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의약분업의 실시를 놓고 정부와 의사협회간에 벌였던 장기간의 반목과 대치였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약분업안이 의권의 심각한 침해는 물론 의사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것이라며 강렬하게 반대했다. 자신들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자 의사들은 마침내 극단적인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극단적 투쟁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파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사라는 직업이 탄생한 이래 파업은 단한차례도 없었던 일이다. 의술을 펴는 의사는 직업이기 이전에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일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스스로는 물론 전 사회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쿠데타, 혁명이 일어나거나 인류에 엄청난 재앙이 닦쳐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 이전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픈 생명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게 의사의 도리이다. 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바로 그런 숭고한 뜻을 담고 있음이다. 어쨌든 의사들의 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지고, 그로인해 수십명의 생명이 유명을 달리한 끝에, 결국 정부와 의사협회간에 대타협을 이뤄 시행에 들어간 의약분업이거늘 국민들은 여전히 그 제도에 대해…
분야를 막론하고 실력자에겐 그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춘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일명 라이벌이다. 역사적으로 라이벌 관계에 얽힌 유명한 얘기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언뜻 떠올려 봐도 부지기수다. 우선, 재계의 라이벌하면 ‘이병철 대 정주영’, ‘삼성 대 LG’가 떠오른다. ‘고대 vs 연대’는 숙명적인 사학의 라이벌이다. 정치권엔 ‘김영삼 대 김대중’이 대표적 라이벌 관계이고, 바둑계의 라이벌 하면 역시 ‘조훈현 대 서봉수’를 꼽을 만하다. 라이벌 얘기에서 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스포츠 라이벌 때문이다. 스포츠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을 대신해서 인간의 폭력성을 대리 충족시키는 속성을 지닌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그저 재미로만 본다면 스포츠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다양한 종목 가운데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역시 야구다. 야구에도 꽤 유명한 라이벌들이 있다. 과거 고교야구의 라이벌하면 ‘선린상고 대 경북고’을 떠올리게 된다. 프로야구에 와서는 ‘최동원 대 선동렬’ 간의 자존심 싸움도 볼만했다. 최근엔 이렇다할 라이벌이 없는 게 아쉽다. 프로야구 인기하락의 주요…
지난주 우리 농민 한사람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멕시코 칸쿤에서 할복자살한 고 이경해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농업협상에 반대해 멕시코 현지로 날아가 세계의 농민들과 연대 투쟁을 벌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강대국이 주도하는 농업개방협상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그의 유해가 국내에 도착했다. 현 한농연 회장은 그의 유해 앞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한사람의 한국 농민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농업과 세계적 영세농민의 고통을 대변한 것”이라며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와 강대국의 부당한 농업개방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400만 농민을 위해 대변하라”고 말했다. 고 이경해씨의 할복에 고무된 세계농민들의 반대가 거세지고 협상에 임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는 이렇다할 성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로 인한 손익계산은 차치하고 우선 우리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경해씨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고 이경해씨의 죽음은 우리의 농업현실에 대한 각계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씨 할복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언론은 농산물개방협상에 대해 이렇다할…
마침내 새로운 4당체제가 막을 올렸다. 1988년 여소야대의 4당체제 이후 15년만의 재현이다. 가칭 ‘국민참여 통합신당’으로 출범하는 신당파 의원들은 어제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회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함으로써 4당체제의 일원이 되긴 하였다. 그러나 창당주비, 창당발기, 창당대회 등 통상의 창당절차를 뒤로 미루는 역순 때문에 태생적으로 이질성을 가진 정당이 됐다. 뿐만 아니라 통합신당은 탄생배경의 특이성 때문에 정당사 차원의 평가도 구구하다. 아무튼 신당이 딴 살림을 차려 분가함으로써 민주당은 두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민주당은 강적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키고서도 여당 구실은커녕 당·정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는 냉대까지 받아왔다. 그러기를 7개월, 이제 ‘갈자는 가고 남을 자만 남은’ 군소정당이 되고 말았으니 회한도 클 것이다. 거기다가 노무현 대통령마져 신당을 사실상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민주당은 하루 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가 권력지향적인 이합진산의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통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어쨌거나 정치는 현실이다. 이제 통합신당은 지역구 의원 동참자와 추가 동참자, 한나라당 탈당 의원 5명 등을 합친 5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생명표’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선은 우리나라 국민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점이고, 그 다음은 수명이 길어진만큼 조만간에 노인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본시 인간은 무병장수의 욕망이 강한 터라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 받을 일이다. 그러나 장수 때문에 사회가 늙어 국가의 활력이 떨어진다면 이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는 2000~2005년 사이에 한해 평균 1억3천233만명이 태어나고, 5천547만명이 사망해 7천686만명이 순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은 올해 6%에서 해마다 낮아져 2022년과 2023년에는 인구증가율이 ‘0’에 머물면서 5천68만명으로 최고치에 달한 뒤 2024년 0.02% 감소에 이어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구규모로 보면 2024년이 피크인 셈이다. 그러나 노인인구는 반비례한다.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200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7%인데 2019년이 되면 14.4%로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에는 20%로 초고령사회로 바뀔 전망이다. 걱정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즉 고령사회로 바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15~29세의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두배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청년 실업자는 통계보다 훨씬 많은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단순히 특정 세대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업으로 인해 정신적 공황에 빠진 20대들이 늘어나는 것은 향후 20~30년의 국가 경쟁력이 20대의 능력에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미래를 걱정하는 것조차 한가한 얘기다. 청년실업자의 증가로 인한 사회문제는 이미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신용불량자 양산과 범죄율 증가 등의 사회불안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처럼 청년실업자 급증은 곧 ‘실업→구직포기→사회 낙오→신용불량→자살률 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도그럴 것이 벌써 20대 젊은이 가운데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힌 이는 11명 중 1명꼴(은행연합회 통계)이어서 갈수록 사회불안을 키우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미봉책에 머물러 있다. 반면, 영국·독일…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를 둘러싼 찬반론은 자칫 국론을 두쪽으로 갈라 놓을 조짐마져 보이고 있다. 지난 4월의 파병 때만해도 일부의 반대가 있었을 뿐 대체적으로 파병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제고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파병 쪽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찬성하고 여당은 반대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있었으나 파병 자체 때문에 국론이 분열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파병문제는 그 때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미국이 요청하고 있는 파병규모가 애매한 것도 문제지만 폴란드 수준의 파병을 한다해도 3,000명선, 1개 사단 수준으로 상향되면 1만명 이상이 되는데 이는 우리로서 선뜻 받아들일 수준의 변력이 아니다. 둘째는 전비(戰費)문제다. 미국의 요청에 따를 경우 다국적군의 성격이되므로 장병 1인당 월 평균 220만원의 월급을 줘야하는데 이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셋째는 파병부대 장병의 신변 위험이다. 이라크는 누가 뭐래도 전쟁 중인 나라다. 국제 평화와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일은 옳지 않다. 결국 이라크 파병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그
한때 우리 영화계에 신인감독 데뷔가 붐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먼 얘기도 아니다. 1990년대의 일이다. 당시 영화계에는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있었다. 그즈음 미국영화 ‘쥬라기공원’ 한편이 국내에서 벌어간 돈이 우리나라 한해 자동차수출 총수익보다 많았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를 기웃될만 했던 것이다. 기업자본은 속성상 수익을 좇는다. 작가주의니 예술영화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투자원금 뽑고 이익 남기면 그만일 뿐. 기업자본은 말안듣는 중견감독보다 때묻지(?) 않은 뉴페이스, 즉 부리기 좋고 말도 잘듣는 신인들을 선호했다. 덕분에 수많은 감독지망생들이 오매불망 기대하던 입봉(감독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데뷔가 곧 은퇴로 이어진 것. 당시 영화감독이라는 명패를 달게됐던 이들은 지금 뭘하며 살고 있을까.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견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기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급기야 영화에 대한 꿈을 접어버린 사람도 있다. 필자가 작년에 만났던 후배 역시 입봉한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아내와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필자는 그 후배가 영화에 때한 꿈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을 것으로
“한국에서 사업 제대로 하려면 접대문화부터 익혀라.”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사업지침서에 등장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접대 관행은 그 뿌리가 깊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넨셜 타임즈에서는 우리 경제계의 접대문화에 찌든 그릇된 사업관행을 빚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IMF 경제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경쟁 보다 모든 것을 접대로 해결하려는 기업관행 탓에 생산성 향상은커녕 과잉비용으로 경영부담만 키웠다는 것이다. 그런 접대문화가 낳은 유행어가 있다. 정식 직제표 상에는 없는 직책인 이른바 ‘술상무’가 그 것이다. 술상무는 말그대로 기업 활동 중 발생하게 되는 접대자리에서 회사를 대표해서 술을 도맡아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대개 기업의 술상무는 친화력과 주량이 탁월한 사람이 맡게 되는데, 때에 따라서는 그런 개인적 능력과 상관없이 업무 특성상 마지못해 술상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으로 치면 홍보실이고 관공서의 경우 공보관실 등이 대표적인 술상무 부서라 할 수 있다. 최근 법원이 ‘
추석연휴를 강타한 태풍‘매미’는 한반도 남해안과 영남, 영동지역을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사망·실종자 수가 1백여명에 달하고 재산상의 손실도 엄청나다는 소식 앞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태풍 ‘매미’로 인해 철도·도로·전기·통신 등 주요 국가 간선망이 끊겨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거나 지체되고 열차탈선·산사태까지 발생했다. 남부지방 140여만 가구의 전기공급이 끊긴 것은 물론 유무선 통신장애도 속출해 연락이 두절된 주민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울산공업단지와 여수·대구 성서공단 등에는 정전으로 인해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등 대규모 산업피해가 발생하여 국민들의 마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작황을 걱정하던 농민들이 물에 잠긴 들녘,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소밭, 떨어져 썩어있는 과일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과연 어떤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남해안 일대 어장과 양식장도 태풍의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적조 피해로 한숨 짓다가 ‘매미’의 직격탄을 맞은 어민의 시름 또한 농민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을 바라보며 신세한탄만 하거나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신속한 복구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