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제·교수평가제 국내 최초 도입 해외대학과 복수학위 시행 등 선도 40년간 공학 등 융합교육 내실 추구 안 총장도 교육 패러다임 변화 시도 학부생 연구·비교과활동 증명서 등 50주년까지 글로벌경쟁력 강화 박차 2013년 4월 12일은 아주대학교가 개교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아주대는 대우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의해 공학계열 전문화 대학으로 설립돼 개혁성향이 굉장히 강한 젊은 대학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사실 아주대는 아직도 공학계열이라는 과거의 인식이 남아 있지만 의학과 약학, 생명과학, 분자과학기술 분야의 융합학문을 내실있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수원 원천동에 자리한 캠퍼스 안에 의대와 약대, 공대, 자연대, 정보통신대 등 모든 단과대학이 함께 있어 융합학문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데다 인근 광교신도시에는 바이오센터와 각종 연구시설 등이 집약돼 있어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에 본보는 아주대학교 개교 40주년을 맞아 안재환 총장을 만나 앞으로 아주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개교 50주년을 맞는 2023년에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
6·25가 발발하기 두해 전 ‘조선경비대(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공비들과 전투를 벌여온 이상찬 옹(85)에게도 6·25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그 날의 서울 분위기는 전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 벼락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미처 피할틈도 주지않고. 흡사 이 옹에게 찾아온 그 날처럼. ▲ 조선경비대 입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이상찬 옹은 1947년, 상공학교를 졸업한 18세에 가족과 함께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로 월남했다. 이리에는 앞서 월남한 맏형이 터를 잡아두고 있었지만 늘어난 식구가 먹고 살기에 타향에서 꾸린 살림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듬해인 1948년, 일거리를 찾아 나선 읍내에서 이 옹은 입대를 홍보하는 군인들과 마주했다. “요새 대학교에서 써클에 가입하라고 홍보를 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때는 조선경비대라고 당시의 국군들이 읍내를 돌면서 반공을 외치며 모병을 했습니다.” 가족들 밥상에서 입을 하나 줄일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산주의에 반대해 일가가 월남을 한 그였기에 ‘반공&
정부가 현 단계에서는 북한과 대화를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마 했던 개성공단이 잠정 조업중단에 들어갔고,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지만, 섣부른 대화는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듯하다. 대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대화를 모색할 때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늘어나고 있어도, 정부의 입장은 변치 않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위협하는 지금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마주 앉아 나눌 말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북이 국제사회의 요구대로 자세를 바꾼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즉각 가동시키겠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 강조한다.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못마땅하겠으나,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북핵’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정부의 ‘대화불가’ 입장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대응방식이다. 문제는 북한이 과연 어디서 멈출 것인가다. 만약 북한이 다음 단계에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최악의 충돌을 불사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다. 하지만 피해는 한반도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그런 엄청난 불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대화 카드를 단순
시화호는 1987년 6월에 착공, 1994년 1월 완공됐으나 이후 시화호 유역의 공장 오폐수와 생활하수의 유입으로 수질이 급격히 악화돼 국제적으로 유명한(?) 호수가 됐다. 환경보호보다는 개발 우선이라는 국가분위기가 만든 결과다. 결국 1997년 이후 해수를 유입하기 시작했고 2000년 12월에 시화호의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화를 선언했다. 거짓말처럼 철새와 어패류, 식물이 돌아오고 수도권의 명소가 됐다. 시화호 주변에는 저어새, 흑두루미 등 총150종 14만7천678개체의 조류가 관찰되고 주변 갯벌에는 대형 무척추동물, 갯지렁이류, 갑각류, 연체동물 등 총 214종이 서식하는 등 야생동식물의 낙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시화호에는 사람들도 찾아들고 있다. 국내외 환경 연구가, 사진작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호수 수변에서의 레저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는 등 친수·수변공원으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시화호에 반달모양의 인공섬이 조성되고 섬 위로 대규모 호텔, 리조트 컨벤션 센터가 들어서는 대형 개발사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9일 경기도지사-안산시장-쿠메세케이社 회장-코드라보라토리社 회장이 시화호 상업용지에 호텔과 리조트
사회복지사의 날(3월 30일)을 맞이하는 심경은 참담하기만 하다. 지난해 2월과 4월 경북노인보호전문기관과 성남시 중원구청 등에서 연이어 사회복지사 상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금년 들어 세 명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사회복지사를 향한 상해와 자살 등으로 사회복지사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지만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들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수급자가 자살하였다면 이렇게까지 방임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 정치권 등에서 요란한 빈수레 소리라도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빈수레 소리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늘어나는 복지정책과 함께 이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의 인력 수급과 근로환경 개선, 처우보장은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올 들어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종합대책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의 2012년 ‘사회복지사의 클라이언트 폭력 피해 실태 및 안전 방안 연구’에 의하면 민원인으로부터 직접적인 폭력행위를 당한 경험이 사회복지직 공무원 95%, 민간 사회복지사 65
필자가 인연을 맺은 것은 인문학강좌와 독립영화 상영이었다. 정성원 원장의 성실함과 배려도 컸지만 수원시의 인문학에 대한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죽도록 공부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KBS 글로벌 대기획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이 KBS 1TV를 통해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 제작진은 하버드대학생들을 한국의 대치동 학원가에 보냈다. 하버드대학생들과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수학 문제풀이 대결을 벌였는데, 그 대결에서 대치동 학원생들이 하버드대학생들을 이겼다. 하지만 하버드대학생들이 이러한 결과보다 더 놀란 사실이 있다. 바로 한국의 학생들이 가족을 위해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하는 공부는 결과적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공부하는 인간>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한국계 유대인 릴리 마골린,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글로벌 기업 구글에 입사한 릴리와 릴리의 아버지 힐 마골린의 공부습관에 관심을 기울였다. 힐 마골린은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 &lsq
흔히 욱일승천기로 불리는 일본제국주의 깃발의 정확한 명칭은 ‘욱일기(旭日旗)’다. ‘욱일승천(旭日昇天)’은 사전적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勢力)이 성대(盛大)해짐”을 이르는 한자성어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햇살모양의 깃발은 ‘욱일기’로 부르는 것이 옳다. 욱일기는 일본의 국기에서 진화한 제국주의 산물이다. 일본기의 빨간색 동그라미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의미를 형상화했다. 침략야욕이 물씬 느껴진다. 욱일기는 일본이 한창 탈(脫)아시아를 선언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당시 일본군 군기에서 기원했다. 마음이 찜찜한 것은 현재도 일본 국군격인 자위대가 욱일기를 사용 중이라는 점이다. 1945년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 일본은 일본군을 해산했고 욱일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불과 7년 만에 일본이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부활하면서 해상자위대(해군)부터 욱일기를 다시 게양했다. 현재는 육상자위대 또한 첨단무기에 욱일기를 달고 시위 중이다. 욱일기를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국가들은 착잡하다. 욱일기를 볼 때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앞세워 침략전쟁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참 극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직후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2.5t 군용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버스가 대중교통의 중심역할을 하다가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버스다운 버스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생산된 시내버스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일반시내버스도 에어컨과 히터가 제대로 달려서 나오고, 버스의 엔진도 출력이 좋아지고, 여러 가지 안전장치들이 부착되어 훨씬 안락하고 편안한 대중교통이 되었다. 60년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버스의 서비스가 과연 우리 국민들의 소득에 맞춰서,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었는지는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버스 기사들은 승객 입장보다는 자신의 운행 편의를 바탕으로 거친 운행을 하고 있으며, 서비스의 질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특히 차량은 선진국 시내버스에 비하면 턱 없이 싸구려이고 수준에 못 미친다. 비록 저상버스를 개발하여 운행하고 있다고 하나 선진국 버스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그 중에서도 조금만 투자하면 기술적으로 훨씬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분야가 실내 온도조절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