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무채색을 뚫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기운은 경이롭다. 매년 맞이하는 이 계절, 이름의 유래를 가만히 톺아보면 그 안에 삶을 관통하는 직관적인 힌트가 담겨 있다. 국어학적으로 봄의 어원은 동사 '보다'의 명사형인 '봄'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광경을 '보는 것', 혹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과 가지마다 몽우리 맺히는 꽃들을 우리 몸에 담는 시기가 봄인 것이다.
이 '본다'라는 행위는 눈앞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봄에 돋아나는 것을 유심히 봐두는 일은 우리 내면에 일 년을 버텨낼 기운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과정이다. 봄꽃과 연두색 새잎,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봄나물을 실컷 봐두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가 지치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게 돕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봄이 왔다고 해서 매일이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른 봄, 살 속을 파고드는 소소리바람이 불어오면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그 바람을 견디고 고개를 내미는 것들을 기어이 보아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봄은 스쳐 지나가는 배경 같을 때가 많다.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에 핀 벚꽃과 개나리를 보면서도 스마트폰을 확인하느라 눈길을 제대로 주지 못한다.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주일, 한 달을 버티게 하는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잠깐 멈춰 서서 바라본 잎사귀 같은 찰나의 즐거움이다.
봄에만 허락되는 싱그러운 연두색을 열심히 봐두어야 한다. 한여름의 짙은 초록과는 완전히 다른, 투명하고도 여린 빛깔은 생명력이 가장 응축된 상태다. 잎샘추위의 시련을 이겨내고 돋아난 부드러운 잎사귀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저렇게 작은 것도 이 추위를 뚫고 솟아나는데, 나도 이번 달은 좀 더 에너지를 낼 수 있겠다"라는 가벼운 응원을 얻는다. 식탁 위에 오르는 봄나물들 역시 눈과 혀로 즐겁게 느껴야 할 대상이다. 냉이, 달래, 쑥 같은 나물은 땅의 기운을 맨 먼저 담아 전달해 주는 전령사이다. 향긋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은 입맛을 깨우는 동시에 우리 몸에 “다시 활기차게 움직여 보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봄나물을 챙겨 먹는 행위는 몸과 마음을 자연의 흐름에 맞추는 작업이다.
인생이 늘 계획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누구나 일이 꼬여 답답하거나 이유 없이 처지는 날을 마주한다. 그때 우리를 기운 차리게 하는 것은 대단한 보상이 아니라, 봄날 담벼락 아래서 피어난 노란 민들레의 모습이나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어린잎의 생생함이다. "맞아, 그 추운 콘크리트도 뚫어내며 꽃이 피었지."라는 기억이 다시 일어나게 한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나중에 꺼내 볼 수 있는 행복의 밑천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주워 담은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봄은 짧다. 봄비 한 번에 꽃은 지고 초록은 진해진다. 그러니 곁을 지나는 봄의 전령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결국 봄을 '본다'라는 것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기운을 모으는 일이다. 봄의 생명을 아쉬움 없이 맡아 두자. 그 내음이 모여 남은 열한 달을 기꺼이 살아내게 할 비타민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루지 말고, 마음껏 누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