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주식시장을 교란시키고도 세금을 회피한 이른바 ‘불공정 탈세자’들에 대한 정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허위 공시로 주가를 조작하거나, 알짜 기업을 인수한 뒤 내부자금을 빼돌린 ‘기업사냥꾼’, 상장사를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일부 지배주주 등이 집중 타깃이다.
국세청은 “주식시장의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공정 거래로 이익을 챙기고도 납세의무를 회피한 27개 기업과 관련인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주식시장에서 반복되는 불공정 행위가 자본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내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최근 몇 년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5조 원 가까이 순매도하며 이탈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 같은 시장의 불신 배경에는 ▲허위공시로 시세차익을 노린 세력 ▲기업을 먹튀한 후 폐허로 만든 사냥꾼 ▲회사를 사유화해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한 지배주주 등의 반복적 행태가 있다고 봤다.
◇허위 공시로 400% 주가 띄운 뒤 ‘탈세’…투자조합 악용해 흔적 감춰
이번 세무조사 대상 중 9개 기업은 ‘무늬만 신사업’으로 허위공시를 통해 주가를 띄운 뒤 주식을 대량 매도해 수백억대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주가는 허위공시 이후 평균 64일 만에 400% 넘게 폭등했다가 급락했고,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됐다.
시세차익을 챙긴 세력은 친인척 명의의 ‘투자조합’을 동원해 주식을 분산 취득하고, 대주주 요건을 교묘히 피해 과세를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회사가 모집한 투자금까지 횡령해 고급 전세자금과 골프회원권 구입 등 사치에 사용했다.
◇알짜기업 인수 후 ‘횡령’…상장폐지·주가폭락 부른 기업사냥꾼
8개 기업은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됐다. 이들은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끌어온 뒤, 허위 자문료 지급, 계열사 명의 유용, 고가 소비에 자금을 전용하는 수법으로 기업을 껍데기만 남긴 채 떠났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기업은 상장 폐지되거나, 주가가 인수 전 대비 86% 이상 폭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남의 명의로 기업을 인수하고, 처벌 이후에도 제3자 명의로 또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악순환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장기업 ‘사유화’해 자녀 승계…증여세 탈루도
10개 기업은 지배주주가 상장기업을 사유화해 사익을 편취한 사례다. 이들은 자녀 명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내부 정보를 활용해 자녀 회사에 미리 주식을 매입하게 한 후 호실적 공시로 주가가 오르면 매각해 이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자산을 이전했다. 또 주주 배당은 하지 않으면서 가족에게는 고액 급여를 지급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했다.
한 사례에선 자녀가 보유한 비상장사 주식의 가치를 부풀린 뒤 상장사 지분과 맞교환해 경영권을 사실상 무상으로 이전한 정황도 포착됐다. 국세청은 이들 자녀들이 증여세 신고 과정에서 재산 가액의 92%를 축소 신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금융계좌 추적, 디지털 포렌식, 외환 자료 분석 등으로 이들의 자금 흐름과 재산 은닉 여부를 철저히 검증할 방침이다. 세금 부과 전이라도 재산 처분이 우려될 경우 사전 압류에 나서는 한편, 조세범칙 행위는 수사기관에 통보해 형사처벌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식시장을 기망해 부당한 이익을 얻은 뒤 납세의무까지 회피하는 불공정 세력은 끝까지 추적해 바로잡을 것”이라며 “향후에도 불공정 주식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유관기관과 협력해 지속적으로 세무조사와 제도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전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