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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 일지] 어느 철거민의 겨우살이

 

연말연시 사람들은 새해에 잘 될 거라고 응원했다. 나는 ‘고독이 축복이 될 때까지’라며 방에 흐리게 박혀있었다.

 

이곳 남한산성 밑 고골에는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주인이 버리고 간 개들이 들개라는 오명을 쓰고 쓰레기를 뒤진다. 빈집에 몸을 숨긴 길고양이들과 남은 몇 집은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고 있다. 멀쩡했던 마을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포클레인에 휩쓸려 전쟁이 지나간 것처럼 참혹하다. 그 틈을 이용한 고물상들은 창틀, 전선, 전등, 정원수, 심지어 축대였던 돌을 뜯어내 돈벌이를 한다. 군락지 소나무 숲은 전기톱 공세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남아있는 집을 상대로 LH는 소송을 걸었다고 윽박지른다. ‘선이주 후 철거’를 약속했던 그들, 곳곳에 쇠기둥을 박고 가림막을 설치했다. 뉴스에서나 볼만한 터전을 빼앗기고 자살한 사람들처럼 내가 궁지에 몰릴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LH는 마치 이곳의 추억과 기억까지 보상한 양 이사 가라고 압박한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보낸 집주인 아저씨와 노모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 싫어 말라 갔다. 떠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거라는 서류를 받고 주민들은 지난해 난민처럼 이사 갔다. 집주인 노모는 고골을 떠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죽음보다 더한 불이익 있을까. 고양이 발바닥만 한 땅만 있어도 냉이는 꽃을 피운다. 나는 그 땅마저 없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차라리 길고양이와 들개 신세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말 독주를 마시고 싶었다. 친한 동생에게 전화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음성을 남겨주십시오’, ‘가족과 있겠지?’

 

고아 새도 집을 찾아가는 저녁, 전설에 나오는 붉은여우라도 내려올 같은 칠흑의 밤이다. 주워 온 길고양이 꽃님이, 주인 없는 복만이와 ‘궁남’에게 먹을 것을 주자 꼬리가 모터처럼 돌아간다. 보드카를 잔에 따르고 찬물을 부었다. 집이 추워 얼음은 필요 없다. 술잔은 고요하다.

 

잠이 들었다. 펄럭거리는 비닐 소리에 새벽에 눈을 떴다. 시베리아 털모자를 쓰고 잠바를 걸치고 마당에 나갔다. 텃밭에 배추가 노르스름한 잎만 남고 뜯어졌다. 속이 안 찬 배추를 봄동 만들려고 그대로 두었었다. ‘세상에 어떤 놈이 배추 서리를 한 거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라니였다. 간혹 마을로 내려온 고라니를 개들이 쫓는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어제 낮에 시멘트 틈에 진돗개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달려갔을 것이다. 복수가 차 버려진 진돗개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유기묘를 입양시킨 내게 지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

 

일전에 부여에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갔다. 궁남지 근처 쓰레기 더미에 눈비 맞고 30cm 안 된 쇠사슬에 개가 묶여 있었다. 소유권 따위 따져볼 여유도 없이 그 개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에게는 법보다 생명이 우선이다. 한때 이 개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았겠지? 개 이름을 ‘궁남’이라고 지었다. 오지랖은 궁남이로 끝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배가 등에 닿은 개와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던져준다. 추위를 피해 천장으로 숨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워야, 잠 좀 자자!’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오늘도 무사한 그들이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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