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친구의 무례한 태도로 마음이 몹시 상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일을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참아 넘겼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전화를 했지만 정작 전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너스레만 떨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는 그리도 끄집어내기 힘든 단어였을까? 사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행위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주 지연되고 회피된다. 우리는 변명을 먼저 떠올리고, 상황을 설명하며, 때로는 상대의 오해라고 퉁 친다. 사과를 미루는 동안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간다. 그렇다면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성격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구조적 문제일까? 사과가 어려운 첫째 이유는 자아의 방어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잘못했다”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자아 이미지-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에 흠집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처럼,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와 부인을 먼저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만만치 않다. 공직의 청렴도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미래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조금만 방심해도 무참히 무너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더 많은 노력과 더 철저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깨끗한 공직사회만이 국가사회의 진정한 번영을 담보한다.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8.94점(10점 만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8.59점보다 0.35점 소폭 상승한 수치다. 종합청렴도는 행정서비스를 경험한 도민이 평가하는 ‘외부체감도’, 기관 내부직원이 평가하는 ‘내부체감도’, 각 기관의 부패방지 노력을 평가하는 ‘청렴노력도’ 3가지 분야로 평가한 뒤 최고 1등급에서 최하 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외부체감도와 내부체감도 평가 설문조사에는 도민 5027명, 기관 소속 직원 2312명이 참여했으며, 신뢰수준은 95%, 허용오차 ±1.31%p(외부), ±1.18%p(내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을 막아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 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는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고령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추세다. 먹고살기 위해서 현장에 나서는 노년층의 산업안전을 위한 정밀한 대책들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살기 위해 산업전선에 나선 노년에게 일터가 위태로운 죽음길이 돼서는 안 된다. 25일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재작년 산재 사망자 10명 중 6명 이상이 55세 이상 근로자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보상을 승인한 사망자는 총 2098명으로, 이 가운데 65.8%가 55세 이상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 업무상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827명, 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1271명으로 집계됐다. 고령화 속 노동환경의 안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어려운 통계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산재 사망자는 18세 미만 0명, 18∼24세 16명, 25∼29세 32명, 30∼34세 39명, 35∼39세 69명, 40∼44세 153명, 45∼49세 160명, 50∼54세 248명, 55∼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 도성을 나간 숭례문은 오랫동안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 1호였다. 여기서 1호가 국보의 관리 번호일 뿐임에도 가치가 제일 높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았다. 이에 시달리던 국가유산청은 국보에 붙인 번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국보다. 1394년 8월 24일 개성에서 서울로의 천도를 결정했고, 9월 1일에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으며, 9월 9일에 정도전이 궁궐과 종묘를 포함하여 새수도의 도시계획도를 그려 바쳤다. 이때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도 정했을 것인데, 1396년 9월 24일에 여러 성문을 완성한 후 남쪽의 대문을 ‘숭례문’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남쪽의 기준은 정궁인 경복궁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과 정궁인 경복궁을 잇는 직선의 대로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는 그렇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성 밖에서 숭례문을 통과한 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길은 서울역-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광화문을 잇는 왕복 8차선의 세종대로다. 비록 직선은 아니지만 숭례문에서 경복궁의 광화문을 잇는 최단코스의 길이다. 그런데 세종대
새해가 되면 각종 미디어는 ‘올해 달라지는 정책들’에 주목한다. 2026년부터 새로 시행되거나 지원 대상과 액수가 확대되는 정책을 소개하는 홍보물과 언론 보도가 넘쳐난다. 나의 삶에 도움이 될 새로운 제도들을 꼼꼼히 살피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홍보물 뒤편에는 꼭 변했어야 함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 멈춰버린 정책들 때문에 삶의 변화와 회복을 꿈꾸기조차 어려워진 사람들이 있다. 새해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누군가 변하지 않은 정책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나”라는 질문만큼이나 “무엇이 아직 바뀌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더 무겁게 던져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제도이다. 2023년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도입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이 이뤄졌으나,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가혹하다. 2025년을 지나 2026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정작 피해자들이 절실하게 요구했던 변화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비한 제도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마모되고 있음에도, 정책은 여전히 작년에 멈춰 있다. 전세사기피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정치 거물의 퇴장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지녔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언제나 화려한 수사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앞세운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는 때로 고독했고, 자주 오해받았다. 대중의 박수를 받는 쉬운 길보다 국가 운영의 복잡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의 갈등을 구호로 덮지 않았고, 결정하기 어려운 과제를 다음 세대나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단호함은 종종 불편함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국가의 골격을 이루는 제도와 실질적인 변화가 남았다. 정치는 말로 남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기초를 닦고, 지방분권의 초석을 놓으며, 민주주의를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생애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타협하되 원칙을 팔지 않았고, 유연하되 가벼워지지 않았으며, 강단 있게 행동하되 선동에 기대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빈자리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정치는 다시 책임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는가. 국가의 내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는 여전히 가능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최근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와 용인시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지난해 12월 26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분량이어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기업이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었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이전’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발언 이후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지역과 정치권의 갈등, 반도체 관련 업계의 우려도 발생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김 장관의 발언은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과 지산지소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의 발언 전에도 용인 국가산단·클로스터를 새만금에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라북도 국회의원과 도의회, 시·군의회, 시민·농민단체 등이 RE100 산단과 연계해 새만금으로 반도체 관련 시설을 분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 전북지역 국회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과 송전망 문제를 동시에 안
오늘의 우리 시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80년을 한결같이 통용되는 것은 '분단시대'란 어휘다. 1945년 광복 이래 남북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까닭에서다. 이를 역사의 문맥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 오래되고 익숙하여 별반 감응이 없다. 그래서 문학이고 또 분단문학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주면서, 그것을 나 자신의 문제로 체감하게 하는 데 문학의 힘이 있다. 우리 문학에서 이 대목에 탁월한 성취와 공명(共鳴)을 촉발한 작가가 전상국 선생이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 학교에서 만들던 '문리학총'의 편집 때문이었고, 선배 문인에의 청탁으로 '동포여'라는 콩트를 받으면서였다. 어린 눈에도 참 좋다는 생각, 틀림없이 대 작가가 될 것이란 외람된 생각을 했다. 당시 경희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선생은, 일련의 분단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단번에 동시대의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선생은 만학(晩學)으로 대학원을 왔고 석사과정을 같이 다녔으며 이후 강원대 교수로 갔다. 그 사이에 얽힌 선생과의 추억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작가로서 한 시대의 중심을 관통한 선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