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멋진 표현이 있다. 당·송(唐·宋)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에 나온다. "우리 인생이 천지간 부질 없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뭐가 다른가. 이 몸뚱아리는 저 넓고 넓은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하나와 또 뭐가 다른가." 영어로는 'a drop in the ocean'(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라고 한다. 이 근사한 시어(詩語)는 나에게 광대무변의 세계인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해를 도와준다. 빅뱅으로 시작된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지구는 46억년. 아, 30여년 전 읽었던 마쓰이 다까후미 동경대 교수의 '지구, 46억년의 고독'이라는 시적인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다. 생명은 38억년, 인간은 4만년, 인류문명은 4000년의 퇴적층이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대략 13만 광년(光年)으로 추정된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km를 진행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려간 거리가 1광년이다. 상상해보라. 그 속도로 13만년을 가야하는 길이와 두께를... 인류는 예수탄생 기준으로 겨우 2000년을 살아왔다. 우주학(cosmology)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너무나 커서 초현실적이
영국·미국·캐나다 3국을 순방한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국민의 자긍심을 심기보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8일부터 24일까지 순방일정엔 여왕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기조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런던에선 장례식 전날 예정됐던 참배일정이 현지교통 사정으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1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게 치밀히 짜여지는 대통령의 외교행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국민을 당혹게 했다. 뉴욕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환담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30분 간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부분 언론이 저자세 외교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정상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두 정상간 만남의 격을 낮췄다. 순방 성과를 국민 앞에 내놓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21일 뉴욕에서 있었던 ‘글로벌 펀드’ 행사장을 나서며 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극에 달했다. “국회 이 xx들 승인 안해주면···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 발언이 22일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프랑스의 AFP를 필두로 미국의 CNN, 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 유력언론들까
2주 전 통일부장관은 추석을 맞이하여 북한에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하는 통지문을 발송하려고 했으나 북한이 수신을 거절하여 남북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지문 내용은 시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상봉사업을 논의 하자는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 상황 속에서 북한이 긍정적 화답을 할 것이란 기대를 얼마라도 갖고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표면적으로 보면 모든 남북간 정치적 현안을 떠나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인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그야말로 인도적 성격의 사업을 제안함은 당연하고 적절하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대방과의 합의가 필요한 일을 추진함에는 상대방의 생각, 입장을 고려해야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북한은 약을 올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로서야 이산가족상봉사업이 인도적 사업이지만 북한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정치적 성격의 사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사업이 성사된 것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체제의 인정 및 화해 불가침, 그리고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을 하자는 합의가 있은 후에 이루어 졌고 이 후 20차례 가까운 금강산 상봉도 우리가…
‘무엇으로 불러드릴까요’ 이렇게 물어오면 아직 무엇이라 이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본질도 바뀔 수 있다 생각하는 성숙된 사람이 해야할 걱정을 떠맡아 이것, 저것 불러대는 나도 미숙한 사람에 불과하다.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늘 고민거리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에게 ‘실향민’이라 부르는 확실한 언어가 있으나,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기억은 모호하다. 1998년 고향을 떠났으니 잊을만도 하다. 사람들은 잊어야 살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떠날 때 고향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당시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건 국가가 방치한 개인에게 남겨진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사랑과 증오가 엇갈려 현재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도 못하게 북한을 들여다보고 답해야하는 북한학을 전공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고 실수다.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살아갈수 있을지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이게 뭐지’ 하면서 솟구치는 내면의 뭉치를 알려고 북한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다. 얼마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빅마우스’를 보았다. 성실히 살고자 하였으나, 선택받지 못했고 결국 주인공이…
그릇된 신앙이 빚어내 폐해, 또한 현재 세상에 끼치고 있는 해독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신앙은 신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확립하고, 그 관계에서 생기는 자신의 사명과 행동을 결정한다. 따라서 그 관계와 거기서 나오는 사명의 결정이 잘못되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종교적 불신과 신성모독이 아무리 큰 악이라 해도 미신은 그보다 더 큰 악이다. (플루타르코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구원,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우리에게는 외면적인 형벌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신을 배신하는 정신 상태, 신성이 주어져 있으면서도 동물적인 욕망의 지배에 자신을 맡기는 정신 상태, 신을 눈앞에 보면서도 인간의 위협과 분노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선을 의식하는 조용한 기쁨보다 세속적인 명예를 좋아하는 정신 상태이다. 인간에게 그 이상의 파멸은 없다. 이러한 정신 상태, 뉘우칠 줄 모르는 인간이 무덤까지 가져가려 하는 정신 상태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채닝)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교회가 말하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밀림 속에 잘못 들어가 길을 잃고, 숲속에서 길을 잃
육체를 물질적으로 지탱해주는 것(예컨대 음식물과 물 같은 것)이 없으면 정신생활도 있을 수 없다고 해서, 인생을 정신의 힘이 아니라 물질의 힘으로 설명하거나 영혼과 육체를 합친 힘으로 설명하는 것은, 마치 증기 기관차의 움직임을 증기의 힘으로 설명하지 않고 증기를 수시로 실린더 속으로 보내는 밸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물론 밸브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증기도 증기기관에서 실린더로 적절하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밸브만 해도, 역시 증기의 힘으로 축이 회전해 개폐되지 않으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마법의 고리는 이상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자주 마법의 고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이원론(二元論)에 빠지거나, 물질을 생명의 유일한 근거로 인정함으로써 그 고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표도르 스트라호프) 신성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 살며 쉬지 않고 그 본원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세네카) 내가 인간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 스스로 독립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정신적 생활에 눈뜨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넷플릭스 6부작 수리남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칼과 총으로 사람을 찌르고 쏘는 거대한 액션물이지만 구성이 치밀해 끝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스토리텔링의 교과서 격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메시지 중 으뜸인 '캐릭터보다 플롯'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빼어난 스토리텔링 극답게 인과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드러난다. 극중 전요환(황정민)은 중남미 소국 수리남에서 교포 등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는 목사인데 할렐루야, 순수한 마음, 형제님 등의 말을 일상적으로 구사한다. 하지만 목사라는 직업은 마약 밀매를 위한 위장술이다. 이 반전에 주목해야한다. 전요환은 그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왜 목사를 택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수리남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없다면 수리남은 한낱 폭력물로 끝났을지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목사는 하나의 직업이지만 종교적·사회적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목사가 부르짖는 말은 세속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가닿고 싶은 순수하고 신성한 세계일 터이다. 이쯤이면 전요환이 왜 자신을 목사로 위장했는지 쉽게 이해된다. 마약 밀매라는 거대한 악의 세계를 숨기
1. 2009년 11월에 단행된 북한 화폐개혁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다. 경제 난국을 타결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한 해에 두 차례나 중국 방문에 나선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경제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후진타오는 김정일에게 13억 인민도 먹여 살리는데, 고작 2천만을 굶기냐며 질타했다고 한다. 원조는커녕 욕만 푸짐하게 얻어먹고 돌아오는 김정일 가슴엔 원한이 사무쳤겠지만, 북한 인민을 고난의 행군으로 몰아넣은 것은 중국이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이었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그런 모욕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2. 삼성이 세계 12위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자산만 131조 원에 달한다니, 어지간한 국가 자산보다도 많지 않은가. 그런 삼성 총수는 지금 영국에 있는데,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엔 초청받지 못한 모양이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사건, 반도체 신화를 쓴 이건희는 뇌물과 조세 포탈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 일선에서 한동안 물러났다. 이재용은 그룹 승계 과정에서 뇌물과 횡령죄를 저질러 끝내 감옥에 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에 무슨 범죄의 피라도
여성의 생애주기 중 갱년기에 대해서 정의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연령면에서 볼 때는 대개 45세에서 55세 무렵의 폐경을 전후한 시기를 말한다. 폐경이 가까워지고 나이가 들면서 난소의 기능이 저하되어 에스트로겐(Estrogen)이라는 호르몬의 감소되면 이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가 심하게 나타나는 기간을 갱년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열이 오르고 땀이 많이 나는 증상과 함께 질 건조증과 위축이 동반되기도 한다. 부부관계 후 자궁출혈이 많아서 한동안 고생했고 이어지는 만성방광염으로 양약 치료받다가 호전이 없어 내원한 갱년기에 접어든 그녀는 말한다. “남편은 쉬고 와서 혈기가 넘쳐서 시작하는데 저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안 하고 싶었어요.” “힘들다고 말을 꺼냈으면 어땠을까요? ” “그러게요,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가 하면 어떤 60대 남자 환자는 묻는다. “저는 몸 관리도 잘하고 해서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집사람은 안 그래서 고민돼요. 저번에도 사정사정해서 몇 달 만에 겨우 했네요.” 한다. “물어보세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몰라요. 그냥 하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기혼자 743
단풍이 지기 전 추석이 왔다가는 게 다행스럽다. 숲에는 아직도 나뭇잎들이 나무의 상처를 가려주고 하늘을 적당히 숨기다가 드러내 주기도 한다. 철 늦게 우는 새소리는 ‘가을이 가요’ ‘가을이 가요’하고 낮은 소리의 리듬을 탄다. 산속 작은 벌레들의 연주는 땅으로 깔리다 그 소리 끝내 나무뿌리로 스며든다. ‘숲 속의 고요’에 청각이 맑아지는 시간이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인간관계보다 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어느 정도 고립되어 지낼 때 창작의 방향으로 개성이 발달되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강의하는 수필창작 반에 등록함으로써 인연을 맺은 L 씨라는 분과 도청 옆 ‘담’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예약해야 된다는 그 집 분위기는 뭔가 담 안의 깊이와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L 씨는 내게 ‘보리굴비 정식’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처음 온 음식점이고 내게는 조금 부담이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주문 같았으나 좋을 대로 하자고 했다. 성공은 형식과 물질 속에 있는 것 아니고 삶에 대한 이해와 긍정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성공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스스로 인내하며 불행하지 않는 뒤진 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