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갖은 건 최근. 2001년 사회학자 다케가와(武川 正吾)는 학생들이 기본소득을 공부할 수 있도록 ‘사회정책 교과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처음 5년간,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6년 이후부터 상황은 반전해 기본소득제 연구가 활발해졌고, 2010년까지 출판된 논문은 108개나 됐다. 특히 야마모리(山森 亮) 교수는 《기본소득 입문(ベーシック・インカム入門)》을 출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금상첨화로 2010년 “기본소득 일본네트워크(BIJN)”가 창설됐다. 이때부터 일본 정치권은 기본소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신당일본(新党日本)이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거론했고, 모두의당(みんなの党)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초연금과 생활보호수당을 통합한 미니멈 인컴’을 공약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정치적 어젠다로 크게 부각된 것은 2017년 중의원선거. 동경 도지사 고이케(小池 百合子)가 이끄는 희망당(希望の党)이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기본소득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모두의 당과 신당일본 역시 기본소득을 공약했고, 일본 사
서른아홉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바람 필 생각이 없었을까.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주위에서 재혼하라는데 너는 어떠냐 물으셨다. 몰라도 너무 모른 나는 일언지하에 호적을 파내고 가세요 했다. 그 후부터 어두운 부엌에서 가끔 낮고 구슬픈 노래가 들려왔다. 눈물이 눈썹을 찌르고 안개의 거리 방황하듯 어깨가 들썩였다. 김포 쪽 농군이 팔러온 곡식을 사서 시장에 되파셨다. 사남매 다 키워 공부시키고 조그만 집 한 채도 장만하셨다. 봄날에 개구리 알 낳듯 어머니 몫까지 연애하는 나는 불효자입니다. ▶약력 ▶2017년 리토피아 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 옳지, 봄 , 항아리 속의 불씨 ▶제4회 아라작품상 수상. ▶제11회 리토피아 문학상 수상.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중국 역사는 무궁무진의 스토리텔러다. 호기심도 제일이고 머리도 으뜸인 학자가 평생을 바쳤더라도, 그는 노년에 코끼리의 새끼발톱을 만진 인생이었다, 고 술회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라는 태평성세가 있었다. 4000-5000년 전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요'(堯)는 인류역사 50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군(聖君)이었다. 현대의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역시 하나의 전설이 된 호세 무하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흔 살의 노인인데 아직도 1987년형 소형차를 운전하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요임금을 성군으로 만든 또다른 업적은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인물을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그 큰 올바름이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동양세계의 정치사상과 시문학에 마치 펄펄 뛰는 생선처럼 살아있다. 정보를 종합한 결과 허유(許由)가 최적이었다. "선생이 내 자리를 이어주시오." "뱁새는 숲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뭇가지 두셋만 있으면 됩니다. 두더지도 황하의 물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목을 축이면 족합니다." 왕은 다시 찾아가서 간청했으나, 허유는 그 역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멸(吳滅. 본명 오경현) 감독이 영국産 오프로드 차 광고에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감독이 이 차를 타고 다닌다는 걸 앞세운다. 오멸이 짚차를 타고 제주 해변을 다니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얘기는 무엇일까.가 광고의 컨셉이다. 그건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던 것은 광고의 앞 부분이 영화 ‘지슬’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슬’은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극영화이다. 광고는 한 아이가 동네 어른들이 피신해 있는 서귀포의 큰넓궤로 달려가 동굴 입구를 들여다 보는 장면을 보여 준다. 4·3이 광고에 나오다니. 그렇다면 4·3조차 상업화된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4·3의 문제가 이제 그만큼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승만 정권과 그 이후의 반공 정권이 수십년간 좌익의 준동이니 좌파들의 난동이니 하며 온갖 흑색선전을 뿌려댔어도, 심지어 공적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하려 했어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이제 광고에까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오멸감독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했을 것이다. 광고 출연료도 짭짤했을 것이다. 그 돈은 그가 또 다른 독립영화를 만들
진실이 없으면 선은 있을 수 없다. 선량함이 없으면 진리를 전할 수 없다. 선과 진리는 마차의 두 바퀴와 같다.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를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자는 진리를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공자의 지(之)를 진리로 해석함) 덕으로 증오에 보답하라. 모든 일은 아직 쉬워서 더 어려워지기 전에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하라. 또 작은 일은 커지기 전에 처리하라. 천하의 가장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며,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노자) 덕에 이르는 두 길이 있다. 올바를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 그것이다. 진리를 결코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 밝은 빛과 내면의 강인함이 무엇보다 강하게 악을 타파한다. (소로) 모든 악은 나약함에서 생긴다. (루소) 위선보다 나쁜 것은 없다. 위선은 노골적인 악보다 더 불쾌하다. 씨ᄋᆞᆯ 여러분,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참이 길이요 생명이 길입니다. 살자는 것, 스스로 살았다 믿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믿으면 삽니다. 믿지 않으면 이미 죽었습니다. 참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
겸양은 자기만족에 빠진 오만한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사람들 사이의 평화는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다.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장애는 오만이다. 오직 겸양만이 - 모욕을 참고 매도를 견디고 오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만이 - 사람이 자신과 타인의 관계 속에, 또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세상이 우리를 질책하고 비난할 때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비난 속에 어떤 근거가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흄) 만약 네가 지난 날 성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성현이 산 것처럼 살지 않아서, 자신이 성현의 명예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자존심에 고통을 느낀다면, 그런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네가 성현으로서의 평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또 만일 지금 당장 네 양심이 요구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만은 오만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른 모든 죄악도 옹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난을 싫어하고 치료를 거부하기 때문이며, 죄악을 숨기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겸허하게 하는 죄의식은 그의 오만을 부추기는…
기억이 미래를 만든다. 우리가 지난 일을 되새기는 이유이다. 6월 6일, 66회 현충일이 지났다. 정의는 망각 위에 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6월 6일이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1949년 6월 6일, 한 무리의 경찰이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활동 중이던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장해제시켰다. 일제 때 친일의 첨병이던 경찰이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짓밟은 날, 이후 특위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일제 때 악질고문경찰로 악명높았던 김덕기, 노덕술 등은 풀려나 경찰 보안책임자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20일 후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되고, 이어지는 극우 백색테러가 꼬리를 물면서 일제청산활동은 좌초하고 공공연히 친일파가 득세하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나는 6월 6일을 우리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날로 기억한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자 대한민국은 근대 이후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에서 독립을 이루고도 단 한명의 부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희귀한 경우로 남았다. 친일을 하면 출세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추악한 가치관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겨우 4년 동안 나찌에 지배당한 것을 기화로 무려 12만명 이상을 재판에 회부하여 3
칼럼에 한 기자를 2회 연속 언급한다. 저널리즘이 무너져 내리는 시대에 기자들은 물론 언론계에 진입하려는 예비 언론인들도 꼭 읽어 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에서다. 지난 달 26일자 칼럼에서 오마이뉴스 최병성 기자가 5월 14일 보도한 “2050년까지 30년간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 3400만톤을 흡수하겠다.”는 산림청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조목조목 비판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높게 평가했다. 미국 미주리대학에는탐사보도기자회(Investigative Reports and Editors)라는 조직의 본부가 있다. 약칭이 분노를 의미하는 IRE다. 최 기자의 기사는 독자들의 분노를 끌어낸 1인 탐사보도였다. 치밀한 취재가 돋보였다. 최 기자는 6월 2일자로 “싹쓸이 벌목 진짜 이유,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산림청에 속았다.”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사를 보도했다. 사진을 뺀 기사의 길이가 자그마치 200자 원고지 기준 40매였다. 여기에 사진 15장과 2013년 산림청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산림자원 조성 및 관리실태’ 등 7건의 문건은 독자를 기사 끝까지 흡인했다. 이 언론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또 있다. 1차 보도후 취재원(산림청)의 반론보도문을 한 자
전 세계 맥도날드 직원들이 BTS의 한글초성 ‘ㅂㅌㅅㄴㄷ’을 새긴 티셔츠를 입었다. BTS와 맥도날드의 협약내용이란다. 코로나 와중에도 여전히 끓고 있는 BTS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노래와 춤에 재능 보였을 BTS의 어린 시절, 부모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본다. ‘일단 대학부터 나와야 사람 대접 받는다. 대중음악은 성공하기 힘드니까 정히 음악하고 싶으면 클래식을 전공해라. 집을 팔아서라도 유학 보내줄게’ 얼마나 다행인가. BTS가 서양클래식을 전공하지 않고 대학입시에 매진하지 않고 세상 어른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이! 월드뮤직계에도 ‘엄마 말 안 들어’ 성공한 스토리가 넘쳐난다. 세상 눈치 안 보고 제 안의 질문과 답만으로 길을 찾고 행복한 음악가가 된 극적 드라마 말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아르헨티나의 탱고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a 1921-1992). 생전의 피아졸라는 자신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탱고와 심포니 둘을 오갔던 존재’라고 한적이 있다. 술집 음악이었던 탱고를 클래식 반열로 끌어올리기까지 한 음악가의 전쟁사(戰爭史)를 드러낸 말이지만 유럽 유학 시기의 지독했던 혼란과 갈등 시기를
인간은 모두 노예가 아니면 안 된다. 문제는 누구의 노예가 될 것인가이다. 만약 욕망의 노예라면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노예가 될 것이고, 정신적 본원의 노예라면 신의 노예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높은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매우 사악한 의도로 해석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적 진보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기초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우리’의 잘못이며 ‘우리’의 치욕이다. 누구든지 주위를 돌아보면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와 이익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가진 자들의 부정과 불의로 인해 우리 모두가 부유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헨리 조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이상하게 작동을 하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악도 선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잘못된 태도를 낳고 있다. (조헌정) 어떤 사물, 어떤 습관, 어떤 법률이 존중받으면 받을수록, 정말로 그것이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생활의 악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 속의 종교적 허위를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