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종종 표면적 안정의 뒤편에서 틈이 벌어진다. 18세기 초 절대왕정 체제는 견고해 보였으나, 내부에서는 계몽사상이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19세기 초 빈 체제는 혁명과 전쟁 끝에 복구된 균형을 자랑했지만, 산업혁명과 민족주의의 확산은 왕정복고의 토대를 흔들었다. 20세기 초 베르사유 체제 역시 전후의 평화를 약속했으나, 그 아래서 자라난 경제 불안과 전체주의는 결국 참혹한 대재앙으로 귀결되었다. 공통된 흐름은 분명하다. 질서의 안정처럼 보였던 시기마다, 실은 다음 세기를 규정할 전환의 동력이 이미 누적되고 있었다.
2020년대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은 더 이상 주변적 갈등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한다. 단일 패권의 시대가 저물며 다극화가 본격화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조율할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 내부에서도 불신과 양극화가 깊어져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더 이상 자명한 전제일 수 없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20세기적 감각과 기준에 머무른 채 근대적 질서의 연장선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듯하다.
경제 영역에서도 균열은 체감된다. 글로벌 공급망은 팬데믹을 계기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세계화는 효율을 최적화하는 기제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대신 안보·기술·자원에 기반한 새로운 블록화가 진행 중이다. 산업 구조는 데이터·AI·반도체와 같은 지식 자산을 중심으로 전환 중이며 에너지 시스템은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비가역적 조건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과거의 성장 모델로는 더 이상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사회적 기반 역시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준으로 진입했고 대규모 자동화는 노동의 정의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공공성의 조건을 바꾸어 놓았으며 디지털 공간은 정보의 진위와 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혼란을 생산하고 있다. 나아가, 인간의 감각과 판단을 대체하는 기술의 확산은 ‘인간 중심 사회’라는 전제를 흔들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면 이는 분명하게 하나의 현상으로 읽힌다. 기존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는 듯하지만 그 내부에서 다른 시대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징후다. 1720년대, 1820년대, 1920년대가 그러했듯, 지금 이 시기 역시 격변의 전야다. 우리는 ‘변화가 시작된 안정기’를 지나 ‘안정이 붕괴하는 과도기’로 진입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한 적응이나 관리가 아니다. 전환의 방향을 규정하고, 새로운 질서의 규칙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국제 관계에서 규범과 기술 표준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경제 체제를 탈탄소·디지털 기반으로 재정렬하며, 사회 제도를 노동과 인구 변화에 맞게 재설계하는 과제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는 먼 미래의 선택지가 아니라 당장의 현실 요구다.
2025년은 21세기의 구조를 결정짓는 분기점이며, 기존 질서가 마지막으로 버티는 시기다. 흔들리는 기반 위에서 과거의 연장선을 붙잡는 것은 위험하다. 다음 시대를 규정할 조건은 우리가 모르는 새 발아래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움직임을 얼마나 정확히 읽고 어떠한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