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택배물량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전체 18개 택배 사업자의 지난해 택배 물량은 총 33억7818만9000 개였다. 이는 2019년보다 21% 증가한 것이다. 택배 물량은 2016년 20억 개를 돌파했다. 그 후 매년 10% 정도씩 증가했지만 코로나19가 세상을 지배한 지난해에는 평년 증가율보다 2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곳은 택배 회사들이다. 택배 노동자 역시 수입은 늘어났다고 하지만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물량을 처리하다가 급기야 과로사로 숨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심야·새벽배송을 끝낸 택배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부검결과 과로사 증상인 뇌출혈이 발생했고 심장 혈관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였다고 한다. 같은 달 24일에도 한 택배노동자가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8년차인 택배기사인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근무했고 하루 평균 200개에서 250개, 한달 평균 5500~6000개를 배송했다고 한다.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 노동자 15명, 올해
“우리 때는 공장에 가는 학생의 수가 많은 대학 순서대로 명문대였는데, 지금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시험도 거부하며 반발하는 이기주의자가 많은 순서대로 명문대다.”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드는 8090년대의 청년들은 이 시대의 20대 청년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1980년까지 대학생들 대부분은 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80년대의 대학생들이 제 옷깃에 달았던 대학 배지를 스스로 뗀 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었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은 80년 5월, 광주가 짓밟히는 것을 외면하고 침묵했던 자신들이 정의와 진리를 표상하는 대학의 배지를 달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80년대 청년들의 힘은 반성을 실천으로 옮긴 결단과 행동력이었다. 모든 언론이 광주민중항쟁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도들의 만행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을 때,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우다 제적당하고, 감옥으로 간 것이 80년대 청년 학생들이다. 고작 ‘가리방’으로 등사한 유인물 몇 장 뿌리고 개처럼 두드려 맞으며 끌려간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들이 구형하고 선고한 형량을 합하면 몇 만 년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감옥으로 간 숫자보다 더 많은 대학생이 졸업장을 포기
떨어진 목련은 걸음마도 못하고 죽은 아기 발바닥 같다 어떤 어미가 있어 잘 드는 칼로 죽음의 발바닥을 벗겼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한 겹 두 겹 내려놓고 아장아장 걸어가길 한없이 빌었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사월에는 발도 없는 아기가 와서 발바닥으로만 발바닥으로만 하얗게 걸어다닌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을 요구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타인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떤 사람도 수단이나 목적이 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만인 속의 인간적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 존엄성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칸트) 노동자들의 복지문제에 대해 권력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들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말한다. 노동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거만한 말투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모욕보다 더 모욕적이다. 노동자를 지극히 동정하는 듯한 그들의 말투 속에서, 원래 노동자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자신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반드시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편견을 엿볼 수 있다. (헨리 조지) 민중에 대한 보호는 어느 시대에나 폭력에 대한 구실이었고, 군주제와 귀족제를 비롯한 특권층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구실이었다. 심지어 공화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고작해야 인간이 가축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나중에 그 힘과 살코기를 이용하기 위해 가축을 보호할 뿐이다. (헨리 조지) 사람들은 소심하여 늘 자신을 비하하기만 한다. ‘나는 존재한다.…
지난 13일 오전,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저장해오던 다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각료회의에서 최종확정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과 유엔도 유감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내에서의 ‘퍼블릭 코멘트’라는 의견공모에서 조차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전 세계인을 피폭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난하며 70%가 바다 방류를 반대 하였지만 이러한 모두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독선적 판단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명백한 전범국가이다. 본인들의 군국주의 야망에 사로잡혀 전 세계, 특히 동아시아 국가에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일으켜 전 세계를 불행의 그늘로 몰아넣은 것이 고작 70여 년 전이다. 전범국으로 본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며 국제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 본인들의 과오를 씻어내야 함에도 이번에 일본은 또다시 타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이른바 ‘또 다른 방식의 세계대전’으로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전범국가는 어떠한 태도인가?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가진 소수 지배세력은 물리적 폭력을 발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노동자 계급)을 속인다. 이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제대로 형체를 갖출 수 없도록 확실한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건 부르주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작업이 된다.” 헝거리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역사와 계급의식(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의 한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자본주의의 지배세력은 “속임수를 제도화”해야만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날이 갈수록 부르주아 체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에 도전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역사와 계급의식》, 루카치의 고뇌 하지만 그 도전은 그냥 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지배계급에 의해 끊임없이 세뇌되고 자본주의 전체의 구조와 모순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육, 그리고 지배 사상의 작동이 매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손에 쥐고 있는 언론은 그 대표적인 도구다. 감수성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져간다.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무엇을 혐오해야하는지 조차 입력된다. 심지어 자신을 지원하는 운동과 조직까지도 혐오하게 만든다. 노
코로나19 2년차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적·정서적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애처롭다. 최근 한국교총과 한 언론사가 전국 초·중·고 교사 1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가운데 7명 정도의 학생이 코로나 이전 학생들에 비해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응답했다. 또 고3 모의고사 평균 성적이 무려 10~15점이나 떨어진 학교도 있다고 한다.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바로 2~3월에 대구 신천지발 1차 전국 대유행이 시작됐다. 이로인해 새학기 학사일정이 모두 멈췄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사설학원까지 비정상의 일상화가 이제 1년도 넘었다. 지금도 등교 수업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원격 수업은 부실논란 등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경제적 조건이나 교육 환경이 괜찮은 일부 학생들의 경우는 코로나 충격에 덜 노출돼 있다. 하지만 지방이나 시골로 갈수록, 특히 부모가 제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자녀들의 경우에는 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성장기 자녀들은 클 때는 1년에 10cm 이상
사월이면, 깜깜하고 시린 사월 어느 밤이면, 소주 한 잔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밤바다로 향하는 아비가 있어. 아비의 손에는 까만 비닐 봉투가 들려있지. 철 지난 겨울 양말과 장갑과 내복이 들어있는 봉투 말이야. 바다는 그때의 바다나 지금의 바다나 다를 것 없어. 칠년이라는 세월에도 어김없이 침묵할 뿐이야. 어둠은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그리움만 하얀 띠가 되어 파도처럼 달려들지. 술을 비워도 아비는 취하지 않아. 취할 수 없어. 봉투를 풀어 시커먼 바닷물에 내복을 입히지. 양말을 신기고, 장갑을 끼어줘. - 추웠어? 아비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밤을 지새워. 술도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 술에서 바닷물에 흔들리는 해초 냄새가 나. 흔들리는 해초 이파리가 딸의 손가락 같아. 아빠, 안녕.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 같아. 교복에 붙은 이름표 같아. 이름표에 새겨진 이름 같아. 딸의 숨소리 같아. 아비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자식을 잃고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이 죄인 같아서. 때만 되면 고파지는 배가 기가 막혀서. 이런 것도 아비라고 할 수 있을까. 토해내고 토해내도 밤바다는 말이 없어. 목이 쉬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어. - 추웠어? 숨이 막혀서, 사월만 되면 잠
우리의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속해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는 이미 하늘에 속한 것이다. (프란체스코) 우리는 날품팔이꾼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그날의 품삯을 받도록 하라. (탈무드) 우리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존 러스킨)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우리가 노력한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존 러스킨)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일수록 더 훌륭하고 더 가치가 높으며 더 위대한 일이다. (존 러스킨) 만일 네가 자신이 일한 결과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네가 한 것은 결국 하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라. 인간이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행위는 중요한 행위이다. 우리는 신의 사업을 행하면서 인간의 대가를 바라고 있다. 사람의 얼이란 것은 온갖 힘의 물둥지다. 모든 냇물이 흘러서는 물둥지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는 흘러나서 여러 갈래의 냇물이 되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마지막에 한 번은 반드시 정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