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뜨거운 태양아래 곡식 영그는 소리 탱글하다. 푸른 물이 빠지기 시작한 초목은 씨앗을 익히느라 분주하고 높아진 하늘과 달궈진 태양사이로 오가는 바람이 산뜻하다. 가을이 들어차고 있다. 태풍 링링에 쓰러진 벼들과 낙과한 열매들 그리고 가지 꺾인 나무 틈으로도 가을볕이 들어찬다. 쓰러진 벼를 보면 안타깝다. 나락이 영글기 전 쓰러진 벼는 상품 가치도 떨어질 뿐 아니라 수확도 어렵다고 하는데 저렇게 많은 벼들이 쓰러졌으니 농가의 시름을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작은 과수원이 있다. 이런저런 유실수가 있는데 태풍 지난 후 과수원에 나가보니 대추며 호두 그리고 감까지 시퍼렇게 쏟아졌다. 한 달은 족히 자라야 수확 할 과실들이기 때문에 지금 떨어진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훤하다. 대부분은 떨어지고 폭풍을 견뎌낸 열매들 몇 고요해진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린다. 군데군데 찢긴 나무를 걷어내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하늘이 야속하기만하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대추를 두어 상자 주웠다.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냥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아깝고 보기 싫어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일요휴무제’ 관련해 공론화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아동·청소년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이행연구,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은 과중한 학업부담으로 자유롭게 생활할 시간(운동, 여가, 수면 시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조사는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청소년 총 9천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아동·청소년들 중 33.8%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으며 “자주 생각한다”는 5.2%, “가끔 생각한다”는 28.6%로 나타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주된 이유는 “학업문제(학업부담, 성적 등)” 37.2%,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 21.9%, “가족 간의 갈등” 17.9% 순이었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현실은 녹록치 못하는데 애꿎은 청소년들이 입시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여가시간을 누리지도 못하
인동 창(窓) /김순이 못 견딜 때마다 창가로 간다. 어머니가 심어준 인동 꽃 봄마다 향기롭다 목숨의 줄기 허공 벽에 부딪혀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져도 한사코 뻗어 휘감아 잡는 덩굴손 내게 지니라고 모진 겨울 칼바람에 앗기지 않는 잎새의 푸름 내게 지니라고 어머니가 심어준 눈물어린 당부 머리맡 창가에 늘 푸르다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과 비평’으로 문단에 나와, 시선집 ‘기억의 섬’, ‘제주야행’등을 펴냈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시인은 제주도문인협회장을 역임을 했고, 제주문화원 부원장으로 있다. 시 인동 창은 인고(忍苦)의 계절에서 시름하는 아침의 애이불비(哀而不悲)한 상념의 고독감들이 펼쳐진다. 청춘도 가고, 사계(四季)도 소리없이 지나간다. 무념 무상한 세월이 아니던가, 덧없이 동행했던 사람도, 꽃도, 돌아오지 못할 시인의 심상으로 떠나고 만다. 기다리는 봄은 왔지만 담담한 창에서 어두운 기억과 영광의 귀로를 찾다보면, 뜰에 피어나는 꽃나무들의 애절한 소리에 청승 맞는 일이 한두 해 일이었던가, 오늘은 시름도 버리고, 가엾은 몇 사람들을 불러보자 허전할수
경기도가 인천시와 함께 수도권 쓰레기 처리 문제를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수도권 친환경 매립지 필요성과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매립지의 폐장(閉場)시기인 2025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경기도와 인천시, 서울시의 쓰레기는 난지도 사용 종료 이후인 1992년부터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에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개장 이후 27년동안 다른 지역 쓰레기까지 처리하느라 환경 피해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인천시가 2025년 이후 현재 매립지의 문을 닫겠다는 의사를 이미 여러차례 밝혔다. 2015년에 체결한 환경부와 수도권 3개 시·도의 ‘4자 협의체 합의’에 근거해서다. 하지만 이에 대비한 대체매립지 조성에 대해 환경부는 물론 관련 지자체와 주민 등의 이해가 얽혀 논의의 진척없이 흐지부지 되면서 현재까지 흘러왔다. 관계자끼리 서로의 이견과 갈등 때문이다. 여기에 악취와 먼지, 그리고 쓰레기를 실은 트럭들의 난폭운전 등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대체매립지 조성의 필요성에 힘을 보태고 있는 실정이다. 또 정부에서 인천시민의 복지나 문화시설, 환경관련 특목학교 설치 등 합당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도 한 몫 거들었다. 사정이…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행정관서 공무원과 사고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 경찰관들이 폭행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 폭행을 당하면서도 정당방위 무력을 사용하기 힘든 공무원의 신분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 24일 한 방송이 내보낸 공무원 폭행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대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모친을 폭행하는 딸을 말리다가 머리채를 잡히고 내동댕이쳐져 기절한 여성 공무원과 술 취한 5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인천의 경찰관 사례는 공권력이 무시당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인천 중부경찰서에 근무하는 최지현 경장은 수배자 검거 전국 1위로 특진을 하기도 했던 우수한 경찰관이었다. 그는 지난 2017년 만취해 난동을 부리는 50대 남성을 연행하다가 어깨와 팔 등을 걷어차이면서 어깨 관절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같이 출동했던 경찰도 발에 맞아 입술이 4cm 정도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최경장은 이로 인해 두 차례 수술까지 했으며 5년 후유장해 판정을 받고 휴·복직을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사용한 치료비만 5천300여 만 원에 달했다. 그러나 치료비 대부분은 재활 치료에 사용됐다. 재활치료비는 공무원연금공단 ‘비급여’ 항목이어서 20%밖에 보상받지 못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가? 하지만 나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2004년 군산 성매매집결지인 대명동과 개복동화재사건이다. 단순화재사건으로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이 감금, 착취, 성매매강요 등 여성들의 참혹한 현실의 민낯이 한국사회에 그대로 드러났었다. 이 화재참사를 계기로 성매매는 단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며, 성매매는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고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고 시행 된지 올해로 15년이 된다. 지금은 어떠한가? 성매매방지법이 풍선효과 등 많은 말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보지 않았던 성매매구조와 성매매문제가 인권 문제와 범죄라는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2015년 미국블랙마켓은 한국이 성매매시장 세계6위라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집결지와 유흥주점, 노래방, 마사지업소 등서 성매매가 여전히 성행 중이다. 2013년 경찰청 성매매 기소율 통계를 보면 성구매자 기소율 17.3%, 여성 기소율 23.2%로 여성의 기소율이 더 높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매매는 양벌규정을 적용한다.…
미국에서는 13~19세까지의 중 고교생을 ‘틴에이저(teenager)’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중학생을 서브 틴(sub-teen), 11세까지를 프리 틴(pre-teen)으로 구별해서 부르기도 한다. 모두 10∼14세의 연령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전(前)청소년기를 의미한다. 이들 세대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경제적인 풍요함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조숙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생에서 10대는 독특한 시기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과도기이다. 아이로서의 삶과 어른으로서의 삶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이 겹쳐 나타나 어느 정도 혼란과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틴에이저라는 말이 나온 것도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이들의 독특한 의식세계와 행동 양태에 주목한 결과로 풀이된다.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려면 10대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자들도 청소년 범죄는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성장과정의 일부로 본다. 바로 키우지 못하면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10대 청소년은 죄를 지어도 성인과는 달리 취급된다. 어른이 돼서까지 범법자로 낙인찍히는
제 17호 태풍 ‘타파’가 북상하면서 제주와 경남, 전남 남해안 일대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항공기 여객선 결항이 속출하고 제주 산간지대에는 7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부산에선 노후주택이 붕괴돼 70대 여성이 숨지고, 울산과 대구에서도 교통사고 등으로 각각 한 명이 사망했다. 얼마 전에는 링링이 한반도를 끼고 강타해 과수농장들이 심하게 피해를 봤다.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17m/sec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저기압을 말하는데 북서태평양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이라하고 북대서양은 허리케인, 인도양은 사이클론이라한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였다. 잘 알고 있는 서양화가 한 분이 큰 피해를 당했다.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정리해 강원도 고향에 미술관을 꾸몄다. 원래의 집은 계곡 하단에 위치했는데 터가 좁아서 계곡 윗부분의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 내달아 터를 넓게 꾸미고 건물 3동을 지어 전시실을 따로 구미고 그동안 꿈꿔왔던 그림을 마음껏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미는 이 미술관을 그대로 덮쳐버렸고 그동안 팔지 않고 애지중지 모아뒀던 2천여 점의 그림이 그대로 쓸려 내려가 한 점도 쓸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듬해 봄 화가
사람은 자기가 걱정하는 범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이다. 대체로 누구에게나 자기 가정이 최대 관심사일 것은 당연하다. 범위를 넓혀 마을공동체를 위해 고민하고 봉사하려는 사람은 그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소속된 군이나 시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그곳 주민들의 고민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 지역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직원들보다 훨씬 큰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의 앞날과 비전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자신과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를 밝게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국가의 발전전략을 꾸준히 연구하며 헌신하는 사람은 국가적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개인이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는 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자신의 앞가림에 급급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럴 마음의 여유와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해치는가. 자기 자신의 마음의 갈등을 해결한 사람, 마음의 병을 치유 받은 사람만
기울어지는 세계 /홍순영 나는 똑바로 서있다고 서 있었는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니 그게 또 조금 안심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난간까지 잡았는데 한발 내 딛다 기우뚱, 그게 꼭 내 탓만은 아니라니 지구가 태양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는데 제가 기울지 않을 재간 있나요 당신이 나를 삐딱하게 본대도 이젠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요 - 중략 - - 홍순영 시집 ‘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 / 시인동네·2017 한 쪽 어깨가 기울은 사람을 종종 본다. 어깨가 기울은 사람을 보며 생면부지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의 집안내력을 의심하거나 그의 운전 습관 같은 것을 짐작해 보곤 했다. 시인의 말 대로라면 내 어깨도 분명 기울었을 것이지만 난 내 어깨에 경사진 면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아왔다. 그야말로 모르는게 약인거다. ‘지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어’ 우리 모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실소를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핑계거리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