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개편안을 이야기하면서 자주 등장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엠지(MZ)’이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개편 정책을 구상할 때부터 MZ세대를 고려했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명 MZ노조가 주69시간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통령은 정책 보완을 위한 의견 수렴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도 MZ를 직접 언급해서 관심이 갔다. 이 말인즉 젊은 층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개편안이 보완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MZ는 기성세대와 다른, 혹은 구분되는 ‘젊은층’,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언론에서 인기 있는 용어로 활용이 늘었다. 여기에 ‘미래 세대’라는 의미를 더할 수 있겠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내놓은 때였다. 언론에서 MZ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어도 앞선 경우처럼 기시감이 들었다. 언론은 윤석열 정부의 피해 배상 방안을 두고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어떤 결정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듯 미흡하다는 지적은 인정하지만, 반대로 기대가 있다면 이런 것일 거라는 논리를 폈다.
일초라는 시간은 짧다. 틱, 하면 사라지고 틱, 하면 나타난다. 틱, 하는 순간 소멸해버릴 작은 단위를 왜 사람은 시간의 범주에 포함시켰을까? 하찮아 보이지만, 일초가 지닌 의미는 흥미롭다. 일초는, 야구경기에서 투수 손을 떠난 야구공이 배트를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이다. 일초는,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온 침이 백 미터 날아가는 시간이고, 총알이 구백 미터 떨어진 표적을 관통하는 시간이다. 뿐만 아니다. 달팽이가 일 센티미터 전진하고, 두꺼비 혀가 먹잇감을 낚아채고, 벌새가 육십 번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 모두 일초에 이루어진다. 범위를 지구촌 전체로 넓히면 일초가 지닌 의미는 더욱 흥미롭다. 일초마다, 세 번 결혼식이 열리고, 네 명이 태어나고, 두 명이 죽는다. 일초 동안,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사백팔십육억 킬로와트의 에너지를 받고, 사백이십 톤의 비가 쏟아지고, 일만 천 리터의 바닷물이 증발한다. 두 대의 승용차와 네 대의 텔레비전이 생산되고, 청바지는 칠십 벌, 신발은 백 켤레가 팔린다. 그것이 일초다. 오천칠백 리터의 탄산음료와 오십일 톤의 시멘트가 소비되고, 스물두 명의 여행자와 이십만 건의 문자메시지가 국경을 넘나든다. 틱, 하고 사라져버
사람은 아프고 난 뒤 성장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4년 만에 재개되는 축제 소식이 이어지는 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은 늘 붐비고 인천항 크루즈터미널도 해외에서 온 여행자들로 생기를 띈다. 각종 행사와 모임이 줄줄이 잡히고 단체여행도 활성화된 시기, 개방의 시기다. 본격적인 엔데믹 전환, 입출국 규제 완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등으로 인해 그동안 억눌렸던 자유가 날개를 달았다. 꽉 막혔던 항공편 회복과 더불어 5월 황금연휴 기간엔 베트남, 일본, 태국 등 근거리 해외여행 예약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부는 근로자 1인당 국내 여행비 10만 원을 지원하는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을 펼치며, 각 지역도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코스 개발과 국내 여행자들을 위한 워케이션, 예술여행 등 각종 테마를 선보인다. 다양해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여행 콘셉트도 다채롭다. 이제 통제와 고통의 시기는 다 지나간 듯하나 방심했을 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엔데믹 초기 이태원 참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방심이 불러온 끔찍한 결과는 이후 밀집이 예상된 축제에 큰
추어탕집에 갔다. 돈까스 메뉴가 있다. 돈까스가 별미여서가 아니라 안먹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이 세상을 같이 살지만 참 다른게 세상살이다. 요즘처럼 디지털화가 급진전한 때에는 그 다름이 예전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내 선택이 보장되는 편리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TV 앞에서 가족이 공시청하던건 20년전 일이다. 미디어는 개인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세대별 프로그램 시청패턴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22년 연간 프로그램 평균 시청율을 닐슨데이타로 분석해보았다. 베이비부머와 M세대, Z세대간의 비교를 주로 하였다.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인간극장이 베이비부머 세대 1위 M 세대 6위 Z세대 35위다.생로병사의비밀은 베이비부머 9위 M세대, Z세대 공히 26위다. 의외인 것은 생생정보가 베이비부머 13위, M세대 14위, Z세대가 4위다. 세 집단에 공통적으로 시청율 상위에 포진한 프로그램이 있다. 순간포착(각세대별 2,3,2 위),생활의달인(각세대별 7,4,3 위), 실화탐사대(각세대별 6,5,7위)다. 인간극장과 비교해보면 프로그램의 성격차이가 나타난다. M세대 Z세대 공히 1위는 “꼬리에꼬리를무는이야기”인데 베이비부머 세대에선 15위다. 휴
1. 봄이 오면 꽃을 구경하러 다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잠시 왔다 사라지는 찬란한 계절의 이름을 직접 불러줘야 할 것 같아서.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이 다르다.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목련에는 순백의 기품과 고고함이 있다. 벚꽃은 일시에 피어났다 비처럼 떨어지는 낙화(落花)가 아름답다. 산수유는 봄 햇살 맞으며 소풍 떠나는 아이 웃음을 떠올리게 하고, 개나리는 돌담 아래 미소 짓는 순박한 새악시 같다. 진달래, 배꽃, 철쭉, 등꽃, 연산홍은 또 어떤가. 이 땅의 길섶에 피어나는 이름 없는 들꽃조차 봄에는 모든 것이 눈부시다. 주말에 복사꽃을 만나러 갔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복사꽃 큰 잔치’가 열린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34번 국도변의 복사꽃이 그렇게 곱다는 이야기였다. 황장재를 넘어 굽이치는 오십천 물길 옆에 수줍게 두근거리는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소식이었다. 두 시간 넘어 차를 몰았다. 하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꽃이 벌써 다 떨어져버린 것 아닌가. 가지마다 연두색 어린잎이 무성히 돋아나고 있었다. 초봄부터 시작된 이상 고온 탓에 예
지금의 영화계 모습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같다. 나치에 저항했던 학생운동의 얘기, 잉게 숄의 작품 제목을 여기다 갖다 붙여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영화계를 누가 미워하겠는가. 다들 나름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고, 나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란 소리를 종종 하며 살아간다. 한때 국민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가 4.5회로 전 세계 최고였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화 사랑의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다. 지난 몇 년간만 해도 봉준호가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하고 박찬욱이 칸에서 감독상을 타고 등등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은 2020년이었으며 박찬욱이 칸에서 감독상을 탄 것은 2022년, 그러니까 불과 작년, 팬더믹이 여전히 단말마의 절정이었을 때이다. 모두들 K-컬처, K-컬처 얘기를 해대곤 했다. 실로 엊그제의 추억이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그것도 팬더믹이 종료된 지금, 한국 영화계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음에도 죽어가고 있고, 거의 사망 신고 직전인 상태가 됐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에이 설마.’ 아니면 적어도 이런 반응들이다. ‘일시적일 거야. 곧 나아지겠지.’ 그러나 최근 주변 극장
인류는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산재했던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에서 판단을 빠르게 해야 했고, 그런 성향이 자연선택에 의해 본능으로 체화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각자의 경험과 짧은 지식(knowledge)을 바탕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는 직관의 오류로 나타난다. 고정관념 내지는 선입견에 따른 판단이 본능으로 작용함으로써 사실 확인 과정을 소홀히 하는 인지적 오류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충분한 생각으로 정확히 인지해서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 인지적 구두쇠다. 그래서 공자는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하라 했고(三思一言), 언행일치를 강조했던 것이다. 퇴계는 말을 무척 아꼈고, 그 결과는 언행일치였다. 말을 아낀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다. 군자는 본능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필연적으로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국제관계를 어렵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피아를 나누는 이분법적 대립과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북한을 공격하는 계획을 부단히 도모하는 미국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어느 쪽이 먼저일까? 미국과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한
커피에 꿀을 조금 넣고 잘 저었다. 내가 내 몸에 공양한다는 마음으로 잔을 들어 입에 대고 마셨다. 처음 느껴보는 맛이다. 차에는 차의 맛이 있고 말에는 말맛이 있다. 또한 사람에게는 사람 냄새가 있다. 차의 향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강원도 시인을 만나면 산속 너와집 냄새가 있고, 김제 시인을 만나면 만경 들녘의 벼이삭 익어가는 훈풍 같은 느낌이 있다. 정의감은 생명의 진화를 위해 소중한 것으로써 작가는 목숨을 걸고 실천해야만 되는 줄 알고 살아왔다. 세월의 흐름 따라 그 정신의 날은 무뎌지고 생활의 질서 뒤로 물러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점검의 성찰에서 오는 뼈아픈 후회감과 함께 느껴지는 비굴함 같을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거실에 홀로 앉아 낡아진 위장을 생각하여 가벼운 차 한 잔을 마시고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바른 언론관을 생각하며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며 살아가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는 속 쓰림 없는 커피 맛이라 할까. 말맛이 시원시원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아비에게 뭘 원하는 게 아니고, 지나친 원칙주의로서 완벽하게 살려하지 말고 그때그때 기쁨이요 즐거운 쪽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뜻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한 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유산 15개 가운데 조선 시대 임금이 살았던 창덕궁, 묘소인 왕릉, 그리고 제례를 지내는 종묘가 포함돼 있다. 놀라운 것은 조선 태조에서 순조에 이르는 왕과 왕비의 능 40기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왕릉이 서울, 경기, 강원에 흩어져 있지만 모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고,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자연과의 조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례에 힘입어 현재 경기도, 충청남도, 경상북도는 조선 임금의 태실(胎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태실은 탯줄을 묻은 곳이다. 조선 왕실은 태(胎)가 그 주인의 안녕은 물론 국운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고 왕자와 공주의 태를 격식에 따라 잘 보존한 뒤, 전국의 명당자리를 찾아 태실을 만들었다. 그 후 태실의 주인공이 왕위에 오르면 화려한 석물(石物)로 다시 치장하는 가봉(加封)을 해 더욱 엄격히 보존했다. 이런 왕실의 장태(藏胎)문화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유산이라고 한다. 일제는 조선의 기운을 뺏고자 이 태실을 훼손하고 태를 한곳에 모아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 서삼릉의 태실이다. 이렇게 훼손
화가 이중섭이 좋아한 시인 폴 베를렌느. 그는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케치하러 나가기 전 귀여운 당신이 그리워 설레는 마음으로 폴 베를렌의 시를 적어 보내오.”라고 썼다. 그 시는 아마도 다음 시가 아니었을까. 거리에 비 내리듯/마음엔 눈물이 흐른다. 이토록 마음 깊이 스며드는/이 서러움은 무엇일까? 견딜 수 없는 마음엔/아 아, 비의 노래여! 다정한 비의 속삭임을/땅 위에도 지붕 위에도(.......) 베를렌느가 쓴 ‘거리에 비내리듯’이다. 허전한 마음을 유연하고 음악적인, 그리고 우수어린 운율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애조 섞인 음조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의 감수성을 터치하기에 손색이 없다. 불멸의 시인 베를렌느. 1844년 봄, 프랑스 북동부 메츠에서에 태어났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하지만 판사가 되려고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가세가 기울자 중퇴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했지만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문학서클과 고답파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외동아들이 시를 쓴답시고 파리의 보헤미안들과 어울리는 것을 심히 걱정했다. 결국 그녀는 베를렌느를 서둘러 결혼시켰다. 그렇다고 그가 시를 포기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