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직장인들이면 거의 매일하는 고민 중 하나다. 그러나 메뉴선택과 비용을 놓고 고심은 따르지만 짜증보다는 행복과 기대가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업무 이외에 대화와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직장 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은 비록 한정되어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점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의미처럼 마냥 편한 시간이 아닐 때도 있다. 직장동료들, 특히 부서 및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 먹는 기회가 많아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나 혼자 따로 먹고 쉬려고 해도 그것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의 직장 문화가 이를 허용치 않는다. 사실 점심이 ‘세끼’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고 살았다. 영조 때 문신 조중회(趙重晦)가 45년간 관직생활을 기록한 입조일기(入朝日記)에도 조선시대 관리는 아침과 저녁 두 끼가 기본이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그 이후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원래 ‘두 끼’가 기본…
또 발이 묶이다/이상훈 우물가에 쪼그려 앉아 어떻게 하면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길어 올릴까 궁리궁리한 끝에 결국 포기했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려고 푸줏간에서 저울을 빌려왔다 눈금 읽는 방법을 몰라 도로 가져다주었다 옆 마을 용한 점쟁이 왈 금년에는 애정운이 안 좋은 괘가 나왔다 하여 몹시 실망하여 점집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루마기 편지지 낱장을 사서 왔다 손꼽아 기별을 기다리다 못 견디어 심부름 값을 주고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찬 겨울이 오기 전에 낙향하려고 주섬주섬 봇짐을 싸는데 기러기가 먼저 찾아오는 바람에 또 발이 묶여 일 년을 더 눌러앉아 살기로 했다 -이상훈 시집 <나비야 나비야>에서 사람은 꿈을 꾸며 산다. 꿈이라도 있어야 이승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꿈을 꾸지 않으면 인생이 참 팍팍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꿈은 꾸어보았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루어지는 꿈과 시인의 꿈은 좀 다르다. 시인은 이루어지는 꿈은 처음부터 꿈이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 사랑받는 비결 1995년 8월 개장한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이하 수원점)은 수원지역 최초의 백화점이다. 지난 2006년에는 두 개층을 증축하고 전관을 새롭게 단장하며 지역 1번점의 위상을 새롭게 세웠다. 최근에는 특색 있는 식품관 구성과 지역내 최초로 ‘우수고객 발렛파킹’ 서비스를 시행하며 한차원 높은 고객서비스를 실현,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환경안전 최우선 기업 수원점은 국내 환경안전 기준법을 충실히 이행하는 등 환경안전보건 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동종업계 최초로 환경인증(ISO 14001)과 2003년에는 안전·보건 인증(K-OHSMS)을 획득했다. 2011년에는 한국화재보험협회(KFPA)로부터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선정 됐으며, 올해 역시 재인증 심사에서도 인증을 받아 2회 연속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선정됐다. 앞서 2008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 안전대상(안전행정부장관상)과 에너지유공자상(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수원점의 모든 영업활동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 道미술관 ‘친절한 현대미술Ⅱ’展 추상미술은 다양한 미술 운동의 집약체로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예술 혁명 중 하나다. 20세기에 이르러 현대미술은 ‘추상’을 통해 주제, 재료, 표현 방법 등에 있어 기존의 미술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했다. ‘추상’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의미가 모호한 것, 분명하지 않은 것 등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전적으로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해 파악하는 작용’을 뜻한다. 일례로 ‘의자’라는 도구는 앉을 수 있는 물건의 공통된 특성과 속성을 추출해 파악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이 같은 사유를 사상과 사회,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추상과 추상미술의 이해는 현대의 사상, 사회, 문화의 본원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경기도미술관은 오는 10월 13일까지 2013년 경기도미술관 특별기획전 ‘친절한 현대미술Ⅱ - 추상은 살아있다’를 개최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과 대중을 쉽고 친근하게 연결하기 위한 취
역사상 초유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일은 국가정보기관의 위상추락은 물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표어대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보기관이 국가안위와 무관한 일로, 양지에서 난타당하는 모습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야의 막무가내식 당파이익 추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가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합의해 놓고도 여야가 극한대치로 치닫고 시한이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사범위와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 직원 댓글 관련 의혹 국정조사’다. 즉 국정조사의 범위가 국정원 직원의 댓글에 관한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나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 혹은 무단불법 사초열람 및 공개라는 의혹을 갖고 있지만 이번 국정조사 범위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야당은 NLL관련 논쟁에서 궁지에 몰렸던 것이 사실이고 국정원의 협조 하에 이 이슈가…
사상 최장의 장마가 끝나자마자 무더위가 시작이다. 연일 32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전력 수요도 더욱 늘어날 조짐이다. 전력당국도 다음 주가 전력수급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전망한 예상수치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거래소는 8월 중 예비전력률을 551만kw 확보하고 있으나 둘째 주에 마이너스 103kw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정전사태인 블랙아웃 상황이 일어날 최대위기다. 전력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전력수급이 이처럼 아슬아슬한데도 우리주위엔 아직도 정부의 에너지 절약시책을 외면하는 곳이 너무 많다. 단속이 있지만 냉방기를 가동한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업소는 줄지 않고 있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 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대정전으로 입을 엄청난 손실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공공기관을 비롯 업소에서는 전력낭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전 생활화 등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개개인도 언제든 전력대란이 닥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물 쓰듯 전기를 낭비해선 안 된다. 안 쓰는 전기 플러그는 뽑아놓고 불필요한 전원은 끄는 등 일상에서 절전을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여름철
예전 해외여행은 부자나 이른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방학 중 연수 코스가 될 정도다.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모아 외국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외국여행이 국내여행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형편이 좋아진 중국인들도 최근 무더기로 외국여행을 즐기고 있다. 올해 1~5월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이 무려 연인원 3천800만명에 육박한단다. 엄청난 숫자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외국으로 나가다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문화적 차이라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다. 중국인들은 외국여행 시 자국에서 하듯이 침이나 껌을 함부로 뱉는다.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금연구역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거나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행위 등이 지탄을 받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이 오는 10월 새 ‘관광법’ 시행에 맞춰 해외여행 중 현지 공공질서를 위반한 자국민을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자국민이 해외여행 시 일종의 행동 서약서를 추가로 작성하고 여행 중 이를 위반하면 귀국 후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위반자에게는
“왜, 글을 쓰는가?” “문학하면 배고프다.”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당연하다. 각기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고 글을 쓰는 자세 또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세상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느끼고 싶은 충동에 글을 쓴다”라며 행동의 전제조건임을 표했다. 칸트는 “자연적인 미에 예술적인 미를 접근시키기 위한 행위”라고 했고,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지도자인 빅토르 위고는 “진보를 위한 예술을 한다”라고 했다. 누군가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는가 하면 최고의 고독을 즐기기 위함이라고 상반되게 언급한 사람도 있다. 이렇듯 글쓰기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개성적인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헝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과 동시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이기도 하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
정오/임동확 아스팔트 위의 고양이, 길가 풀섶의 앉은뱅이 망초, 냉장고 속의 마늘 싹들까지 가장 외롭고 높게 맑고 푸른, 그 어느 하나 빠트리지 않은 채 남김없이 빛나는 생의 정오 오로지 흠가지 않는 보석처럼 찬란한 눈망울을 마치 처음인양 깜박이며 다가오는 한 아이가 제 어미젖을 빨다 방긋 웃고 있고, 또 은어 새끼 한 마리가 제가 태어난 강을 떠나 막 바다로 향하고 있을 때 소리도, 형체도 없는 그 하늘이 그저 두려울 뿐 어찌 더 이상 무엇이 괴로우며 아쉬울 것인지요 논둑에서 긴 목을 빼고 있는 쇠백로 한 마리, 전나무를 기어오르는 칡덩굴, 비 개자마자 밤꽃을 탐하는 호박벌 한 마리 더욱 뚜렷하고 투명하여 제 속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환한 비밀의 대낮 금세 달라붙은 어두운 그림자조차 녹여낼 듯 뜨겁게 입술과 입술을 맞댄 채 마치 마지막인양 키스를 나누는 그 누군가 여기 결코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 기어이 갈참나무 숲을 이루고, 드디어 보리밭 위로 종달새 울음이 떠오를 때 끝끝내 안식을 모르는 생멸과 재생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소란하고 분주한 땅의 그 어느 이슬 한 방울인들 우연히 맺혀있을 것인지요 어찌 축 늘어진 8월 태양 아래의 호박잎, 오솔길에 달라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