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40호인 독산성과 세마대지의 문화재구역 3만7천985㎡가 추가돼 모두 7만5천254㎡로 확대됐다. 문화재청이 성곽뿐만 아니라 성 내부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종합 유적지임을 인식한 결과다. 이로써 오산시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독산성과 세마대지의 원형 복원 및 보존을 위한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독산성과 세마대 그리고 정조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12월, 이곳에서 권율 장군은 전라도로부터 1만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와 한양으로 가는 길목을 지켰다. 이른 바 세마전법(洗馬戰法)이라는 지혜를 발휘해 3만 명의 왜병들을 퇴각시킴으로써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밑거름이 됐다. 이 지역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또 있다. 인근에 있는 죽미령 전투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돼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에 주둔하던 스미스 부대는 7월 1일 부산, 대전을 거쳐 5일 오산 죽미령에 도착했다. 치열했던 전투로 500 여명 가운데 100여 명이 전사하고, 70여 명이 실종되기는 했지만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는 성과를 냈다. 죽미령 고개에는 스미스 부대의 희생과 공헌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두고 낯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만남은 서먹했고 말을 트기가 쉽지 않았다 …(중략)…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17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제20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은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하 단일팀) 남측 한수진의 수상소감이다. 재단이 단일팀에게 상을 준 것은 얼어붙고 메마른 남북관계를 녹이고 일촉즉발의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긴박했다. 핵무기를 둘러 싼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은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험악했던 상황을 순식간에 전환시킨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면서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혔다. 이후 올림픽 경기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참가,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평화올림픽으로 승화시켰다. AFP통신은 “단일팀이 남북한을 위한 역사를 만들었다. 두 코리아 간 화해를 위한 이례적인 순간을 끌어냈다”고 타전했고 중국의 신화통신도 “경기는 졌지만, 평화가 이겼다”고 보도했다. 특히 개회식에서 남측 선수와 북측…
정조는 수원 신읍(新邑)을 급하게 만들면서 정치적 반대를 경험한 바 있었다. 그래서 축성을 계획하면서는 미리 준비하고자 비밀리에 설계를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정약용이 삼년상을 치르기 위해 휴직을 하고 있어 그에게 수원화성의 설계를 맡긴다. 성곽설계를 맡은 다산은 31살로 경험이 적고 성곽의 전문가도 아니었다. 또한 비밀리에 설계를 추진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기에 중국 병서(兵書)들을 탐독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병서 중 가장 많이 참조한 병서는 명나라 말기 1621년 모원의가 쓴 무비지(武備志)였다. 다산의 설계는 무비지 성제(城制)편에 나오는 시설들을 대부분 차용하였지만, 유독 공심돈(空心墩)만 배제하였다. 공심돈의 설명은 많은 분량이었는데 이를 배제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배제된 공심돈은 공사도중 3개나 설치된다. 정조가 공심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수원화성 준공 후인 정조 21년(1797) 1월 29일 서북공심돈 앞에서 신하들에게 “공심돈 제도는 우리나라 성제에서 최초의 것이다. 보고 싶은 신하들은 들어가 구경하라”며 자랑하였다. 하지만 동북공심돈 앞에서…
요즘 아이언맨과 앤트맨과 같은 헐리우드 히어로 영화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 것은 영웅이 부재한 요즘,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영웅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갈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 역대 대통령 중 누군가를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경제 발전에 일조한 재계의 유명인물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민주화 운동가를 지목하는 사람들, 아니면 자신의 부모님을 지목하는 사람들 등, 다들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영웅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6·25참전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안겨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생한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영웅들을 역사의 페이지 속에 기록하여 후세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국가유공자를 새롭게 발굴하여 그들을 예우하는 것이 현 시대가 요구하는 ‘보훈’이 아닐까 싶다.…
이현철(54·연수원 25기) 안양지청장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 영신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 사법시험(35회)에 합격했다. 대구지검과 경주지청, 포항지청에 이어 수원지검,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로 재직한 뒤 200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으로 연수를 떠났다. 이후 대검 검찰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대검 공안3과장과 1과장을 거쳐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장, 부산지검 형사1부장을 거쳐 수원지검 2차장과 서울남부지검 2차장을 역임했다. ‘비방·허위사실공표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대한 방안’ 등 논문을 집필했다.…
박순철(54·연수원 24기) 안산지청장은 강원 인제 출신으로 서울 남강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 대학원에서 상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사법시험(34회)에 합격했다. 부산지검과 춘천지검 원주지청, 서울지검, 청주지검,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수원지검에서 검사로 지냈다. 대검 검찰연구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부부장, 금융위원회로 파견을 다녀온 뒤 법무부 법조인력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대구지검 2차장, 대구고검 검사로 국무조정실로 파견을 다녀온 뒤 서울고검 형사부장을 역임했다.…
조종태(51·연수원 25기) 성남지청장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마산 중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35회)에 합격했다. 수원지검을 시작으로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울산지검과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 서울동부지검 검사로 재직했으며 서울동부지검과 대구지검에서 부부장을 지냈다. 이후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범죄예방기획과장,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장, 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구고검 검사), 대검 검찰개혁추진단장(검찰연구관)을 역임했다.…
김형길(53·연수원 24기) 부천지청장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광주제일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34회)에 합격, 사법연수원 수료 후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근무했다. 검찰 임관과 동시에 부산지검 동부지청을 시작해 전주지검 정읍지청, 서울지검 남부지청,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검사를 지냈다. 대전지검 검사에서 부부장으로 승진 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사법연수원 교수에 이어 부산지검 형사5부장,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장, 의정부지검 형사1부장을 거쳤다.…
차맹기(52·연수원 24기) 고양지청장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창원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34회)에 합격했다. 부산지검에서 검사로 임관한 뒤 창원지검 통영지청과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지냈다. 러시아 유전개발의혹 사건 특검팀에 파견된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단기 연수를 다녀왔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검사에 이어 부부장으로 승진, ‘이명박특검법’ 특별파견검사, 대검 검찰연구관을 지냈다. 이어 부산지검 특수부장,수원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장 등을 거쳤다.…
김춘수(52·연수원 28기) 인천지검 인권감독관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익산 원광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38회)에 합격했다. 춘천지검과 대전지검 논산지청, 수원지검, 서울서부지검, 창원지검 통영지청을 거쳐 서울동부지검 등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이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검사에 이어 부부장으로 승진 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창원지검 통영지청 부장, 부산지검 형사4부장, 서울남부지검 공판부장, 수원지검 안양지청 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대구지검 인권·첨단범죄전담부(형사1부)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