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은 ‘비상계엄’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가 “따놓은 당상”이다. 어찌 됐든 새로운 정부에서 할 일은 엄청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반드시 청산해야 일과 급한 일과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 등이 있을 것이다. 민주제도가 정착되고 어느 정도 문화강국으로 부상한다고 생각한 대한민국이 하마터면 50여 년 전 독재국가로 돌아갈 뻔했다. 이 원인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찾아 청산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또다시 국민을 위협하여 권력을 찬탈하는 세력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근본적 원인 중 하나를 ‘교육’이라고 본다.
나는 초등학교 등굣길. 그 시간과 거리가 그렇게 싫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그 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였기에 학교 앞길이 일부만 포장이 되었고 많은 부분은 그냥 흙이어서 비가 오면 운동화가 빠져 쩍쩍 달라붙는 진창이 되었다. 사방에서 교문 앞으로 "몰려드는" 학생들의 등교하는 발걸음들이 바빴다. 여기서 강조하고픈 단어는 "몰려드는 바쁜 걸음"이다. 늦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우르르 몰려드는 나를 포함하여 "바쁜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그 풍경은 어린 내게 무언가 불안감과 조급증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니 그 불편한 느낌을 주는 주범은 단지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이 아니었고, 지각할까 봐 우려하는 걱정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또래들을 "경쟁"시키는 교육 제도였다.
이것을 이제 “생각하는 한 인간”으로서 숙고하면, 그 불편함의 핵심은 우리 모두를 파시즘으로 몰아붙인 당시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만들어 낸 환경이었다. 파시즘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무시하면서 집단으로서 다양성을 무시하며 “우열(優劣)을 나누고 경쟁시키고 그 안에서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내가 태어나서 1987년(민주화의 원년)까지 그런 파시즘의 세계에서 교육받고 성장했던 것이다. 내가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민주제도)를 위해 이바지하고자 약간의 노력 했다고 해도 내 안에는 파쇼적인 성향이 남아있다. 내가 대학 때 고딩인 동생의 어리석음에 대해 야단칠 때의 태도를 보면 소리치고 손을 올려 때리는(딱 한 번) 내 모습에서 파쇼적 독재자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민주제도의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내 모습이다. 윤석열 내란 과정에서 동조자들, 재판관들 안에서 많은 나를 본다. 권위주의적이면서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의 찌질한 인간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귀를 닫고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 그런 망조가 든, 그 자체로 만평이 되는 모습을 보여 준 이들이 있으니: 최근 희대의 파기환송 결정 조희대와 석열탈옥 방살롱 지귀연, 즉시항고포기 심우정이다. 아~이 파쇼적 구악들이 다 죽으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제도를 실현하는 사회가 될까? 아니면 그 파쇼들의 자손들이 또 파쇼가 되어 지속적 반민주적 사회를 만들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할 것인가? 이는 우리가 “지금 여기” 어떻게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의 민주시민들을 길러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을 침탈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육과 언론의 개혁이 시급함이 우리 시대에 조급증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