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만큼 행복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화끈하게 무릎을 꿇었다. 두 나라 외교전을 콜드게임으로 장식했다. 그들을 더 기쁘게 한 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전승 우승이다. 멕시코와 준결승에서 4:5로 뒤지던 경기를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6:5역전했다. 영웅은 일본의 이승엽, 무라카미였다. 그는 역전 2루타를 치기 전 4번 타석에 나와 모두 삼진만 당했다. 그래도 감독은 그를 믿었다. 결승도 미국을 상대로 3:2로 승리했다. 9회 1점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오타니가 마운드에 올랐다, 미국의 마지막 타자는 LA에인절스서 오타니와 같이 뛰는 연봉 490억 타자 트라웃. 메이저리그 다섯 번째 고연봉자다. 2020년에는 최고연봉 선수였다. 그를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다. 14년만의 우승이었다. 말 그대로 만화야구였다. 한국야구는 호주와 일본에 져 예선 탈락했다. 대표팀을 향한 언론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월 안우진이 WBC 대표팀에 탈락하자 이를 비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추신수 발언까지 옹호하는 듯한 보도가 나왔다. 추신수는 미국의 한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이해하기 힘들다”며 “일찍 태어났다고 선배인가”라고 했다. 김현수
일제는 1차적으로 독도를 강점했다. 이어 한반도를 강점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서 패전하며 한반도 전체를 우리에게 반환했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다(김학준, 2020). 변함없는 역사다.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정권 박정희 정부(1962~1979), 전두환 정부(1981~1988), 노태우 정부(1988~1993) 시절에도 변치 않은 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 주요 포털의 몇몇 블로그, 게시판은 그간 숨어 있었던 토착 친일파들의 글로 더럽혀졌다. 한국을 혐오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자들의 모습들이 거리낌 없이 드러났다. “한일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는 글도 보였다. 또 “일제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우리나라 대기업이 배상하는 게 맞다”라는 글도 올라와 있었다.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은 이런데 쓰라고 있었던가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사실과 상식을 왜곡하는 사람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용서할 자신이 없다. 보다 못해 서울대, 고려대 교수도…
지난주 한일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박진외교부장관이 언급한 일본의 ‘물컵 절반 채우기’가 기대와 너무 다르다는 실망감에 강제동원피해자나 시민단체, 그리고 야당이 총체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었고 당장은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지켜보아 달라고 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정부의 이번 결단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반성은 저들의 몫으로 남기고, 도덕적 우위를 갖고 대승적으로 포용하면서 미래를 위한 길을 가겠다는 의지는 평가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방침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릴 수가 있는가에 있다. 이번 정부의 행보 이면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 미중갈등상황이 깊어지면서 미국의 동북아 전략 중 가장 중요한 대중 한미일 공동전선 강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에 우리가 조종당한다는 생각이다. 근래 미국반도체법의 내용(미국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신규투자제한 등)이나, 정부 방침 발표에 곧 이은 미국의 윤석렬대통령 국빈 방문 발표, 그리고 일본정부의 초청에 의한 한일 정상회담 등 일련의 사안들은 이번 정부의 결단과 무관하지…
“어떻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현자는 대답했다. “해를 보는데 과연 등불이 필요할까?” (아라비아 잠언) 신을 알고 있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들이다. 오만한 사람과 어설프게 현명한 사람들만이 신을 모른다. (파스칼) 아무리 신을 믿고 있어도, 가끔 그 존재를 의심하는 순간에 부딪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의 순간은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신에 대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이해로 이끌어준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신은 완전히 진부해져버려서, 이젠 신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을 믿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뿐이며, 신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구하면 그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계시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무한하다. 어떤 사물이든 가까이 가보면 잘 알 수 있듯, 신을 아는 것도 신에게 가까이 갔을 때뿐이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오직 선행에 의해서만, 즉 신의 뜻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신을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더 기꺼이 신의 뜻을 실천한다. 그리고 신의 뜻을 훌
누구나 별을 꿈꿉니다. 별 하나, 가슴에 보듬고 삽니다. 당신과 나도 그렇습니다. 보듬은 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랑이든 성공이든 명예든 온전히 자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각 다른 별을 소망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소망과 자유는 낮과 밤 같아서, 같은 하늘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없어서, 꿈꾸는 별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표류하기 일쑵니다. 당신과 나의 별 역시 그럴 것입니다. 돈이 뜰수록 별이 지는 세상입니다. 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소망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는 별을 가슴에 보듬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머무는 별무리는 늘 촉촉합니다. 축축함을 닮은 말이지만 녹물처럼 얼룩지진 않습니다. 다가가기에도 아찔한 별이라서 젖을 겨를이 없습니다. 손 잡아주지 않아도 배회할 골목길이 당신과 나에겐 없습니다. 누구나 별을 소망합니다. 별 하나, 숨결 가득 머금고 삽니다. 당신과 나도 그렇습니다. 머금은 별빛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바름이든 옳음이든 평등이든 온전히 자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각 다른 별을 꿈꿀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꿈과 세
세계인의 귀신(?), 드라큘라의 나라, 루마니아에 ’마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을 아시는지. 우리나라의 역술인처럼 ’주술, 점술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지만, 루마니아의 미신숭배는 유난하다. 국가적으로 대통령 주재하에 ’악령 쫓는 행위‘를 벌인 적도 있다. 독재자 니콜라 차우셰스쿠(1989년 민중혁명으로 처형) 부부가 개인 마녀를 두고 미래를 점치곤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루마니아의 직업 ’마녀‘가 별난 것은 ’마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중세기 기독교 박해 당시 수많은 여성이 억울하게 마녀 재판대에 올려져 끔찍한 고문 후 화형 당했다. 1563년 제정, 173년간 시행된 ’마녀법‘으로 6만~10만명 가까운 여성들이 처형되었다.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실상, 고아로 컸거나 장애가 있는 등, 주변의 보호와 변호를 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지배층은 마녀사냥을 종교전쟁과 페스트 등의 전염병 창궐, 기근 등으로 인해 분개한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정치쇼로도 썼다. 이 인권지옥의 역사가 ’마녀‘란 단어를 오염시켰는데, 실상 마녀의 영어단어 ’Witch’는 기독교가 퍼지기 전에는 나쁘게만 쓰이지 않았다. 고대부터 존재한 마녀는, 남녀 성별…
막힌 꽃길은 없다. 축제의 계절이 왔다. 긴 겨울을 보낸 이들은 남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쫑긋 귀를 세운다. 애타게 기다리던 봄은 느릿느릿 움직이다 3월 말부터 화사하게 피어난다. 한국의 남쪽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길을 걷다 문득 느낀 봄 내음에, 겨우내 굳었던 나무와 땅이 물러진 몸으로 내보인 말간 새싹에 사람들의 가슴도 부드러워진다. 봄은 세상을 색색으로 물들인다. 첫걸음은 유채꽃과 매화다. 제주도 산방산과 성산일출봉 앞의 노란 융단, 광양 매화마을의 하얗게 뒤덮인 언덕 사진이 sns와 각종 매체를 장식할 때, 서울에선 봉은사와 창덕궁의 매화 몇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3월 중순, 생활 속으로 파고든 봄은 차츰차츰 색을 퍼뜨린다. 출근길 따라 와글와글 피어난 개나리에 눈길이 가고, 밤을 밝히는 하얀 목련에 마음을 빼앗긴다. 발밑에선 작은 야생화들이, 산기슭에선 진달래가 고운 꽃잎으로 인사를 건넨다. 봄이 퐁퐁 터뜨리는 꽃망울에 가슴이 간질거리는 시기다. 그리움이 깊어지는 4월, 봄은 마침내 세상을 화사하게 뒤덮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활짝 피어난 벚꽃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들여 환호성을 일으킨다. 벚꽃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옷차림
현 정부의 만행에 가까운 국정 운영은 한반도 전쟁 위기 고조에 노동 탄압과 국보법 수색에 야당 대표 기획 수사나 삼권 분립 무시는 기본이고, 굴욕 조공 대일 외교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을 거론하기에도 숨 가쁠 정도다. 그 어느 하나 우리사회를 퇴행시키지 않는 것이 없지만, 무엇보다 69시간 노동 제시에 대한 거센 반발에 주 64시간 등 고육지책을 제시하고 대통령도 주 60시간을 상한선으로 거론하는 등 진화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60시간이란 숫자는 대통령 개인 생각이며, 국민 의견 수렴을 전제로 주 60시간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적대적 노조 정책과 함께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사고방식은 여러 희생 속에 압축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로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일인당 국민소득을 거론할 것도 없이 K-pop과 네플릭스 작품 등 한국 문화의 국제적 파급력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고, 국제 사회에서도 이미 선진국으로 인정되고 있다. 분명 소득 증가를 위해 일개미처럼 일하는 것만이 곧 선진국의 모습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어 차별 없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
살기 힘들다 해서 죽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오로지 실천한다. 자신의 사명을 다했을 때 비로소 그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에머슨) 현재의 삶만이 진정한 삶이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순간을 잘 사는 것, 오직 그것에만 온 정신을 쏟아 노력하라. 내세를 위해 현세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은 현재의 이 삶뿐이다. 따라서 이 삶을, 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가능한 한 잘 사는 것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고뇌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토크빌)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뭔가 다른 생활이라면 더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생활 속에서, 네가 현재 놓여 있는 조건 속에서, 너는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칼라일) 사람들 속에서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자에게도, 혼자서 정신적인 목적을 위
아는 동생의 고민상담전화이다. 새로 온 동료 교사 예닐곱 명과 식사모임에서 이런저런 아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중 40대 후반인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고1 아들을 키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말하던 끝에 “선생님 애는 몇 살이에요?”라고 물었다. “저는 애가 없어요. 결혼 안 했어요.” 대답을 하며 동생은 자신의 얼굴이 귀까지 화끈거리는 게 느껴지며 표정이 어쩔 수 없이 굳어졌다. 이런 상황들이 여러 번 반복되니 마음이 점점 힘들다는 게 요지였다. 사실 생각해 보자면 만혼과 비혼이 늘고 있는 2023년에 결혼을 안 했을 가능성을 배려하지 않았으니까 악의는 없었더라도 무신경한 질문이긴 하다. “귀까지 화끈거렸다는 게 어떤 감정이야?”라고 물었다. “나만 실패자라는 생각에 수치스러웠어” 다시 물었다. “넌 결혼하려고 애쓴 적이 거의 없잖아. 그런데 왜 실패자가 되지? “ 나만 다르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결혼했고 아이도 있었는데 나만 달랐어. ” “야, 내가 화병환자분들 많이 만나는데 여러 가지 겪다 보면 세상천하에 팔자 편한 게 독신이야.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맘고생을 해, 자식이 속 썩여서 걱정이야. 그 사람들은 네가 부러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