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혈서
/정미소
유배살이 하던 초가에 들어선다
마당 가득
붉은 맨드라미가 꽃대를 흔든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새 뒤
막 붓을 놓은 먹물이
붉은 획순마다
우국충정이다
혈서로 적어올린 상소문이 대역죄 되었다
파도에 갇힌 초가의 붉은 한낮
곡기 끊긴 마당에 엎드려 올리는
맨드라미의 혈서를 읽는다.
- 계간 ‘리토피아’ 가을호에서
남도의 초가에 붉게 핀 맨드라미를 바라면서 우국충정의 혈서를 떠올린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알 수 없어도 유배길에 오른 안타까운 심사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 시대의 우국청정은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흘러간 시대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과 시작은 같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옳든 그르든 이미 옛시대의 우국충정은 골동품화 된지 오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영혼이 담긴 맨드라미는 더 붉을지도 모르겠다. /장종권 시인
문화 가 - 00224<일간> 2002년 6월 15일 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