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와 한반도 전쟁위기설로 많은 국가들이 참가는 물론 개최 여부에도 큰 우려를 자아냈던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더욱이 북한의 핵심인사들이 개회식과 폐회식을 참관했고 남북단일팀 구성으로 남북관계의 소통창구 역할 역시 이루어졌다. 북한의 참가의사 결정과정에 ‘평양올림픽’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켜 폄하하려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의도가 무색해질만큼 국민적, 세계적 관심은 뜨거웠다. 이제는 오는 9일부터 시작되는 패럴림픽을 남기고 있다.
본래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c’과 ‘올림픽’의 합성어였던 패럴림픽은 척추 상해자들을 위한 경기였다가 또 다른 장애인들도 합류하면서 그리스어 전치사로 ‘옆으로 나란히’를 뜻하는 ‘para’로 전의(轉意)되어 기존의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한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원은 독일 태생 의과교수인 루드비히 구트만에 의해서 1939년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척추상해를 입은 영국 참전병들을 위한 운동회를 개최했던 것으로 유래됐다.
독일의 나치로부터 사람들을 탈출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한 구트만 교수는 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대회를 올림픽 경기와 대등하게 거행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그의 꿈은 반세기가 지나 지구 반대편의 극동지역인 대한민국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실현된다. 때문에 서울올림픽은 패럴림픽 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고, 그 이후로 모든 올림픽 개최도시에서도 패럴림픽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지금까지 ‘옆으로 나란히’ 개최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작된 ‘올림픽-패럴림픽’이 30년 만에 다시금 대한민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신(神)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준 가장 큰 선물은 어떠한 환경적 제약과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스스로를 극복하며 새롭게 도전하고 구현해내는 ‘불굴의 의지’일 것이다. 이 힘으로 인류는 원시시대에서 현재의 고도화된 문명까지 발전해왔다. 때문에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 명언의 주인공 헬렌 켈러부터 청각장애 작곡가 베토벤, 천재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그리고 선천성 사지장애로 양손에 두 손가락씩밖에 없는 장애극복 피아니스트 이희아 등과 같은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과 위대함을 자각하며 진정한 박수를 보내며 위안을 얻는다. 그러므로 장애인올림픽이 열리는 참된 가치는 ‘절망, 위안, 희망, 의지’로 자기극복 과정이 결정체로 표출되고 인류의 위대함을 담아내는 진정한 세계인들의 축제 중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평창에서 열리는 이번 패럴림픽은 장애인올림픽을 넘어서 인류의 위대한 정신이 발현되는 ‘평화와 희망의 축제’로 거듭나며 다시 한 번 패럴림픽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패럴림픽의 정신이야말로 70년 동안이나 장애와 불구상태로 지속되어온 우리 한반도의 분단현실에 꼭 필요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장애의 절망과 고통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의지력을 발휘하기까지는 누군가의 위안과 용기를 불어넣어줌을 통해서 얻는 ‘희망’으로부터 출발한다. 불행히도 한반도 장애불구의 상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고 거꾸로 한반도 주변들은 한반도의 지속적인 장애상태를 바라는 듯하다.
이번 패럴림픽의 어원인 파라(para)와 개최지명인 평창(平昌)은 연관성이 있다. ‘평평하게 다스리고 곧게 바로잡는’, ‘평화의 평(平)’자와 ‘기쁘고 아름답게’, ‘창성하는 창(昌)’자는 수직관계로 가는 갑질의 세계관이 아닌 ‘옆으로 나란히(para)’ 다함께 하나로 가는 평화의 정신과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30년 만에 또 다시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패럴림픽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일 것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시작으로 인류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의 정신이 대한민국에서부터 창창(昌昌)하게 타오르게 하자. 한반도의 불구상태를 극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 세계로부터 받아들이며 그 힘으로 주변국들을 일깨워주자. 지금이 바로 기회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