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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대의 미디어산책] 정치인의 언어

 

우리가 정치를 접하는 것은 미디어를 통해서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대통령, 국회의원의 메시지가 정치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미디어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당의 대변인을 통한 메시지를 주로 전달한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였으나 못내 억울함에 부실기업을 떠맡은 기분이라 말했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대변인은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이 책임져야 하나”라고 비판하였다. 한 줄의 논평이 정확하게 폐부를 찔러 상황이 정리되었다. 2000년 총선 패배로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한 후 이인제가 JP를 향해 “서산에 지는 해”라 비난하자 JP는 “지기 전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겠다”라고 답했다. 날 선 비판에 대한 멋진 화답이다. 정치논평 중 생활언어로 정착한 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로남불, 정치 9단, 총체적 난국을 들 수 있다. 헌정사상최장수(4년 3개월) 대변인을 지낸 박희태 전국회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Naeronambul은 뉴욕타임스 2021년 4월 한국정치 뉴스에 영어단어로 표기되었다. 1996년 국회본회의장에서 한 말이 언론을 통해 회자되면서 생활언어로 정착된 경우다. 총체적 난국도 1990년 경제위기에 대한 이승윤부총리의 영어(total crisis) 표현을 옮겨 이야기하면서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박희태는 당대변인 문화를 창시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대변인중에 명대변인으로 보수, 진보에서 박희태, 박지원의원이 각각 꼽힌다. 이낙연 전 대표도 점잖고 중후한 언어로 대변인에 5차례 선임되었다. 박희태 대변인처럼 촌철살인이나 박지원 대변인처럼 유머러스하게 핵심을 찌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독설, 험담 없는 언어로 대변인의 품격을 만들었다. 정치인의 언어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이다. 2004년 KBS심야토론에서 주장한 “삼겹살 불판 갈자”는 비유는 정치변화의 당위성을 대중적 언어로 구사한 명언으로 평가된다. 그는 또 정치인, 대선후보들의 민생투어란 말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민생은 우리의 삶인데 어떻게 투어(관광)의 대상이 되느냐면서 선거 때나 서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태도에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

 

요즘엔 대변인의 언어가 거칠고 생경해졌다. 정치가 실종되어 극한대립을 하다 보니 자연스런 결과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부터 정제되지 않고 거친 표현이 많자 대통령실홍보팀은 뒷수습하기 바쁘고 여당의 대변인은 야당의 공세에 맞대응하면서 품격 있는 언어가 사라졌다. 대통령실의 대변인은 공식적 입장을 주로 말하고 당의 대변인이 정치적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작금의 상황엔 그게 허용되지 않는 듯하다. 새삼스레 JP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고급스럽고 여유 있는 언어가 아쉽다. 

 

22년 12월 윤관석, 윤재옥 두 의원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국회선플위원회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는 국회의원에게 선플상을 수여하였다. 고교, 대학생 300명으로 구성된 청소년 선플 SNS기자단이 국회 회의록에 기록된 언어를 분석하여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모처럼 듣기 좋은 소식이었다. 

 

이념적 지향점이 다르고 대립과 갈등이 깊어진 정치현실이지만 혐오와 비난의 언어를 자제한다면 서로 협의할 수 있는 폭이 커진다. 정치는 혁명이 아니기에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인정은 언어로 표현된다. 지금은 물러난 선배정치인들의 여운과 품격 있는 정치언어를 한 번쯤 되돌아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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