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정당공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증하는 가운데 여야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어 더욱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상스럽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주도에 끌려갔다는 변명이나 개혁성 후퇴를 비난하는 시민단체 앞에 자세를 낮추고 있으며 한나라당 역시 기초의원 정당공천까지 밀어붙인 것과 관련 당내에서 조차 “너무했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 형편이다.
사실 기초의원 정당공천은 여야 모두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은 심정이었다는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지구당이 무력화된 후 바닥민심을 관리할 정치시스템이 절실했던 중앙정치권이 기초의원 정당공천이라는 해법을 찾은 것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3김씨’로 대표되던 과거 정치권에는 한 정파의 보스가 되기 위해서는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돈을 주거나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정설로 여겨졌다.
야당을 하더라도 특정지역의 국회의원 공천권과 보스에게 은밀히 전달되는 정치자금을 의미했다.
‘3김의 시대’가 막을내린지 오래고, 21세기적 패러다임으로 개혁을 하겠다는 정부가 등장한지도 3년이 되어가지만 정치는 거꾸로 후진하고 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은 기존 정치권에 ‘자리와 돈’을 제공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우선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공천=당선’인 곳은 중앙당의 공천장이 곧 기초의원 당선증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된다. 수도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다음 지방선거에 당선되면 유급제 실시로 인해 지역유지라는 명예와 생계가 보장되니 누구나 군침을 흘릴만하다는 것을 중앙정치권이 모를리 없다.
또 기초의원 정당공천과 돈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
정치헌금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지만, 자리의 특성상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고 자칫 기초의원 공천권을 행사할 지역 국회의원이나 중앙당 일부 정치인들은 그동안 조였던 허리띠를 과감히(?) 풀어도 좋을 듯싶다.
여기에 정당을 대표하는 기초의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공무원들 마저 정치색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시장?군수의 정당색으로 인해 일부 지역의 경우 선거결과에 따라 공직사회 주류라인이 완전히 교체되는 장면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에 앞서 공무원들이 패거리를 지어 특정인사의 당선 혹은 낙선운동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6월30일 국회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련 개정법들에는 중앙당과 시?도당 후원회를 폐지하고 현행 20세인 선거연령을 19세로 인하하는가 하면 당초 허용을 검토했던 법인과 단체의 제한적인 정치자금 기부도 금지하는 등의 개혁성이 담겨 있다.
하지만 기초의원 정당공천이라는 정치적 암수(暗數)가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여기에 “우리 국민이 정당선호도를 투표에 반영하고 있으며 중대선거구의 경쟁을 통해 경쟁력있는 정치인을 뽑을 수 있다”는 여당 경기도당 대변인의 궤변에서 정치권이 얼마나 자기 몫 챙기기에 집착을 보이는가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