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받고 전투에 참가하는 용병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때부터 있었다. 예부터 각국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용병을 쓰는 이유는 전투력이 강하고 충성심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중 스위스 용병의 강인함은 유럽 최강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은 중세 이전부터 용맹스럽고 신의가 매우 높아 많은 일화도 남겼다. 특히 14세기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바디칸과의 관계는 각별하다. 바티칸 스위스용병 전통은 1506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05년 교황 율리우스2세가 베드로성당을 개축하면서 스위스에 용병파견을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그후 1527년 수만명의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교황청을 덮쳤을 때 스위스 용병들은 성 베드로성당 길목에서 최후의 1인까지 싸우면서 교황 클레멘트 7세를 도피시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로마에 진격했을 때도 죽음으로 바티칸 진입을 막았다. 이러 인연으로 500여년 지난 지금도 바티칸 근위병은 스위스 용병이 맡고 있다. 용맹함으로 치면 구르카 용병도 이에 못지않다. 16세기 이슬람을 피해 네팔 산악지대로 이주해 와 현지 네와르족을 정복하고 1768년 네팔왕국을 건설한 이들은 특히 영국의 용병으로 ‘백병전의 1인자’로 불린다. 한
눈보라가 퍼붓는 방 /신현림 눈보라는 방에도 퍼부었다 몸까지 들어찬 눈보라를 토하였다 자식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밀어냈다 눈보라는 자세히 볼수록 흉기였다 눈보라에 베이고 파묻혀도 나는 타오르고 싶었다 나를 태워 눈보라에 갇히는 나를 잊고 싶었다 눈보라가 언제 걷히나 언제 빛이 보이나 눈보라가 설탕이라고 쓰자 달콤해지기 시작했다 힘들다 씀으로써 나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빛이 보인다고 씀으로써 빛이 느껴졌다 누구나 살아남기 위한 죄수의 인생이라 나를 타일렀다 눈을 감으면 나 자신이 풍경으로 보였다 눈보라를 멀리 보기 시작했다 눈보라 속에서 해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시집 ‘반지하 앨리스’ 눈보라 퍼붓던 시골 등굣길이나 하굣길이 생각납니다. 변변한 입성을 갖출 수 없었던 시절 살을 에는 추위와 더불어 마구 불어 닥치는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던 시오리 먼 길, 그러나 가슴에는 희망의 불씨를 발갛고 따스하게 피웠던 때였습니다. 시적 화자는 그 눈보라가 방에도 몸에도 들이닥친다고 합니다. 얼마나 스산한 삶이기에 그 가차 없는 무차별적 폭력으로 전신을 때리는 눈보라를 방으로 몸으로 견뎌야 했을까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요. 그렇지만 고통도…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은 고향에 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은 출발한 귀성길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어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향길은 교통수칙 몇 가지만 지키면 즐겁고 안전하게 다녀 올 수 있다. 첫째,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설 연휴, 반가운 친척들과의 술자리 혹은 제사 후의 음복 등으로 음주운전 사례가 많아지면서 사고율도 함께 늘어난다. 한잔의 음복도 음주운전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음복주 두잔이면 면허정지 수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둘째, 운전 중 졸음이 올 때는 반드시 쉬어가야 한다. 장거리 운전으로 졸음이 올 수 있으므로 졸음이 올 때는 반드시 휴게소 및 졸음쉼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운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셋째, 전 좌석 안전띠를 꼭 착용해야 한다.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3배나 높아진다. 안전띠는 자신의 생명은 물론 탑승자인 가족, 친구의 생명까지 책임지고 있는 만큼,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으로 불의의 교통사고 발생 시 대형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과속이나, 운행 중…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한다”는 최근 검찰의 적폐수사와 관련한 발언이다. 이 발언과 관련, 모 변호사의 칼럼을 해석해 보면 검찰의 ‘법적절차’라는 말은 포장된 허울에 불과하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겠다’라는 말로 비유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칼날을 가지고 법적 절차 없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무자비하게 그들의 칼끝을 들이댔다는 자백과도 다름 없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런 검찰의 무자비한 칼날의 끝이 힘 없는 국민에게 향했다는 자백을 알지도 못했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칼은 권력자들의 노리개로 사용돼 오면서 철저히 포장돼 있었다. 간혹 그런 칼날에 대항한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소극적 저항에 그쳤고, 그 저항에 대한 댓가는 결국 그들에게 비참한 최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아는 이상 더 이상의 저항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들의 “나오면 나오는대로 하겠다”는 발언은 형소법상 달성하려는 목적을 위해 법은 최소한의 필요한 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력의 행사 범위를 넘어서는
화성시 제부도에 있는 서신초교 제부분교장이 3월 새학기부터 문을 닫는다. 화성오산교육지원청은 최근 행정예고를 통해 서신초등학교 제부분교장 기존 재학생 전원 전출(2018년 2월 예정) 및 2018학년도 신입생이 발생하지 않아 분교장 운영이 불가능함에 따라 2018학년도 서신초등학교 제부분교장(병설유치원 포함)을 휴교하고자 한다고 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개교한지 72년만이며, 1982년 학생수가 줄어 서신초교 제부분교장으로 격하한 지 36년만이다. 그나마 남은 4학년 학생 2명이 본교인 서신초교로 전학을 가면서 재학생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된 데다 신입생 또한 한명도 없다. 70여년 전통의 학교가 일단 사라지게 된 것이다. 돌아오는 농촌학교의 모델로 신축하여 지난 2007년에는 제7회 경기도건축문화상 금상을 수상하기도 한 학교다. 이같은 상황은 제부분교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내에 올해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는 본교와 분교를 포함해 6곳이며, 인천은 3곳이나 된다. 전국적으로는 전남이 48곳, 경북 22곳, 강원 15곳 등 120곳이 넘는다. 신입생이나 졸업생이 없어 입학식과 졸업식을 치르지도 못한다. 출산율 저하로 도심지 학교도 학급수가 대폭 줄어드는…
수도권에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정도인 2천600만여 명이 산다. 팔당상수원은 이 많은 국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되는 반드시 필요한 수도권의 젖줄이다. 만약 팔당상수원이 오염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정부나 해당지자체들의 팔당 상수원보호를 위해 규제조치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에도 6월 8일∼8월 31일 사이에 팔당 상수원 관리지역 내 54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속을 벌여 108곳을 적발했다. 상수원 주변 오수 무단 방류, 무허가 건축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캠핑장과 골프장, 수상레저시설 등이다. 현재 팔당상수원 주변지역에는 주택과 공장, 축사 등 총 3천139개의 건축물과 아파트, 단독 등 2천353개의 주택이 있고, 6천621명이 거주한다.(2017년 도 수자원본부 전수조사) 문제는 이들의 희생이 크다는 것이다. 팔당상수원은 반드시 보호해야 하지만 수십년간 규제강화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피해를 받는다. 따라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나 과다한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와 단속, 수질정화활동 등 지속적인 관리의 효과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덕수궁에서 길 건너편 조선 호텔 쪽을 바라보면 조그맣게 황궁우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덕수궁에 이어 오늘은 대한제국의 상징이자 황제의 상징인 환구단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황제의 지위를 상징하는 곳이다. 황제는 새해가 되면 나라와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 제사를 ‘기곡제’라고 한다. 기곡제는 숙종 9년에 사직단에서 대신 거행한 바 있다. 이후 정조대에서도 사직단에서 기곡제를 행한바 있다. 환구단이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은 고종의 황제즉위와 맞물려서이다.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으로 환어하시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정한 고종은 환구단의 설치를 명하셨다. 1897년 8월 환구단의 위치를 정하고 한 달여 만에 환구단은 완공되었다. 이렇게 완공된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공식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천자(天子)의 나라임을 세계에 공표하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덕수궁에서 환구단까지 이어질 황제의 행렬을 위해 군사와 순검들이 도열하였으며, 인근가옥에서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어 애국심을 드러냈다. 황제의 행렬 모습은 기존 행렬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첫째는 행렬 앞에 자리한 태극기
간간이 바람은 불어도 햇살이 푸근하다. 낮에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방문을 해서 근처 문화공간으로 발걸음을 한다. 커피숍과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가까운 거리라 걸어가며 얼마 만에 느껴보는 푸근함인지 몸의 긴장이 풀리며 벌써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올겨울처럼 추운 겨울도 드물다. 11월부터 몰아친 추위로 한 달이나 빨리 한강이 얼었고 조정 경기장은 꽁꽁 언 강물 덕에 연습도 못 하고 지나간다. 우리나라의 겨울을 일컬어 삼한사온이라도 하는데 무슨 겨울이 막무가내로 춥기만 해서 삼한사한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베리아처럼 추운 서울 날씨를 빗대어 서베리아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그것으로도 올 추위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작년에는 겨울이 춥다는 오보가 나와서 발열내의를 많이 준비했다가 춥지 않은 겨울을 지나면서 상인들이 본전도 못 찾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올해도 큰 추위나 폭설이 없을 것이라는 예보에 작년의 실패 때문에 많이 준비하지 않아 물량이 달린다고 한다.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야 어머니 내의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내가 찾는 상품이 품절되었다고 해서 어머니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른 집에서 사다 드렸다. 내의뿐이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길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사과를 발견했다. 하찮은 사과가 영웅인 자기의 길을 막는 것이 불쾌하여 발로 툭 찼다. 그런데 그 사과는 길 밖으로 사라지지 않고 더 크게 변하여 그 자리에 있었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없애려고 가지고 있는 방망이로 때렸음에도 사과는 더 커져서 이제는 길을 막아버렸다. 헤라클레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커져버린 사과와 씨름하고 있을 때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서 사과에게 다정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사과는 본래의 모습으로 작아졌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에게 이 사과는 ‘화’라는 사과인데 자꾸 화를 돋우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타일렀다. 이 이야기는 이솝의 우화에 있는 내용인데 우리나라의 주택가격, 특히 서울 강남 주택가격이 ‘화가 난 사과’와 같다. 정부가 주택가격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주택가격은 ‘화’가 나서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이다. 주택가격을 화가 나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주택에 대한 과도한 참견이다. 주택은 의식주의 하나로 인간생활의 필수품이다. 모든 사람의 이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