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국은 유죄인가 오랫동안 내심 동지라고 믿었던 친구와 대화가 틀어진 것은 조국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정치검찰과 수구 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한 게 맞다. 우리 죄를 대신했으니 희생양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죄라고 말했다. 친구는 조국이 어떤 실정법을 어겼느냐며 분노했다.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진 까닭은 이삼십 대가 현 정권과 기성세대에게 분노했기 때문인데,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다. 실제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흙수저들은 집을 살 가능성도 없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지 않으냐. 저 수많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을 보라. 그들이 과연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끼겠는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재벌과 정치검찰, 수구 언론을 포함한 기득권층들이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라도 반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집권 여당 아닌가.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차원에서 조국이 유죄란 말이지, 그가 실정법을 어기고 비도덕적인 인물이란 말이 아니라고 답했지만, 친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삼십 대, 더 나아가 대중들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며,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정론으로 이끌어야
코로나 사태는 우리네 일상 풍경을 여러 면에서 성형했다. 그중 하나가 여행. 해마다 연말연시나 설 또는 추석 연휴, 그리고 여름휴가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공항으로 몰렸던가? 하늘이 막히니 공항도 비었다. 대신에 ‘차박’(차 안에서 잠을 자는 캠핑)이나 ‘랜선 여행’(일명 ‘방구석 여행’) 같은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항공여행의 추억에 몸살을 앓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기내식 도시락이 나왔다. 제주행, 뉴욕행, 프라하행 도시락을 사 먹으며 항공여행 ‘갬성’을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은 ‘무착륙 비행’을 즐기기도 한다. 목적지 없는 항공 비행 상품을 이용한 고객의 수가 지난 6개월 동안 1만 6000명에 달할 정도다. 이 대목에서 거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분석이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부자들은 결혼생활이 곤경에 빠지면 파리로 호화 여행을 떠나는 게 정석처럼 되어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부자 남편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그들은 아내를 데리고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전혀 하
소중한 친구 마리아에게, 오늘 아침 수용소 위에 무지개가 떴고 진흙 웅덩이에서 태양이 빛났어. 병원 막사에 들어갔을 때 어떤 여자들이 나를 불렀어.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유쾌해 보이네요.” 빅토르 엠마누엘*에 대해, 인기 있는 정부에 대해, 그리고 다가오는 평화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까 궁리했어. 무지개 때문이라고 그들을 속일 수는 없었어. 그렇지 않니? 설령 내가 유쾌한 유일한 이유가 무지개였더라도 말이야. * 이탈리아 왕 빅토르 엠마누엘 3세(1869-1947)는 1943년 7월 9일 연합군이 시실리에 상륙한 후, 7월 25일 무솔리니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 아침에도 2500명을 이송하는 열차 한 대가 떠났어. 간신히 부모님을 거기서 제외시켰지만, 상황이 몹시 절망적이야. 소위 영향력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오늘 아침에 나의 부모님은 다음 주에 이송될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말했거든.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다 빨아내는 거야. 사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 오늘 밤 나는 아기들에게 옷을 입히고 어머니들을 진정시키는 걸 도울 거야.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야. 그것 때문에 거의 나 자신을 저주할 뻔했어. 우리는 아프고 무방비 상태인 형제자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운동장 기억의 대부분은 교장 선생님이 구령대 위에 서서 훈화 말씀하시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말의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훈화 말씀 시간은 곧 흙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한참 서 있으면 곧 지루해져서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에게 흙을 튀겼다.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에는 손으로 흙을 모아 쌓거나 지나가던 벌레를 장난감 삼아 놀았던 것만 생생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거 같아 고개를 들어 구령대를 쳐다보면 아직도 누군가가 일장연설 중이었다. 구령대는 늘 선생님들 것이었다. 운동회 때 유일하게 그늘이 생기는 구령대 아래에는 대회 본부석이 차려졌다. 우리는 옆쪽에 위치한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다. 운동회를 시작하는 타이밍엔 스탠드에도 그늘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움직이면 여지없이 직사광선이 내리 꽂혔다. 그때는 학생들이 햇빛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한껏 찌푸린 채 손 그늘과 손부채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반전됐다. 운동회 때 학생들을 위해 각 스탠드마다 천막을 쳐서 햇빛 가리개를 만들어 주는 건 기본이고, 교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구령대까
사회개혁을 통한 원칙과 공정을 요구하는 촛불 시민에 의해 탄생한 것이 현 정부다. 또한 요즘 MZ세대도 원칙과 그에 따른 공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여러 조사로부터도 잘 나타난다. 그런 MZ세대가 사회 적폐 청산의 시도로서 검찰 개혁을 하려던 정부와 인권 말살의 추태마저 보이며 저항한 검찰 권력 간의 갈등을 보면서 오히려 현 정부를 원칙과 공정을 지키지 않는 내로남불 정부라고 말한다. 이렇게 서로 원칙과 공정을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같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MZ 세대와 촛불 정부 간의 공정과 원칙의 차이는, 촛불혁명으로 인해 야당으로 전락해 20대 총선에서마저 대패한 국민의힘당과 조중동이라고 하는 주류언론이 앞장서서 왜곡 조장하는 면이 있지만, 단지 그런 외부 선동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서로 요구하는 공정과 원칙의 역사 인식 차이에 기인한다. 사회의 주어진 규칙이나 틀을 강요받으며 당장 사회 기존 체제에 안착해야 할 MZ 세대에게 사회 규칙이나 틀을 지켜달라는 요구는 자연스럽고 또한 절박하다. 한편, 해방 이후 미군 점령군의 치안 유지 목적에 의해 청산되지 못하고 면면히 내려온 일제 부역자 집단이 형성해온 사회 기득권…
다시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민주당은 예비경선을 마치고 대선후보를 6명으로 압축했다. 선거는 정당 혹은 후보자 간의 ‘프레임 전쟁’이다. 프레임(틀짓기)은 사람들이 세상 혹은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지킬 것이 많은 기득권 세력은 프레임을 만들고 미디어는 이를 널리 유포하고 강요한다.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프레임’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유권자가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전형적인 ‘시민참여’ 방식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문자폭탄’이라는 말을 자꾸 듣다 보면 ‘가만히 있어!’에 익숙해질 수 있다. 송영길 민주당대표는 뜬금없이 ‘대깨문’ 운운하며 일갈한 데 이어 박정희를 소환하는 등 ‘당대표 리스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1일 ‘조국사태 청년세대 좌절감’ 운운하는 질문에 대해 ‘조국사태’가 아니라 ‘윤석열사태’라고 직격했다. 추미애 후보는 촛불정신과 검찰개혁을 소환하여 전면에 내세우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주류미디어는 진보인사죽이기에 이어 진보세력에 대한 부정적 틀짓기에 골몰해왔다. 포퓰리즘, 복지망국, 개혁피로증 같은
현재의 한국정치 사회구조, 조금 좁혀서 정치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1990년대의 미국 민주당의 흐름을 복기하면 조금 도움이 된다. 그 학습을 위해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가 출간한 카툰 북 《버니》를 참조했음을 미리 밝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기 전 닉슨은 월남전의 여파로 재선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때문에 1972년 그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꽤나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그건 베트남전을 비롯해서 중남미에서 연이어 일어난 좌파 혁명의 성공과 그 분위기로 인해 미국 사회가 오히려 보수화된 결과이기도 했다. 미 국내에서의 지난(至難) 했던 반전 시위가 피로감을 가져온 것도 일부 사실이다. 이때부터 미국 민주당은 급격하게 우클릭한다. 민주당 내 우파 그룹은 처음엔 DNC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 민주당 전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후엔 CDM(Coalition for a Democratic Majority : 민주적 다수를 위한 연합), 혹은 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 민주당 지도자회의)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을 끊임없이, 그리고 줄곧, 우경화된 상태로 밀어 넣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오늘 아침 사람들이 꽉 들어찬 화물열차가 수용소에 들어왔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판자들이 부서져 작은 구멍이 나 있더군. 그런데 갑자기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의 모자와 아버지의 안경과 미사의 창백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나는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나를 보았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대재앙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유대인들이 연이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수용소가 넘쳐나고 있어. 네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오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미샤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만 하루 만에 웃옷의 칼라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이고, 까칠한 흰 수염이 애처로워.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아침 빗속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여호수아기에서 놀라운 인용구를 찾아냈을 때 아버지는 작은 성경을 흔들어댔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큰 막사에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찬 인간 창고 같아. 좁은 철제 침상 하나에 세 사람씩 자고, 매트리스도 없고 물건을 둘 곳도 없고, 아이들은 겁먹고 소리를 질러대서 정말 비참한 상태야.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 노력할 거고, 더 기운을 내고 용감해질 거야. 이따금 암흑 말고
작업실에 놀러 온 음악광 친구가 유튜브 뮤직으로 이것저것 찾아 듣는다. 귀에 익으면서 낯선 선율이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무슨 음악인가 물었다. “시타르” “라비 샹카?” “아니 딸. 아누쉬카 샹카. 시타르 별로라면서?” “딸 건 좋네 ” 월드뮤직이 낯선 이에게 선문답으로 들리겠다. 정리하자면 친구가 틀었던 음악은 아누쉬카 샹카(Anoushka Shanker)의 시타르(인도전통악기) 연주인데 그의 아버지 라비 샹카(Ravi Shanker 1920-2012)는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다. 대가인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에 관심 보이지 않았던 내가 딸의 시타르 연주에 반응하자 의아했던 것이다. 친구가 음악광다운 한 마디를 보탠다. “하긴 월드뮤직은 전통, 민속만 고집하면 안 돼. 섞어야지” 시타르를 처음 만난 건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할 때다. 북서부 타르 사막 도시인 자이살메르까지 흘러들어 갔는데 초여름 비수기라 동행 여행자가 나 말고 서너 명뿐이었다. 가이드와 여행자들이 쉴 곳을 찾아 가는데 사막 풍경을 더 보겠다고 혼자 남았다. 사막은 처음이었다. 건물과 사람과 소음이 일상이던 도시인에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 주는 충격은 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나는 수용소에 내가 가든 다른 누가 가든 상관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체념의 미소를 지은 채 파멸의 품속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때 조차 궁극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을 수 없음을 확실히 알기에 버틸 힘을 얻는다. 나는 결코 피학증 같은 것 때문에 수용소에 가려하거나 지난 몇 년간 내 경험의 기반이었던 소중한 것들에서 분리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서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숨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있듯 강제수용소에 있든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순전히 교만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신도 내가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