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라는 상징적 고지를 향해 다가서고 있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2027년에 사상 처음 4만 달러 벽을 돌파하게 된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달성 시점은 1년 늦은 2028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지난해 3만 5223달러에서 올해 3만 7430달러로 늘어난 뒤, 2026년 3만 8947달러, 2027년 4만 52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새정부 경제성장전략’과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경상성장률 전망치를 근거로 한 계산이다.
정부는 경상(名目) 성장률을 2025년 3.2%, 2026년 3.9%, 2027년 3.9%, 2028년 4.0%, 2029년 4.1%로 제시했다. 이를 지난해 명목 GDP 1조8746억달러에 대입하고, 통계청 인구 전망을 적용해 도출한 수치다.
다만 이 같은 전망은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평균 수준인 1364원 선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올해 들어 9월 12일까지 평균 환율은 1413.6원으로, 정부가 전제한 수치보다 훨씬 높다.
특히 지난해 말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의 통상 압력까지 겹치면서 원화 약세가 심화됐다. 환율은 상반기 한때 1500원을 위협했고, 최근에도 1400원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만약 환율이 1390원 수준에 머문다면 2027년 1인당 GDP는 3만 9767달러에 그쳐 4만 달러 달성에 실패한다. 이 경우 2028년이 돼서야 4만 1417달러로 기준선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전망을 낮췄다. IMF는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한국의 1인당 GDP가 2029년 4만 341달러에 이르러서야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과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2027년 돌파를 전망했지만, 환율 불안과 성장 둔화 조짐을 반영해 수정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16년 처음으로 1인당 GDP 3만 달러를 돌파했다(3만 839달러). 이후 2018년 3만 5359달러까지 올랐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충격으로 2019~2020년 연속 하락했다. 2021년에는 경기 부양책과 수출 호조로 3만 7503달러를 기록했으나, 2022년 물가 급등과 금리 인상 여파로 3만 4810달러로 다시 후퇴했다.
따라서 4만 달러 돌파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국 경제의 위상과 국민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선진국 대열에서 ‘중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성장 경로 유지와 환율 안정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아 대외 변수에 취약한 만큼, 글로벌 경기 회복과 무역 환경 변화에 따라 전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경제 당국 관계자는 “성장세가 예상보다 꺾이거나 환율이 장기적으로 고공행진한다면 4만 달러 시대는 더 늦어질 수 있다”며 “정책적 일관성과 시장 안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