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26만6천808, 2014년 35만2천166. 5년 사이에 8만5천358이란 숫자가 증가했다. 이는 다름 아닌 경기도내 외국인 인구의 증가 숫자다. 즉 지난 5년간 하루에 평균 47명씩 증가한 것으로 전국 최고의 증가율이다. 두 번째로 많은 경남은 하루 14명, 충남은 9명에 불과하다. 이는 경기도 지역이 수도권인데다가 외국인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과 농장, 음식점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내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안산시에는 무려 5만3천755명이나 거주하고 있다. 공단에 사업장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전국 최대 기초지자체인 수원시에는 3만4천941명이 거주한다. 수원에도 외국인들이 일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업체와 식당이 많고 인근 지자체 사업장으로 출퇴근이 용이하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화성시(3만1천677명), 시흥시(2만9천983명) 순이었다. 이들 지역 역시 외국인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들이 많고 방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사업장이 드문 과천시는 292명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전기한 도시별 외국인 거주자 수는 통계에 잡혀있는 합법 체류자들로서 파악이 안되는 불법체류자를 합치면 더
서해안시대를 선도해야할 해운산업이 활기를 띄어야한다. 날로 늘어나는 물류수송의 안전성과 신속성으로 국제경쟁력의 강화가 절실하다. 지난해 6월 부분 개장한 인천신항의 두 번째 컨테이너 부두인 한진인천컨테이너터미널(HJIT)이 최근에 본격 개장되었다. 인천항만공사는 한진해운 소속 한진 멕시코호의 인천신항 입항과 함께 HJIT가 공식 운영을 한다. 한진터미널에 입항한 첫배로 기록될 화물선은 필리핀 마닐라를 기점으로 한국,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잇는 노선에서 매주 1차례 운항하게 된다. 한진터미널은 지난해 6월 인천신항의 첫 컨테이너 부두인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이 개장한 이후 9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수도권의 물류수송을 위해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신속성과 물류비 절감은 국제경쟁력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이 터미널의 전체 면적은 47만8천571㎡로 부두 800m 가운데 420m만 우선 개장하였다. 하부공사는 인천항만공사가 시행했고, 상부기능시설 공사는 운영사인 한진이 직접 맡아 공사했다. 지난해 12월 상부기능시설 공사와 하역장비 설치를 마치고 지난 5일 선박 접안과 하역작업 테스트
고난주간을 맞으며 고난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기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의 총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선진산업국가들의 고등교육의 실패에 대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산업국가들이 세 가지로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지 못한 점이다. 둘째는 젊은이들에게 국가건설(Nation Building)에의 사명감(Mission Mind)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는 부모세대가 겪은 고난의 의미를 깨우쳐 주지 못한 점이다. 하나같이 의미가 깊고 중요한 지적이다. 나는 이런 지적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 성경은 영혼을 구원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들을 고난의 삶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시고 사용하신다. 잠언 17장 3절에 이르기를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지만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연단된다"하였다. 우리는 고난을 통한 연단 속에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폭설에도 내 집 무너지지 않았다 /송태웅 폭설에 내 집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 바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천지 흰 눈이 내린 곳마다 작은 집들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만 백두대간 금강송으로 세운 내 집 그 고대광실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폭설에도 앙버티는 내 집은 은성하던 시절을 수십 년이나 지나서도 여전히 그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가수 같았습니다 가벼운 영혼들은 대개 가여운 영혼들이었습니다 나의 집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영혼들에게 얻어맞고 무너져야 했습니다 그때서야 나도 가까운 호수에 쳐놓은 그물을 걷으러 황야에 설 수 있을 테니까요 - 시집 ‘파랑 도는 파란’(b판시선·2015)에서 폭설이 내린 다음날 세상은 어떤가요. 날선 지붕도 첨탑도 나무도 길 위의 모든 풍경이 순하디 순한 모습입니다. 하늘로 뻗쳐올랐던 모든 욕망과 헛됨을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폭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바람을 품게 되었습니다. ‘가여운 영혼’ 앞에 설복하기를 다짐한 것입니다. 어쩌면 백두대간 깊은 산골로 도망치듯 옮겨왔을 때는 크나큰 절망이 둘러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가벼
1956년 국회에서 이른바 ‘대통령 방귀사건’이 폭로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광나루에서 낚시를 하던 중 방귀를 뀌자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익흥 내무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야당은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보필하고 장관 노릇을 하면 대한민국의 명의가 서겠는가.”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장관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지만 국회속기록엔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알랑방귀 사건’은 건국 이래 아첨의 대명사처럼 지금까지 전해온다. 아부는 남에게 잘 보이거나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리는 행위다. 권력층을 비롯 가진 자를 대상으로 자주 이루어진다. 특히 최고 권력자에 대한 측근들의 충성맹세를 통해 나타나는 경우 ‘압권’인 것들이 많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은 물론이고 박정희 대통령을 거쳐 지금의 정권에 이르기까지 소위 간신배 같은 측근들이 했다는 숱한 아부성 발언이 전해지고 있다. 아첨의 역겨움을 자못 신랄하게 비판한 연옹지치(?癰?痔), 즉 종기의 고
보통 감기는 일주일 정도 고생하면 낫는다고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감기에 걸렸다고 불안해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단순감기의 자연경과(natural history)를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질병에 대해 설명할 때 바로 이 자연경과에 대해서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통증을 수반하는 디스크 같은 질환의 자연경과를 설명하면 환자들이 통증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의 경우도 이런 연구가 있으며 보통 급성으로 디스크가 생겨 심한 통증이 발생하더라도 2~3개월 정도 후에는 70~80%정도가 통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해석해보면 치료를 잘해서 통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좋아질 수 있는 병이 바로 디스크라는 것입니다. 또한 치료성적의 기본이 2~3개월에 80%정도는 되기 때문에 치료자에게는 2~3개월 후에는 70~80%좋아질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10%도 되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 혹은 교과서적으로 디스크수술의 적응이 되는 경우는 대소변마비감이 있거나 항문 쪽으로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있
◇서울캠퍼스 ▲미래문명원 사무국장 겸 지구사회봉사단(GSC) 사무국장 겸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행정운영실장 윤정주 ▲교육대학원 행정실장 탁찬혁 ▲언론정보대학원 행정실장 이인성 ▲학생지원처 장애학생지원센터 행정부처장 이석호 ▲사회교육원 행정부처장 주진희 ▲생활관 행정부처장 겸 경희대학교 행복기숙사 행정부처장 백문구 ▲후마니타스칼리지 서울캠퍼스 행정실장 이미숙 ▲치의학전문대학원 행정실장 겸 치과대학 행정실장 김준현 ▲스페이스21 건설재정위원회 스페이스21사업지원단 사업지원단장 겸 21세기 대학혁신위원회 행·재정혁신지원단 단장 최희섭 ◇국제캠퍼스 ▲학생지원처 학생지원부처장 주문균 ▲공과대학 행정실장 여근환 ▲예술·디자인대학 행정실장 겸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행정실장 최용덕 ▲취업진로지원처 취업진로지원부처장 겸 취업지원팀 취업지원팀장 송호남 ▲국제교류처 국제교류부처장 겸 국제교류과 국제교류과장 겸 외국인지원센터 행정부처장 노동섭 ▲산학협력단 공동기기원 행정부처장 안정수 ▲부총장실 행정부처장 겸 PRIME사업준비위원회 사무국 행정부처장 김평근
이유 공작소 /나혜경 가장 가까운 별과의 불화로 알레르기꽃이 심장에 활짝 폈으니 어깨를 누르는 당신 짐의 무게가 내 손끝까지 저릿저릿 내려왔으니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너의 바닥이 다 드러났으니 저녁상에 비늘을 다듬은 날 통째로 올렸으니 사과가 바삭거려서 팬지꽃이 느끼해서 리모컨이 아이를 낳아서 빵이 귀여워서 이불이 못생겨서 물건 값이 네모나서 손잡이가 살아있어서 불투명옆구리공소시효노동조합위선구역질소심능글능글손아귀상상용서의심열쇠, 때문에 삼년 전부터 꽃은 피지 않았어 -계간 아라문학 겨울호에서 살면서 우리는 온갖 불화에 휩싸이지만 그 불화의 어떤 이유이든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이유들임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막무가내로 따지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별 것 아닌 감정에도 쉽게 흔들리곤 한다. 기대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믿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가슴에 삼년 전부터 꽃이 피지 않은 이유로는 가장 가까운 별과의 불화로 알레르기꽃이 피어서가 가장 커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알레르기꽃도 꽃이 아닐까. /장종권 시인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자전거 애호가였다. 컴퓨터를 자전거에 빗댄 명언도 남겼다. “컴퓨터 사용은 걸어 다니던 인간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라고 했다. 아들에게는 자전거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자전거에 대한 착상이 현실화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이집트와 중국의 벽화에서 자전거와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되는 등 형태에 관한 기록은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자전거 기본 틀이 만들어진 것은 1900년대 여서다. 최초의 자전거는 단순히 사람이 발로 땅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앞바퀴가 좌우로 움직이지 않아 곧장 가기만 했다. 1790년 일이다. 그 후 앞바퀴가 좌우로 움직여서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은 1816년경이다. 공기타이어를 붙인 것은 1886년에 나왔으며,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나 기능을 갖춘 것은 1910년대다. 간단한 착상이 현실화 하는 데 무려 수천 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한국엔 1890년대 개항과 더불어 들어왔다. 당시 인천 제물포에서 자전거를 처음 본 사람들은 ‘괴물차’니 ‘나는 새’라느니 하며 피해 달아나기도 했다. 1896년 무렵, 한양에만 여성용 4대를 포함, 14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