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한장
/김금희
입을수록 벗어지네요
흠뻑 껴입을수록 알몸이 되네요
……
비가 오길 바랐지요
입어도 무거운 알몸
들어도 어둡고
보아도 캄캄한 빗소리 한 장
몸에 걸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장대비가 내리면요
대지의 문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안개와 비와 사랑이 문드러지는
빗방울 톡톡 터져 깔아지는
그 형체 없는 울타리에
온몸을 맡기는
광활한 초원
대책없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습니다.
- 김금희 시집 ‘시절을 털다’ / 푸른사상·2017
비는 세상을 비옥케 하는 일반적인 인자라는 상징과 세상을 심판하는 종교적 상징이 중첩되어 있다. 즉, 물과 함께 생명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곧 ‘기다림’과 ‘도래(到來)’라는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김금희 시인의 ‘빗소리 한 장’은 비(雨)를 대(對)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갈증을 함께 드러내는 문학적 소재로서 우리에게 후두득 들리는 듯하다. 삶의 현장으로서 ‘대지에 문신이 드러나’고, 그 빗소리에 ‘사랑도 문드러지는’듯한 절대 고독에 ‘대책없는 한 그루 나무’로 서있는 화자(話者)의 절망으로서 알몸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는 비가 오고서야 무엇인가에 ‘젖음’이 알몸이 드러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빗소리 한 장’에 무거운 생애를 걸치고 싶었을 영혼들에게는 이 시가 빗소리 한 장에 고요히 나를 맡기는 평화의 입례송이 되기도 하리라.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