활동비 등을 전액 삭감한 일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든 난도질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이슈에만 사생결단 권력 쟁패를 건 채로 국민을 무한 혼돈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대승적인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내년도 예산안부터,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을 발동시켜 합리적인 선에서 타결해야 한다. 국제 신인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준예산 편성만은 한사코 피해야 한다. 더 이상의 나라 망신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동은 국가원수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용납할 수 없는 월권 범죄로 읽힌다. 그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엄정한 책임추궁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이 경제난 쓰나미에 휩쓸려가거나 북한 핵 무력 앞에 절멸하는 비극을 막아내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차대한 과제다. 크게 보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국민의 삶을 걱정하고 실행하는 정치세력이 어느 쪽인지를 입증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