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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행복한 하루

행복한 하루

                                   /배영옥
 


단풍나무에 기대앉아

백설기 먹고 물 마시고 토마토 몇 조각 먹는 사이



기껏

거미 두 마리

큰 개미 서너 마리

작은 개미 수십 마리 다녀갔다



며칠 전에 잘려나간 단풍나무 그림자 아래였다



-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 문학동네·2019

 

 

2018년 6월 11일 배영옥 시인은 ‘이미 오래전부터/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아직 말하지 않음으로/나의 모든 것을 발설하였으므로//내가 끝내 영원으로 돌아간다 한들/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라는 시인의 말을 남기고 소천하였다. 그리고 2019년 6월 11일 시인의 유고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가 출간되었다. 나는 이 시집 중에서 가장 짧은 시를 골라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행복한 하루’였다. 잘려나간 단풍나무는 이미 생이 다한 상태다. 그런 나무의 그림자 아래에 기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눈에도 잘 안 띄는 개미들만이 왔다가 간 그런 시간. 사람이나 개미나 다 같은 거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의미 찾기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고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이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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