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나 질적거리는 진흙 위에 닭이 지나가면 대나무 잎새와 흡사한 발자국이 찍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눈 앞에 있는 발자국을 보면서도 닭이 지나간 적이 없다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 모르면 모를까 그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믿고 닭을 몰래 잡아 먹었을 것이다. 현금이 가득든 사과 상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왔는데도 자기는 사과를 받은 적은 있었어도 돈은 받은 적이 없다고 우긴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데도 아궁이에 불을 땐 적이 없다고 억지를 피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그들은 군불을 땔만큼 땐다음 벌건 숯불을 화로에 담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을 것이다. 요즘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면 이와 비슷한 인간들을 가끔 보게된다.
후한(後漢)때 양진(楊震)은 학식이 풍부하고 청렴결백해 관서공자(關西公子)라고 불리웠다. 그가 지방장관으로 부임하는 길에 창읍(昌邑)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그러자 창읍의 왕밀(王密)이 밤에 그를 찾아와 금덩어리 열개를 바쳤다. 양진이 단호히 거절하자 왕밀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염려말고 받으라고 했다. 양진이 이렇게 꾸짖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안다.” 일컬어 사지(四知)다.
비슷한 속담은 서양에도 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 “들판도 눈이 있고, 돌담에도 귀가 있다.” “신의 눈은 잠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하라.” 세네카의 말이다. “작은 언덕이 많은 들판에선 비밀을 말하지 마라.” 히브리 속담이다.
거짓말에 세금을 매기는 법은 없다. 대신 불명예가 파멸을 자초한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낙마는 그 본보기가 될만하다. 진실을 말하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거짓말하고 창피 당하는 것보다는 덜 어려울 것이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