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혈서 /정미소 유배살이 하던 초가에 들어선다 마당 가득 붉은 맨드라미가 꽃대를 흔든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새 뒤 막 붓을 놓은 먹물이 붉은 획순마다 우국충정이다 혈서로 적어올린 상소문이 대역죄 되었다 파도에 갇힌 초가의 붉은 한낮 곡기 끊긴 마당에 엎드려 올리는 맨드라미의 혈서를 읽는다. - 계간 ‘리토피아’ 가을호에서 남도의 초가에 붉게 핀 맨드라미를 바라면서 우국충정의 혈서를 떠올린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알 수 없어도 유배길에 오른 안타까운 심사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 시대의 우국청정은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흘러간 시대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과 시작은 같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옳든 그르든 이미 옛시대의 우국충정은 골동품화 된지 오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영혼이 담긴 맨드라미는 더 붉을지도 모르겠다. /장종권 시인 문화 가 - 00224<일간> 2002년 6월 15일 창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최순실과 관련된 예산을 자진해서 삭감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특혜의혹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고양 K-컬쳐밸리 사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마침내 경기도의회도 K-컬처밸리 특혜의혹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24일 싱가포르 현지를 방문했다. 이 사업의 투자사인 방사완브라더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싱가포르 자금투자사가 은행 대출을 받아 사업 시행사에 자금을 댄 것을 확인했다. 사업자인 CJ E&M조차 케이밸리 출자금을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출을 해서라도 자금만 차질없이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사실은 방사완브라더스가 자금 조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용수(더민주·파주2) 조사특위 위원장은 “1조4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호텔, 건설, 자금지원, 유통 등 각 분야에서 전문업체로 컨소시엄을 꾸리는 게 일반적인데 케이밸리가 이런 업체를 끌어들인 것 자체가 의혹”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CJ E&M이 외국인투자기업의 지위를 얻기 위해 자금 여력이 없는 해외투자사를 끌어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26일 현장에서 본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의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는 장엄했다. 흥겨운 축제처럼 보였지만 분노와 탄식, 그리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이 가득했다. 이날 눈·비와 진눈깨비가 내리고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 날씨 속에서도 서울엔 연인원 150만명이 모였다. 지방 40만 명까지 합치면 무려 190여 만 명이었다. 아마 주최 측도 이날 악천후 탓에 참가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지만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모였다. 지난 12일 3차 촛불집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아이들 손을 꼭 붙잡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이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면서 다시는 이런 일을 겪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산교육을 시키기 위함 일터이다. 요사스런 여인과 ‘십상시’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우스갯거리로 만든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의 분노는 지축을 흔들고 하늘을 찔렀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포위하는 ‘청와대 인간띠가 이어졌고, 집회 참가자들은 ‘하야하라 박근혜’, ‘즉각 퇴진하라’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행진했다. 수원 광교산 마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임금과 세자의 갈등, 비극적인 세자의 죽음 등은 대중의 눈길을 끌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영조는 2남 12녀의 자녀를 두는데,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9세에 죽고, 둘째이자 마지막 아들인 사도세자는 영조의 나이 41살에 태어나 많은 사랑과 축복 속에 자라게 된다. 영조는 경종이 죽자 본인만이 유일한 삼종(三宗, 효종·현종·숙종)의 혈통이기 때문에 종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필연성을 언급하면서 등극을 하였고,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도 사용하였다. 그렇게 삼종의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영조가 그 혈통의 맥을 지워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큰 기대 속에 성장하지만, 오히려 큰 기대는 사도세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둘의 사이는 멀어져 가고, 결국에는 두 사람 중 한 명만 살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사도세자가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영조 38년(임오년 1762) 윤5월 22일 나경언이 세자가 역모를 모의한다고 형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커진다. 세자가 정말 역모를 도모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도세자는 매일매일 석고대죄를 하며 처분을 기다리고 다음달 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공짜”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그렇고, 마시는 물 또한 그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물을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강수량을 통계로 살펴보면 연 평균 약 1천400㎜이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높지만, 문제는 계절의 편차가 심해서 여름철에 집중돼있기 때문에 실제 강수량의 약 27%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있다. 특히 산악지역이 많아 물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바다로 빨리 빠져 나가버린다. 따라서 가을, 겨울철에는 물이 부족한 상황이며 ‘세계물포럼’에서는 우리나라를 물이 부족할 수 있는 국가로 보고 있다. 2013년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282ℓ의 수돗물을 사용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루 1t 이상을 사용하는데 이는 페트병 1ℓ짜리 1천개 이상을 사용하는 것이며 선진국인 독일이나 덴마크에 비해 2배 이상의 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물을 낭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물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물의 가격을 1로 봤을 때 일본은 1.9배,…
안산 ‘영전마을’ 찾아서 화성, 시흥, 안산 등 3개 지역에 걸쳐 있는 시화호는 과거 ‘황금어장’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 그물을 건지면 매번 ‘만석’이 돼 돌아왔고, 그렇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대대손손 살아왔다. 그러나 1990대 중반 당시 아시아 최대의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모습은 점점 그 발자취를 감추게 됐다. 방조제가 완공된 이후에는 주변의 산업단지와 도시지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폐수들로 수질이 악화되면서 주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하지만 최근 이같은 아픔을 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마을들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안산 대부도에 위치한 ‘영전마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전마을은 염전식물 ‘함초’를 활용한 먹거리 조성과 함께 주변 마을과의 협력체계를 구축, 향후 마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다. 주민들과 함께 활기찬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영전마을’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민, 수산물 이용해 생계 유지 방조제 만들어진 후 어려움 가중 마을 역
막바지 가을걷이다. 서리를 맞고서야 제대로 영근다는 서리태다. 거름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토양이 서리태와 맞지 않는 때문인지 줄기만 무성하고 실속이 별로 없다. 파종을 하고 잎이 너무 무성해서 세 번이나 순주기를 했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순주기 할 때는 저렇게 잎과 줄기를 잘라내고 콩이 제대로 크기나 할까하는 조바심과 하늘이 키우는 농사를 이렇게 무참히 잘라도 되나하는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곤 했는데 막상 수확기가 되니 키만 웃자라고 줄기만 무성하여 일만 많지 정작 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밭둑 척박한 땅에서 마디게 자라던 콩은 키가 작고 줄기마다 콩을 다복하게 매달아 보기에도 탐스럽다. 팥도 콩과 같은 상황이다. 거름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고구마도 잎이 어찌나 좋은지 많은 수확을 기대했는데 땅 속으로 줄기만 많이 내렸지 막상 고구마는 별로 없다. 밑거름도 상황에 맞게 해야 하고 작물 선택도 토양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도로변 텃밭이라 토양도 좋고 농사도 잘 되던 땅이었는데 옆에 3층 공장이 생기고부터는 그늘이 져서 영 농작물이 시원찮은 것 같아 속상하다. 덤불만 무성한 콩을 수확하고 이삭을 줍기 위
미국사회에 도널드 트럼프의 숨은 지지자는 원래 없었다. 단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지난 8년의 정권과 과거의 자기 투표를 탓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가정 내 권력을 잃은 미국의 보수층들은 한국의 수구세력처럼 잘 뭉치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여성 대통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과 오랜 직장생활을 겪어서 조직능력도 좋은 편이다. 쉽게 말해 투표소에 혼자서 가는 일이 없고 보통 3~5명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투표를 한 이후 막걸리집에 가서 왕년의 월남전 얘기를 하거나 여성에게 작업을 걸었던 무용담을 주고받기를 원할 것이다. 반면 진보성향의 투표자들은 주로 혼자서 투표장에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그러다가 휴일이 겹치거나 날씨가 나쁘면 투표를 포기한다. 이들은 억지로 투표장에 나오라고 할 친구도 없다. 투표보다는 휴식을 원하는 실업자에게 명예퇴직 후 연금을 받는 친구 한두 명이 연락해 다음처럼 말했다고 생각해보자. “야! ○○야 뭐하냐? 나 투표 마치고 ○○마담이 있는 ○○집에 먼저 가 있을게! 너 안주 뭐가 좋냐? 얼른 나와서 투표 하고 와! 너 그 ○○○당 그 사람 이름 알지?” 이런…
10명의 미국 대통령과 맞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그는 늘 카키색 군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까닭은 혁명을 ‘미완’으로 자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9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과 만나게 될 것이다. 지옥의 뜨거움 같은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계속 기다려온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그는 ‘미완의 혁명’을 핑계로 반세기 동안 독재를 펼쳤다. 또 미사일 사태로 미국과는 완전히 적국이 돼 버렸다. 혁명 동지인 체 게바라도 그의 곁을 떠났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 혁명의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평소 헤밍웨이에 대한 존경이 대단했다. 특히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를 완성하고, 1954년 노벨 문학상까지 타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혁명 이후 헤밍웨이마저 미국으로 쫓아냈다. 얼마 안돼 소련이 붕괴했고 러시아의 원조마저 끊겨 고립무원 지경에 빠졌다. 모두 쿠바가 혁명과 독재의 이미지로 각인된 원인들이다. 카스트로는 끊임없이 암살 기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