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어제 4월 6일은 백기완 선생의 새긴 돌(묘비) 세우는 날이자 49재였다. 가림천을 벗기자 ‘백기완 묻엄’이란 글이 드러났다. 뒷면에는 선생의 시, '묏비나리'의 한 구절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새겼다. 유홍준 교수의 설명대로, 선생의 삶과 민중미학에 따라 전체 묘역을 소박하면서 기품 있게, 무덤은 우리나라 뫼의 선을 따라 둥그렇게, 어머니처럼 낮게 모든 것들을 품는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불교가 아니라 우리 문화로서 49재인 민중 비나리를 지냈다. 명진 스님과 필자가 선생의 넋을 모시고 업을 씻고 왕생을 발원하고 배웅하는 비나리를 하였다. 임진택 명창의 선창으로 모두가 새로운 판을 여는 소리인 ‘불림’으로 “질라라비, 훨, 훨!”이라 외쳤다. 질라라비는 길들어져 묶였던 닭이 이를 끊고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니, 산 자든 죽은 자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룩하자는 다짐이다. 정태춘 가수가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는 '봄날은 간다'의 애잔한 가락이 무덤을 훑고 지나갔다. 러시아 농민 혁명가인 '스텐카라친'의 선율을 따라 김수억 동지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백발의 젊은 불쌈꾼(혁명가)’의 유택 위로 꽃을 뿌렸다. 산화가를 부른 신라
일곱 번 본 영화가 있다. ‘인생은 짧고 볼 영화는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내겐 이례적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개봉된 1962년 미국의 줄스 다신 감독이 만든 흑백영화 페드라(Phaedra)다. 라디오 심야방송을 즐기던 청소년 시절, 배경음악으로 처음 만났던 페드라는 강렬했다. DJ는 ‘남주인공이 사랑이 추락하자 인생도 추락하는 장면의 음악’이라고 소개했는데 바하의 파이프 오르간 음악 ‘토카타와 푸가’가 흐르는 가운데 절규에 가까운 독백이 나온다. (너무 많이 들어서 외워버렸다. 물론 영어다) ‘가자, 달리자!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추방되는 것도 영광이지 오, 세바스챤 바흐! 라라라~~ 굿 바이, 페드라, 그녀는 날 사랑했어. 죽고 싶어. 이제 스물 네 살, 라라라~’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 뒤 종로의 한 영화관에서 재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 첫회를 예매해 보았다. 엔딩 자막이 뜨고 관객 모두가 나간 뒤에도 혼자 감전돼 앉아있던 기억이 마치 유체이탈해 내려다본 듯 생생하다. 그리스 신화인 파이드라와 히폴리투스 비극에서 따온 계모와 의붓아들간 금기의 사랑 이야기도 강렬했지만 이를 맡은 여주인공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 扮)의 이 세상 여자 같지 않은 아름다움
이 세상의 삶은 결코 눈물의 골짜기도 아니고, 시련의 장소도 아니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것이다. 삶의 기쁨은 순간순간 하늘의 뜻을 알아채면서 살아간다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의 만족과 기쁨을 잃어버리며 탄식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기쁠 때는 순수하게 기뻐하되, 기쁨의 원인이 사라질 때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파스칼) 늘 쾌활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운명이 가져다 주는 사소한 기쁨에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스마일스) 만족을 찾아 헤매지 말라. 그보다는 항상 모든 것 속에서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너의 일이 바쁘더라도 마음이 자유롭다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너에게 만족을 줄 것이고, 네가 듣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흥미롭고 즐거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인생의 목적을 만족에 둔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순간을 만나도 결코 진심으로 웃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존 러스킨) 진정한 현자는 언제나 쾌활하다. 기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은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만약 기쁨이 끝났다면 자기가 어디가 잘못
세계 시민단체 옥스팜(Oxfam)에 따르면, 영국인 150만 명이 작년 3월 유니버설 크레디트(Universal Credit, 공적원조)를 요청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2013년 캐머런 (David Cameron) 총리가 신설한 영국의 유일한 복지수당으로, 소득에 따라 혜택이 제공된다. 따라서 이 수당을 청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매우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푸드 뱅크를 이용하는 영국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버클라이드(Inverclyde)주 SNP(Scottish National Party, pro-indépendance) 의원 코완(Ronnie Cowan)은 “지금처럼 심각한 사태를 본 적이 없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메일을 매일 수 천 통씩 받는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지었다. 초유의 사태 앞에 영국도 결국 기본소득 시계를 빨리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지난해 4월 22일 하원의원 100여명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공개편지를 냈다. 그들이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영국인이 매월, 조건 없이 생필품비(주거비와 식비 등)를 지급받게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정부는 영국정부보다
세상이 망하는 조짐은 극장가에서 나타난다. 두 가지 중의 하나다. 그다지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거나 좋은 영화가 나와도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는 열린 사회에서 흥한다. 닫힌 사회에서는 절대로 영화가 잘될 수가 없다. 4세대 후이 안 감독부터 5세대의 장이모우와 첸카이거, 6세대의 로우예 등등까지, 그리고 지하전영의 지아장커가 있던 나라. 홍콩의 왕자웨이까지. 예술과 정치, 인생을 담아냈던 중국-홍콩 영화는 이제 온데 간데가 없다. 시진핑식의 변질된 사회주의 독재는 영화를 더 이상 영화가 되지 못하게 한다. 홍콩 시위에서 사복경찰(우리 식으로는 백골단)의 곤봉질을 당하고 목격한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가수 정태춘이 종로에서 기자들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다.(’92년 장마, 종로에서’)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와 같은 극우 보수 정권이 50년 가까이 가는 나라(2010년 잠깐 민주당 간 나오토가 1년간 총리를 한 것을 제외하고)에서는 애니메이션 외의 영화는 거의 절멸 수준이다. 극장가가 팬더믹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다이나믹한 동력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요즘 극장 영
예수를 골고다 언덕에 끌고 가서 처형한 십자가는 예수에게만 적용된 특별한 방식이 아니었다. 기원전 71년, 로마에서 카푸아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街道)에는 십자가들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장장 2백 킬로미터다. 그 길 위의 십자가 행렬은 죽은 자들에 대한 기념비가 아니라 노예반란의 처형 현장이었다. 그렇게 못박혀 죽은 이들은 무려 6천여명이었다. 기원전 73년부터 2년간 벌어진 내전에 가까운 노예 봉기는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로마에 살고 있는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노예였으니 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로마 지배층으로서는 사생결단의 사태였다. - 아피아 가도의 비극 훗날 케이사르와 함께 제1차 3두 체제를 이루었던 크라수스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이 노예반란 진압에 마침내 성공한다. 이들이 집행한 십자가 처형은 반란자에 대한 응징방식이었고, 로마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반기를 든 이들은 모두 그렇게 목숨을 빼앗겼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도 다를 바 없는 운명에 처한다. 기원전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도처에서 저항이 일어나지만 당대 최강의 제국 군대를 이길 도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저항이 멈추지는 않았다. 알렉산더…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개중에는 하루만 피는 연꽃도 있다. 새벽처럼 꽃잎을 열어서, 아침이면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기도 전에 꽃잎을 닫는다. 노랑어리연꽃이 그렇다. 그래서일까. 연꽃은 사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진창이든 흙탕이든 기꺼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 내린 연꽃은 혼탁함에 물들지 않고 주변을 정화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으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연꽃이다. 여기,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별을 보며 하루를 열었다가 달을 등지고 하루를 닫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이든 대학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피는 꽃이 있다. 백화점이든 지하상가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든, 사람이 꼬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려지는 아수라장에서 멸시와 천대를 쓸어 담아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들이 있다. 우리는 그 연꽃을 ‘청소노동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참 우습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거룩하다고 하면서,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차로 우려 마시면서, 수술실에서 나온 피와 고름을 치우는 사람들은 더럽다고 한다.
진정한 삶이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신력으로 육체를 극복하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습관은 좋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그렇다. 좋은 행위도 습관이 되어버리면 이미 덕행이라고 할 수 없다. 오로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만이 덕이다. (칸트)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업무를 겸허한 마음과 높은 도덕심으로 쉬지 않고 실천하면, 그 사람의 성격을 공고히 하여, 어지러운 세상 속에 있든, 단두대 위에 있든,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에머슨) 성장은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지 폭발하듯 갑자기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하나의 학문 체계를 한 순간의 폭발적인 사색으로 알 수 있는게 아니듯, 순간적인 회개를 통해 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적 완성의 진정한 수단은 냉철한 판단력에 의한 부단하고 끈기 있는 노력뿐이다. (채닝) 정신적인 노력과 인생을 아는 기쁨은 육체노동과 휴식의 기쁨처럼 서로 번갈아 찾아드는 것이다. 육체적인 노동 없이 휴식의 기쁨은 없고, 정신적인 노력 없이 인생을 아는 기쁨은 없다. 자신의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호모사피언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두 가지를 꼽자면 음식과 섹스로 귀결된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기계에 머물며 추구하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생물학자 윌슨(E. O. Wilson)은 “인간의 정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며, 이성은 그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라고 했다. 종의 기원과 이기적 유전자를 경유하여 최근의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살펴본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 욕망과 합리적 이성으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분석은 짝을 잃은 듯 허전하다. '펜트하우스 시즌 2'는 막장 드라마로서 시청률 3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케이 광자매'도 막장에 가까운 내용의 미스터리 살인 사건과 멜로와 코믹이 혼합된 드라마로서 평균시청률 1위를 질주중이다. 시청자들은 이렇게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유튜브 역시 이기적 욕망과 감성을 자극하는 유튜브의 선호도가 높다. 진중권의 아무 말 대잔치에 환호하는 것도 유사하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를 결정하는 것도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상품에 대한 욕망
풍란은 필시 어느 무사의 칼집에서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챙챙 칼 싸움 중에 파란 불꽃 같은 씨앗 한 알 바위틈에 슬쩍 떨어트린 것이 분명하다 지친 칼의 후생이 틀림없다 전생에서 무수히 베었던 그런 목숨들 말고 무심한 바위를 쩍 베려는 것이 분명하다 보시라 이미 반쯤 갈라놓은 바위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하늘을 칼집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필생의 일합一合 끝에 흰꽃을 피우고 있지않은가 ▶약력 ▶[심상](1995)등단. ▶시집『지상의 붕새』『끼, 라는 날개』『지상의 붕새』외. ▶2015-7년 세종우수도서 3회 선정, ▶한국 예술상 수상, 충남시인협회상 수상. ▶현 사) 한국시인협회 이사 ▶도서출판『시와표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