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정치는 다르다. 정책은 정치과정의 산물이지만 그 둘은 목표가 다르다. 정치가 집권과 권력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정책은 국가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목표로 한다. 며칠 전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권 속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해당 소위를 통과했다. 법사위와 본회의가 남아있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이 작심하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쌀 초과생산량이 3% 이상,가격하락이 5% 이상이면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2005년 81kg에서 2021년 57kg으로 줄어들었다. 식생활문화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된다. 재배면적을 줄여야 할 판에 세금을 들여 남는 쌀을 사면 쌀 재배 유인이 증가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심화될 것이라는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30년의 초과생산량에 따른 정부 수매예산은 1조4천억으로 추정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있다. 경제적 양극화를 막고 동반성장을 한다는 대의명분은 맞다. 현실로 들어가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 2022년 KDI는 이 제도가 실효성이 낮으니 점진적으로 폐지하자는 보고서를 냈다. LED 조명 업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 대기업 참여를…
지난 10월24일은 48년 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선언 대회를 열고 권력의 탄압을 거부하고 사실보도를 다짐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유신 시절 죽어가던 이 땅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기자들의 희생적인 투쟁은 1980년 광주학살의 진실 보도를 막은 신군부의 검열거부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의 자유 언론을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직 언론인들은 선배들의 투쟁에 빚을 졌다고 생각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이처럼 빛나는 역사가 벌써 빛이 바랬던 것일까? 오늘의 우리 언론 현실에는 온통 비루하고 추악한 보도가 난무하니 어찌 된 일인가? 그 일그러진 대표적 사례가 바로 ‘청담동 룸바’ 관련 언론의 보도행태라고 할 수 있다. 탐사전문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심야에, 론스타 사건을 비롯한 주로 국익에 반하는 소송을 도맡아온 국내 최대의 로비스트 변호사들 다수와 어울려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기사화했다. 더탐사는 이 보도와 관련해 현장에 있었던 첼리스트의 남자친구와의 통화 녹취록과,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대행의 사실확인 통화내용을 인용했다. 이것이 만일 사실이
10월 한 달 동안 여섯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탄생(결혼)보다 죽음이 많으니 인구 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이 곧 탄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다며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딩크(DINK : Double Income No Kid)족들이 부쩍 많아진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질 인구 증가율은 마이너스이다. 노동력은 점점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4차 혁명에 걸맞게 첨단 로봇이 거의 사람 수준으로 개발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데다 한편으론 그 같은 자동화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는 저소득 노동자층의 노동권 박탈을 해소할 방법이나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일종의 21세기 형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벌어질 판이다. 주차장에서 주차 요원으로 일하던 노년층들은 주차 시스템의 자동화로 거의 사라졌다. 카페나 식당의 서빙 노동자들도 로봇의 등장으로 조금씩이긴 해도 교체될 전망이다. 결국은 이런 등등의 고민을 해결할 유일한 방향은 복지의 확대이다. 병원을 가거나 교육을 받는 일, 흔히 얘기하는 웰다잉(Well-dying)에 있어…
1. 사폴리오(Sapolio)는 1870년대부터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널리 팔린 비누였습니다. 출시 후에 팸플릿을 중심으로 판매를 이어가다가 1884년이 되면 본격 광고를 시작합니다. 아테머스 와드(Artemas Ward)라는 사람이 광고 책임자로 부임하고 나서부터였지요. 와드는 자신이 지휘해서 만든 광고를 지역 신문과 잡지에 대량으로 게재합니다. 그가 만든 독특하고 대담한 크리에이티브는 곧 전국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지요. 특히 만화(cartoon) 풍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만약에 (If...)"라는 가정법 카피를 결합시킨 일련의 시리즈 광고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제는 광고 가운데 아래와 같은 사례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헤드라인은 “만약 인디언에게 사폴리오 사용을 가르쳤더라면, 그들은 훨씬 빨리 문명화되었을텐데...”입니다.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는 아메리칸 인디언. 그가 둘러쓴 망토 위에 “미국(U.S.)의 사폴리오를 쓰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습니다. 지는 해를 향해 말을 타고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상당한 거북함을 느꼈습니다. 유머소구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바탕에 일그러진 시각을 품고 있는 광
“우리가 남이가” 30년 전, 대선을 앞둔 1992년 12월 11일 김기춘이 부산의 복어요리집인 초원복집에서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의 지역 주요 기관장 9명을 불러 놓고 성토한 일성이다. “우리가 남이가”는 “김영삼을 당선시키자”의 수식어구다.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해" 당시 자리에서 오갔던 말이다. 지금까지도 대표적 정치공작으로 손꼽히는 초원복집 사건이다. 초원복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통일한국당 관계자의 폭로 덕분이었다. 도청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그는 손님으로 위장해 입장한 후 녹음기를 설치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후에 실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죄명은 주거침입죄였다. 반면 식당에 모여 정치공작을 논했던 이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주거침입은 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침입’을 해야 성립하는 범죄다. 하지만 통일한국당 관계자는 초원복집에 침입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 정국이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 전 정부와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데 이어 지난 26일에는 국회에서 의원과 당직자, 보좌진 등이 총집결한 ‘민생 파탄·검찰 독재’ 규탄대회를 여는 등 대여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금으로 봐선 남은 정기국회가 식물국회로 치달으며 수사정국이 국정의 상당부분을 블랙홀처럼 앗아갈 것 같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하는 등 우리의 경제안보 상황에 견줘 보통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실에서는 부인했지만 새해 예산안이 연말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준예산’ 집행이라는 비상 플랜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국민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수사에 대통령실 관련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김건희 여사 특검 추진으로 맞서고 있다. 이 대표가 자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정치보복 문제 등 검찰수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대표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되고 또 다른 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 대표 연루…
정신생활에 있어서의 일의 중요성은 그 물질적 의미나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되며, 그 선의에 의한 노력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할 때, 지극히 평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뭔가 매우 어렵고 놀라운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페늘롱)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일을 사소한 일이라 하며 하지 않는 사람은 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알고 보면 그것이 그에게 너무 작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일이기 때문이다. (표치) 너는 일을 완성시킬 의무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너에게 일을 맡긴 신은 너의 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신은 하늘이 맡긴 일을, 즉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다. (중국 지혜) 사람은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괴테) 자신의 ‘자아’를 육체적인 영역에서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긴다는 것은, 의식
“의리? (웃음)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내가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장동 사기사건의 종범인 유동규 씨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쏟아낸 말을 중앙일보가 보도한 것이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대장동 주범 의혹이 일고 있는 자들을 향해 자신과 연루된 범죄 내용을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실명을 거론해 그 파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그의 말에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자신을 손절한,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깊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자기성찰도 크게 자리 잡고 있어 반전을 보여준다. 이 반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 구조의 중요 요소여서 유동규 씨가 오랜 동안 화제가 될 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차용될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대장동의 음습함을 거의 사실에 가깝게 그려 화제가 되었던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에는 없는 캐릭터이자 반전이어서 꽤 매력적일 것이다. 아무튼 반전은 유동규 씨의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그는 대장동 부동산 개발 사기사건의 행동대장 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