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라면 한 두 번쯤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변을 찾거나, 신고를 하여 운 좋게 아이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 시간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1분 1초가 애타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라나라의 연 평균 실종아동의 신고건수는 2만여 건이다. 아동학대나 실종아동에 대한 사건사고가 드러나면서 아동에 대한 부모, 유치원, 경찰 등의 실종예방교육 등으로 2012년부터는 실종아동의 신고건수가 매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종신고 후 발견되지 않아 장기실종아동으로 남은 아동의 수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장기실종아동의 증가와 실종신고 시 아동을 찾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경찰에서는 2012년부터 사전지문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대상 아동의 얼굴사진과 지문, 키, 몸무게, 보호자의 연락처 등 관련 정보를 미리 등록하여 실종신고가 들어올 경우 이 정보를 활용해 신속하게 실종자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사전지문등록은 아동에 한정되지 않고, 18세 미만 아동을 포함하여, 지적장애인, 치매환자도 사전지문등록의 대상이 된다. 지역에 관계 없이 가까운 경찰관서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대상자의 관련
스포츠는 이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18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 온 국민의 기대 속에서 이상화 선수가 출전했다. 이상화는 2010년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에 이어, 2014년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그야말로 ‘빙속 여제’란 호칭을 받을 만한 선수다. 온 국민이 주시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역주했다. 결과는 37초33으로 은메달이었다. 금메달은 36초95의 올림픽 기록을 세운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가져갔다. 경기가 끝난 후 이상화는 펑펑 울었다. 금메달을 못 딴 아쉬움에다가 지난 4년간의 고된 훈련과정 그리고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올림픽이란 생각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쳤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은메달이면 어떠랴. 메달 빛깔과 상관없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자랑스런 이상화에게 국민들의 성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정말 대단합니다. 당신의 땀이 감동을 주었습니다’(윤서맘), ‘그대는 진정한 우리의 영웅입니
한국지엠(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정부와 업계가 시끄럽다. 당장 인천부평공장 또한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지엠(G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 지는 오래다. 지난해에도 부평공장 철수가 공공연하게 거론돼 인천시가 대책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난데없이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됐다. 한국 내에서 가동 중인 나머지 인천 창원 보령 등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군산공장 폐쇄여부에 따라 언제 또 이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평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생산라인이 가장 많기에 규모 역시 전국 공장 중에서 가장 크다. 캡티바, 말리부, 트랙스 등 승용차와 SUV 차량을 생산하는 모두 99만1천㎡ 규모로 인천의 지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기업이다. 인천 부평공장 직접 고용 인력만 1만여 명에 달하며 1차 협력업체가 고용한 인력은 2만2천명이다. 인천 부평구도 지난 14일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관련해 가진 ‘한국지엠과 인천지역경제 활로 모색 포럼을 열고, 지엠의 일방적인 군산공장 폐쇄 결정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과 한국지엠이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냈다. 홍미영 구청장은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충북 모 유치원장 수녀가 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24차례 폭행하고 영종도 가정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가 원생을 발로 차는 CCTV 장면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아동학대란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 정의되어 있는바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학대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신체적 폭력을 생각 할 수 있지만 아동학대는 그 유형에 따라 4가지로 나누어진다. 신체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신체학대, 정신적 폭력을 하는 정서학대,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성학대,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방임이 있다. 아동학대의 경우 가정이나 어린이집 같은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대부분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힘들다. 하지만 아래의 몇가지의 상황을 염두해 둔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동학대를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아동의 울음소리, 비명, 신음소리가 주변에서 지속될 때
정조의 특별한 의지로 만들어진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 건물의 모습도 멋있지만, 여기에서 보는 전망도 어디에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직접 올라가 정조의 자리에 앉아 풍경을 즐기고 있다. 창건 이후 여러 부분이 변형되었지만, 그래도 원형이 많이 남아있어 2011년 보물로 지정되어 중점 보호되고 있다. 창건 연혁- 화성성곽의 공사는 혜경궁이 을묘년(1795) 수원 방문을 기준으로 이전을 1차 이후를 2차로 구분한다. 1차 공사는 혜경궁의 동선에 따라 보이는 곳이 대상이며 벽돌로 된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설은 1차에 포함되었는데 바로 북옹성과 방화수류정이다. 북옹성은 벽돌 시설이지만, 화성의 첫 건물이기 때문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방화수류정은 장안문을 진입할 때 멀리 보이기도 하지만, 전편에 언급한 것처럼 정조와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포함되었다. 방화수류정의 착공은 1794년 9월 4일에 시작하여서 한 달 뒤인 10월 4일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상량은 10월 7일에 하고 준공은 10월 10일에 하게 된다. 40일도 안 되는 공사 기간으로 이 아름다운 건물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졸업을, 규정된 교과나 학업을 마친다는 뜻으로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졸업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졸업식을 뜻하는 단어도 ‘graduation’ 보다는 ‘시작, 개시’의 의미를 지닌 ‘commencement’를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졸업식의 백미인 축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주로 설파 한다. 특히 대학 졸업식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캠퍼스의 ‘마지막 수업’ 답게 유명 인사들의 경험이 담긴 명연설이 많고 일반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졸업시즌이면 유명대학 졸업식 축사가 해마다 세계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인생의 출발선을 강조하는 졸업식 축사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단 두 문장으로 마쳐 지금도 회자 된다.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강조한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명재상의 촌철살인적 연설은 어떤 긴 축사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며 지금까지 전설로 전해온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졸업 축사를 하는 대부분의 명사는 이처럼 꿈과 도전의식을 강조한다. 졸업 후 맞닥뜨릴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
하루 종일 /방민호 하루 종일 노란 종이배 접기 오래 잊었던 종이배 접기 노란 허공에 뜬 종이배 내가 만든 노란 하루 종일 노란 종이배 접어 무정한 파도 위에 곱게 띄우기 - 방민호 시집 ‘내 고통은 바닷속 한 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 중에서 우리의 생명은 창조론에서 비롯되었든 진화론에서 비롯되었든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지금의 ‘나’는 수억 년 혹은 수십억 년 지속되어온 내 생명의 유전자 끈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장구한 끈이 이어져 지금의 ‘우리’가 되지 않았는가. 부모와 형제자매와 친인척이 되어 고통과 기쁨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친구와 동지와 하물며 원수와 적들과도 같은 땅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슬픔과 즐거움을 섞어 서로 부대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304명의 생명들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였다.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는 그때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저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하루 종일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종이배를 접었을 뿐이다. 서너 다리 건너면 알 수도 있는 희생자들을 눈물로 배웅하며, 원통히 종이배만 접었을 뿐
스켈레톤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전에는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윤선수의 선전은 기뻐할 일이지만,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올림픽이 끝난 후 곧바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슬라이딩 종목이 들어온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고, 1999년에야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에 가입하였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남자 경기에 처음 나갔다. 이후 윤성빈이 2014년 12월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이후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16위, 2015년 1월 월드컵대회에서 은메달, 그리고 2016년 2월 월드컵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아시아 최초의 일이다. 2016~2017시즌 월드컵에 8차례 출전하여 세계 랭킹 2위에 올랐고, 2017~2018시즌에는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라는 마틴 두쿠르스를 제치고 랭킹 1위에 올랐다. 마침내 평창에서 올림픽챔피언이 되었지만, 6년 전까지만 해도 스켈레톤이 뭔지도 몰랐고 체육학과 진학을 준비하던 평범한 고교생이었다. 엘리트 체육의 공은 인정되지만 이제 이를 넘어서야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은 단순히 홈그라운드 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