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화려한 순간 뒤에는 쉽게 말하지 않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한다. '서혜주의 라이프 in'은 그렇게 알려진 얼굴 너머의 이야기를 펼쳐보는 기록이다.
첫 번째 기록의 주인공은 의사이자 화가로 살아온 최창희(81) 씨다.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숨을 살피던 손은 퇴근 후 화폭 위에 색을 얹는다. 생명을 돌보던 손길은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위로를 건넨다.
저출산·고령화로 100세 시대를 말하는 오늘, 그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새로운 전시 계획을 이야기할 때는 10대 소녀처럼 눈빛이 빛났다. 의사로서의 시간과 화가로서의 시간이 나란히 흐르며 그의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순간"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라이프 in은 직함 너머에 쌓여온 시간과 선택을 따라가 본다.
■ 약력
경기여고, 고려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소아과학), 소아과 전문의·소아감염 세부전문의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 소아과 과장 역임
대한소아감염학회 평의원 등 학술 활동
미얀마 등 20여 차례 해외 의료선교 참여
개인전 3회 개최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역임
의인미전 금상,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금상 수상
국내외 미술전 다수 참여
현재 한국의사미술회·한국미술협회 회원
■ ‘의사’이자 ‘화가’라는 두 이름
-평생 소아과 의사로 아이들을 돌보다가, 화가로서도 긴 여정을 이어왔습니다. 스스로 소개할 때 어떤 이름이 먼저 떠오르나요.
"대부분 저를 의사 최창희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의사가 더 익숙해요. 의사는 제 꿈이자 어머니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세대에는 일본에 가지 않으면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셨지만, 6·25와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저는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했습니다."
-많은 과 가운데 소아과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이들을 좋아했습니다. 소아과는 보호자인 부모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는 과입니다. 그런데 제가 진료를 맡은 이후 불만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큰 보람을 느껴요. 숫자와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 예전에 치료했던 아이의 어머니를 길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요.
"레지던트 1년 차 때 만난 '화농성 뇌막염' 환아가 떠오르네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항생제가 발달하지 않아 치료가 쉽지 않았습니다. 열경련이 반복되고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치료 끝에 회복해 퇴원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가 군 입대를 앞두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의 반가움과 보람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릴 때 상도 받고 집안에 그림을 잘 그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오늘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하나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려요. 꽃과 풍경을 많이 그리는데,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가 캔버스에 옮깁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림의 소재가 됩니다."
이처럼 도전에 나이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지난해 팔순을 맞아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후배들과 가족의 도움 속에 세 번째 개인전 '산수전'을 열었다. 전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병간호와 작업을 병행하며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하겠느냐"는 마음으로 붓을 놓지 않았다. 완성된 작품들은 오랜 시간 묵혀둔 풍경과 감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남편 문영목 씨의 병간호로 지쳐 있던 시기, 깨달음과 신뢰의 시간을 화폭에 담았다. 전시를 포기하려던 순간도 있었지만 주변의 격려 속에 완성된 전시는 그에게 또 다른 축복의 시간이 됐다. 관람객들의 응원은 그가 다시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이 됐다.
■ 의료 선교와 삶의 가치
-해외 의료 선교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1996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20년 간 여러 나라에서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소아과 의사이다 보니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귀에 고름이 차 있고, 폐렴으로 열과 기침이 멈추지 않는 아이들, 선천성 심장병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치료를 해도 재발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또 그때 당시에 열악한 환경 속 진료를 보며 '시원한 보리차 한 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어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의술과 예술을 함께 해오시면서 태도에 변화가 있었나요.
"그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제 그림은 밝은 색이 많습니다. '너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따뜻함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의료 선교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 마음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기부도 꾸준히 이어오셨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 동기가 대장암으로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병원에 제가 14년 전 기증했던 '호반의 연가'라는 작품이 걸려 있는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왔습니다. 제 그림을 보며 위로와 치유를 얻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요.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기증하게 된다면 암 병동에 작품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예술로 작은 위로를 전하고 싶어 이후로도 기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치유’란 무엇인가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자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최 씨의 활동 뒤에는 든든한 동반자 문영목 씨가 있다.
이날 인터뷰 현장에 함께한 그는 조용히 외투를 챙겨주며 다정한 면모를 보였다.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 중인 문 씨는 서울시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의료계 인사다. 고려대 의대 선후배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를 응원하며 동행해왔다.
문 씨는 최 씨의 예술 활동과 인생 전반에 있어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응원자였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는 "주인공은 나의 아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잘 부탁한다며 건넨 그의 악수에는 긴 세월을 함께해온 동반자의 믿음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늦게 피어난 예술, 그리고 지금
-최창희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은 무엇일까요.
"핑크색입니다. 화사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좋아합니다. 봄을 가장 좋아하는데, 제 삶의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 나이에 새 길을 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목표 자체보다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오늘 시작하십시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열매가 맺혀 있을 것입니다."
최 씨는 앞으로도 의사로서, 화가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의술로, 때로는 예술로 사람들의 삶에 작은 희망을 보태는 것이 그의 남은 시간의 바람이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여든한 살의 그는 여전히 내일을 준비한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