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서 빠져나오다 /김훈동 세월의 더께 겹겹이 쌓인 얼굴 겨우내 닫힌 창문 열고 털고 날아가야 할 비바람에도 굽히지 않는 뜸직한 삶이여, 해묵은 응어리 무너져 내린 늪 언저리마다 숱한 이야기 박혀 있고 담대히 인내하고 시작하는 새 삶이여 처음 품은 꿈과 결심 같던 세상사 끌어안고 일탈이 두려워 여밀 틈도 주지 않고 순리를 따르는 삶이여 삶이 무거울 땐 깊은 늪에 빠져 보아라 알몸으로 섰어도 뜨거운 가슴 보듬으며 허물어진 삶 살아 있는 감동으로 함성이듯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이여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이 시는 수원예총 회장 김훈동 시인의 작품이다. 필자의 고향 해남인 시골집을 부부동반으로 다녀올 때가 있었다. 참신한 기획력, 또 넉넉한 지성, 수원의 큰 인물인데 늘 아쉽다. 모든 꽃이 시들고,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삶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미덕도 제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지 않다. 이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항상 새롭게 꿈꾸려 한다면 우리의 영혼에 젊음을 가져온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담대히 인내하고 시작하는 새 삶이여’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고(訃告) 혹은 궂긴소식 등으로 소개되는 종이신문 부고란은 유서 깊다. 한 인간의 생이 마감됐음을 알리는 부고는 과거와 달리 망자(亡者)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직업이 소개돼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데 부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강의 인생사가 읽힌다. 특히 의외의 가족관계를 발견하거나 특정한 대물림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혈연 중심의 유교적 활동으로 유명한 저명인사의 부고에서 사위나 며느리가 의외로 외국인임을 확인하면, “자녀들의 결혼과정이 순탄치 않았겠구나” 하는 혼자만의 추측이 가능하다. 기업을 일군 창업자의 부고에는 가족경영의 뼈대가 노정되는 경우도 많다. 망자인 창업자의 직업은 ‘회장’, 큰아들은 ‘사장’, 작은 아들은 ‘부사장’이다. 또 다른 기업인의 부고에는 A라는 모기업의 대표는 큰아들, 방계회사인 AA, AAA 등의 회사는 아들들이 대표로 소개되고, 심지어 며느리까지 감사라는 직함을 가져 기업의 대물림을 알게 한다. 이 경우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승진에 대한 꿈은 접어야하겠구나”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든다. 직업의 대물림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직 교장선생님의 부음에는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까지 모두
3월초에 일본정부회계학회 회원의 초청으로 와세다 대학을 다녀왔다. 자민당 내에서도 보수 강경파로 통하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의 등장 이후에 경제가 약간 들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엔저 정책은 분명 일본 수출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줄 것이고, 늘어난 화폐는 소비 심리를 자극할 것이다. 이러한 활력을 통해 경제와 정치가 뭉치는 기회가 되는 듯하다. 최근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우익 인사의 주장이 내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의 희생양을 찾는 무모함으로 들리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무엇인가 활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있다는 느낌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2주가 지나도록 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지 못해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국무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분들의 이력을 보노라면 한국 부정부패의 종합판을 보여주고 있다. 도덕 불감증이 보편화하지 않을 까 우려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많은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화된 비정상의 우리 사회 이러한 상황에 북한은 새 정부의 숨
최근(3일) K리그 클래식 홈개막 수원블루윙즈전은 성남일화의 옛 명성 찾기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비록 결과는 2대1 패전이었지만 말이다. 안익수-서정원 감독 데뷔전에다 전통의 라이벌 축구 명가로 유난히 낯익은 두 팀 간의 경기는 도민은 물론 전국 축구팬들의 관심거리로 스포츠계가 주목했다. 개막전을 앞두고 어린이 회원 모집에 나선 성남일화의 수고만큼이나 이날 1만6천여석의 관중석은 비교적 후끈거렸고 옛 명성을 찾기 위해 감독교체를 개시로 새 선수 수혈, 그리고 힘차게 뛰어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는 평가다. 또 김두현, 조동건, 홍철 등 성남일화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원블루윙즈 선수들이 친정팀을 상대로 선전하는 활약에 맘껏 박수를 보내 성남팬들의 높은 관전 수준을 읽게 하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안익수 감독의 지칠 줄 모르는 선수독려 모습과 황의조, 박진포, 이현호, 김평래, 전상욱 선수 등은 돋보이기에 충분했고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홈 축구에 대해 신뢰를 보냈다. K리그 7개 별에 빛나는 축구 명가의 재건에 홈팬들은 학수고대하며 홈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지만 옛 모습과 사뭇 다른 졸전을 상당기간 보여줘 식상하던 차에 이날의 경기는 의미가 커 보였다. 안익수
항간에 ‘위기를 모면하면 하느님을 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은 하나같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하느님을 찾는 데서 비유된 말이다. 애걸복걸해서 도와줬는데 차일피일 미루니 이것이 바로 여측이심(如厠二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인가. 어떤 목적을 이루고 처리해내기 위해서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치고 아부 일색이지만 그 목적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 자기로 돌아간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국제봉사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할 때 모 회원이 늦게 결혼하고 국제회원이 살고 있는 이웃 나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 곳에 살고 있는 B회원은 여행 온 우리나라의 회원에게 자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일주일간 손발이 돼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도움을 받을 때는 감지덕지한 생각에 그야말로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오면 10배를 잘해드리겠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B회원이 우리나라를 찾아왔을 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아침해장국으로 그를 보냈다. 그 나라의 백만장자였던 그는 함께하려는 봉사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근당 梁澤東(한국서
20대들이 희망을 잃어 간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88만원세대니, 삼포세대니 하는 슬픈 낙인이 이들에게 숙명처럼 붙어 다닌 지 꽤 오래다. 급기야 ‘절망세대’라는 가슴 답답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본보 8일자에 따르면 신용회복위원회 경기도지부에 지난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29세 이하 젊은이가 2011년에 비해 4.2%나 늘었다고 한다. 특히 다른 연령대는 모두 줄어들어 전체 신청자가 6.6%나 감소했는데도 유독 20대만 증가했다.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담은 표현은 꽤 연조가 깊고 다양하지만, ‘절망세대’라는 직설적 세대 별칭은 오늘날 한국의 20대가 이제 막다른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20대의 불행은 감당하기 벅찬 등록금에서 비롯된다. 사회적으로 독립할 나이인 스무 살 청년들이 일단 빚을 내 학업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할 자리라도 많으면 다행이지만 경제가 ‘일자리 없는 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결국 20대 내내 빚더미에 짓눌리다가 청춘을 다 보내고 마는 것이다. 올해부터 실질적인 ‘반값 등록금’이 시행된다고는 하나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수원과 인근지역 주민들은 환영일색이다. 벌써 지역 곳곳에는 특별법 통과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수없이 걸렸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군 비행장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소음으로 인한 고통과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아온 인근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이제야 해결되는 기미가 보인다. ‘국가 안보’란 명분으로 수 십 년 동안 소음피해와 재산권 침해를 당해왔던 주민들의 쌓인 한이 이제야 풀리는 듯하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지금부터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수원비행장 이전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긴 했지만 이전 부지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지난 7일 도의회에서 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답변에도 들어있다. 이날 송한준 도의원은 “시화호 간척지를 공군비행장 대체부지로 제안한 것이 맞느냐”는 질의를 했다. 이에 김 지사는 “벌써부터 어디로 갈지, 공역충돌 없이 옮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수원비행장 이전 관련 특별법에는 이전 해당지역 주민투표를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투표를 거쳐 비행장을 유치할 지역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안녕하세요. 안양시생활체육회 일반지도자 홍지연입니다. 어느덧 배구선수라는 직함보다 생활체육회 일반지도자라는 직함이 어색하지 않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동메달 등을 획득하며 오랜 세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배구선수로 활약했기에 생활체육지도자라는 새 이름표는 다소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인생 수업을 받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니 성취감은 물론 뿌듯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안양실내체육관과 안양서초등학교 체육관에서 20여명의 주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생활체육 배구교실에서 배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국가대표 출신이다 보니 저만의 배구 기술과 경기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주부들이 많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매주 1차례 10시간씩 진행되는 저의 배구교실은 무엇보다 배구를 통한 시민들의 건강 찾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배구가 쉽게 접하고 실력이 향상되는 종목이 아닙니다. 네트를 두고 플레이를 하는 스포츠이지만 주부들이 처음 배우기에는 두려움과 어려움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차례 제 배구교실에서 기본을
영화도 상업예술? 영화산업이 예술성보다 상업성에 치우쳐서 그렇지 맞는 말이다. 대규모 기업자본이 참여하면서는 영화 상영 구조가 기형적으로 더욱 변질됐다. CGV,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관들이 예술·실험·독립 영화 등 비상업영화보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 위주로 패턴을 바꾼 것이다. 영화적 실험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요인이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불만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영화를 접할 권리와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모임이 ‘영사기(영화사랑세상읽기)’. 시조시인인 정수자(56·여) 영사기 회장을 영화 상영 장소가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영화사랑에 푹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수원은 인구 110만을 넘어선 전국 최대의 기초자치단체예요. 하지만 아직까지 예술영화전용관이 없어요. 우리들의 ‘영사기’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비주얼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낮은 톤으로 취지를 설명하는 정수자 회장의 얼굴에서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영사기는 20
하얀 물안개 피어오르는 수면에서 자맥질하는 물오리 떼가 새벽을 열면 넉넉한 품성의 저수지는 산과 하늘, 그리고 해와 나룻배를 가슴에 품는다. 회색도시를 탈출한 강태공은 노를 저어 희미한 아침안개 속 저수지로 미끄러진다. 나룻배와 수상 좌대가 거울 같은 수면에 그림을 그리고 순간 수초 숲에서 날아오른 왜가리 한 마리가 무채색 수묵화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은은한 달빛' 벗 삼아 행복을 낚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촬영지로 유명한 경기도 안성 고삼저수지를 찾으면 이런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저수지의 수상좌대에서 은은한 달빛과 총총한 별들을 벗 삼아 즐기는 밤낚시의 매력도 만끽할 수 있다. 대어를 낚지 못해도 겨우내 움츠린 일상에서 탈출해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봄기운을 만끽하기에 그만일 것이다. 봄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한 3월, 안성 고삼저수지를 찾았다. 1963년에 완공된 84만평의 고삼저수지는 육지 속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넓다. 특히 주변에 오염원이 없어 수질이 깨끗할 뿐 아니라 수초가 풍부해 붕어, 잉어, 베스 등 씨알 굵은 물고기들의 입질이 잦은 편이다. 하지만 저수지의 분위기는 광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