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 단계에서는 북한과 대화를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마 했던 개성공단이 잠정 조업중단에 들어갔고,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지만, 섣부른 대화는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듯하다. 대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대화를 모색할 때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늘어나고 있어도, 정부의 입장은 변치 않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위협하는 지금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마주 앉아 나눌 말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북이 국제사회의 요구대로 자세를 바꾼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즉각 가동시키겠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 강조한다.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못마땅하겠으나,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북핵’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정부의 ‘대화불가’ 입장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대응방식이다. 문제는 북한이 과연 어디서 멈출 것인가다. 만약 북한이 다음 단계에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최악의 충돌을 불사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다. 하지만 피해는 한반도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그런 엄청난 불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대화 카드를 단순히 북의 ‘협박’에 대한 굴복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단견이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최소한 현 단계에서 물밑접촉이라도 시도하라고 충고한다. 물론 위기 상황이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도 적지 않으나, 그 진정국면이라는 게 과연 언제 올 것이며, 그때까지 우리는 손을 놓고 북한의 ‘입’과 행동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물밑대화든 대화를 위한 물밑접촉이든 모든 채널을 가동하는 것이라고 본다. 최소한의 신뢰 기반이 다 무너진 뒤에 신뢰 프로세스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전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처럼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끝날 뿐더러 더 큰 갈등과 위기만 상시화할지 모른다.
지금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단지 대화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정부가 확고한 대비책을 가지고 위기에 대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최악의 상황은 막아내면서도 북의 의도에 끌려 다니지 않고, 북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상황 주도권을 적절히 제어할 방안을 정부가 준비해 두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부의 행보를 보면 ‘대화 안 한다’ 외에 뭐 하나 뚜렷한 비책이 없어 보인다. 비책은 함부로 내보여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온 국민이 믿고 안심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건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