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기습해오자 고대 로마인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코끼리 군단이었다. 말들이 두려워 날뛰자 로마의 기마병들은 어찌 되었겠는가? 소총부대 앞에 난데없이 탱크여단이 나타난 격이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코끼리를 어떻게 길들인 것일까? 기둥에 매어 단다고 해도 기둥 채 뽑아버리는 건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 코끼리를 조련하는 방법 인도의 오래된 이야기라고 한다. 어린 코끼리를 굵고 튼튼한 줄로 발을 묶어 말뚝에 매어 놓는다. 아무리 기를 써도 말뚝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해버리면 점차 코끼리는 밧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이렇게 자라난 코끼리는 발에 줄을 “묶기만 해도” 그 큰 몸집이 뿜어내는 힘을 알아서 포기해버린다고 한다. 조작된 의식은 행동을 통제하고 본래의 능력까지 제압해버릴 수 있다. 한국 전쟁의 비극과 분단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은 최인훈의 작품 ‘광장’의 주인공은 이명준이다. 이어 쓴 ‘회색인’의 주인공은 같은 “준”자로 끝나는 독고준이 주역이다. 준(俊)은 뛰어났다는 뜻도 있고 6월을 의미하는 June이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의 서사가 박힌 명명(命名)이다. 따지고 보면 이 나라 전체가 아직도 “준”이라는 이름을 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LH는 물론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게다가 LH 일부 직원들이 투기 의혹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조롱하는가 하면 개인정보 조회를 거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1차 조사 대상인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일부가 조사에 필요한 개인정보 이용에 불응한 것이다. 또 투기 항의집회가 열리자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저희 본부에는 동자동 재개발 반대 시위함. 근데 28층이라 하나도 안 들림”이라는 글을 올렸다.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기가 막히다. 반면 LH 고위 간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코로나19와 겹쳐 서민들이 눈물로 버티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추진한 신도시 공급 대책이 시작하자마자 LH 직원들의 조직적, 계획적 투기로 절망감만 안겨주고 있다”는 송치용(정의당·비례) 도의원의 한탄에 공감한다. 조사 대상을 모든 LH 직원 뿐 아니라 공직자와 공공기관 임직원, 선출직 공직자 등 지도층 인사로까지 확대하야 한
인간은 생각한다.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합리적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 대해, 신에 대해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 그저 닥치는 대로 잡다한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영혼과 신에 대한 생각만은 하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춤에 대해, 음악에 대해, 노래에 대해 생각하고, 건축에 대해, 부에 대해, 권력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대체 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파스칼) 인간의 중요한 의무 중의 하나는, 우리가 원래 하늘로부터 받은 이성의 빛을 최대한 빛나게 하는 데에 있다. (중국의 지혜)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부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에 이끌리지 말고,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율적인 정신적 탐구욕보다 존엄하고 생산적인 것은 없다. 무엇보다 먼저, 인생의 모든 일
표현된 것은 힘을 잃는다 솟구치기 전, 튀어나가기 전 가장 센 힘은 표현되기 직전(直前)에 모여 있다 쿠데타군의 총칼 앞에 서서 미얀마 여인이 그릇을 두드린다 총알이 날아오면 피를 흘리며 찌그러질 얇디 얇은 자신을 치고 있다 공포와 원망으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 그렁그렁한 눈 통곡이 터지기 직전, 울먹이며 깨문 입술 수많은 사람들의 두개골이 부서지고 내장이 흩어진 살육의 거리에서 울음을 참고 쿠데타군의 총칼 앞에 우뚝 선 미얀마 여인 달려나가지 못하는 순간 울어도 울지 못하는 순간 고통을 터트리지 못하는,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선 극한의 순간에 울 수 없는 자신을 당당당당 당당당당 두드린다 총알이 날아오기 직전 눈물의 직전에 몸의 예감을 따라 흘러온 인류는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변화의 직전에 서서 인간의 고유한 사랑을 최대한 끌어올려 최후까지 간다 분노가 분출하기 직전 저항이 저항을 부를 때까지 세계를 두드린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구원의 몸짓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앙다문 입술로 울먹울먹 모아놓은 힘이다 그러니 두드려라, 미얀마 여인이여, 지구 이쪽에서 우리가 운다 그대의 직전에서 우리의 직후까지 인류 양심이 공명하는 소리는 결국 표현되고 말 테
군 쿠데타로 빚어진 미얀마의 정정이 혼미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들의 불복종 시위 확산에 대해 군부 정권이 무차별 유혈 진압에 나서며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하루에만 시민 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하고 소년들을 쇠사슬로 고문하며 시민들은 절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들끓자 군정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국제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그리고 미얀마의 민간정부를 이끌었고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중국과 가까워져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는 고도의 심리전까지 펼치고 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는 지난 1962년 군 쿠데타 이후 2015년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이 승리하기까지 50여년간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희생되는 1988년 이른바 ‘8888 항쟁’과 2007년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민주화 세력은 2015년 총선 승리에 이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다시 군부 정당에 압승을 거둬 미얀마의 봄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는 기회를 맞았지만 이번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미얀마에서 군부의 뿌리는 깊고 독특하다. 1943년 수지 고문의 부친이
1. "어차피 한 두 달이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이 지나가겠지". 일파만파로 충격이 확산되고 있는 LH 땅투기 사건에 대해서, 해당 회사의 직원이 올렸다는 글이다. 이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조직의 구성원이 오랜 역사를 통해 체화(體化)시킨 일종의 확신이다. 해방 되기 4년 전인 1941년 ‘조선주택영단’에서 출발했다. 이후 ‘대한주택영단’으로 개명했다가 ‘대한주택공사’, ‘토지금고’, ‘한국토지개발공사’, ‘한국토지공사’ 그리고 2009년부터 현재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러한 80여년이 흐르는 동안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이 조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민간 토지를 수용하고 그것을 건설업체에 불하하거나 직접 주택을 지어 공급하면서, 배후권력인 국토교통부의 힘을 빌린 한국 토건세력의 성층권으로 군림했다. 거래 업체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갑질로 유명했다. 선의의 토지 수용자들에게는 일방적 전횡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내·외부 개혁을 실행한 적이 없다. 위법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저 회사 사람들이 이번 사태도 '늘 그래왔듯' 찻잔
안전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방구석1열 모니터엔 드론이 공유해주는 낯설고 설레이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아진다 들떠, 끼니도 거른 채 내 무릎 뼈는 상기된 듯 파르르 책상 의자가 마치 이코노믹 좌석처럼 불편하지만 와인 잔에 쏟아 붓던 다양한 불안들을 마신다 허기진 천 리 길, 시큰한 발목으로 찍어놓은 나라 밖 스탬프 남아있는 빈칸들이 긴 탄식을 한다 낯선 곳의 새벽녘 공기를 여닫던 문들이 신기루처럼 떠오르고 영상들은 세계의 아름다운 곳들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유혹을 한다 일상의 바람이 벼랑 아래로 매번 고꾸라지고 모국어를 남발하는 불법 체류자처럼 수시로 넘보고 있는 이국의 땅 집 밖은 우한의 바람이 미친 듯 불고 손톱 아래 요거트가 끈적거린다 소비하지 못한 화장품을 치덕치덕 바르고 유리 발판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찝찝한 휴일을 보내고 있다 약력 ▶1961년 경북 의성 출생. ▶[월간문학](2017)으로 등단. ▶현 [계간 미네르바] 편집위원
한국 주요 일간지의 발행부수는 극비였다. ‘어쩌다’ 조선일보 등의 신문발행부수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주요 일간지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유료부수 조작이라는 ‘사기행각’을 지속해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권력과 유착을 넘어 권력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문의 발행부수는 단순한 사세 과시 수단만은 아니다. 이번에 부수 조작사실은 발행부수 인증기관인 ABC협회에 근무하는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났다. 문화부의 유가부수 실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ABC협회는 ‘1등 신문’ ‘조선일보’의 유가 부수를 116만 2953부라고 공개했는데, 표본 실사 결과 그 절반 수준인 58만 부에 불과했다. 73만 3254부라고 공개한 '동아'와 19만 2853부라고 공개한 ‘한겨레’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발행부수는 광고단가 산정을 포함한 모든 평가의 선행지표가 되기 때문에 부수 조작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조중동은 정부광고의 최대 수혜자였다. 최근 3년 간(2017년 5월~2020년 8월) 동아일보가 305억 1200만원, 조선일보가 265억 4700만원, 중앙일보가 173억 7700만원의 정부광고 수입을 올렸다. 일반 기업도 발행부수에 근거하여 광고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을 느끼며, 주변과의 열린 관계를 통해 자신을 유지하고 또한 쉬임없이 진화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더불어 자기만의 가치에 닫혀 진화하지 않는 개체나 단체, 사회는 생명을 다한 것이며, 이는 사상과 이념, 가치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 크고 작은 개선을 통해 기존 체제를 강화하고 안정시킴으로써 사회 발전을 꾀하는 보수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지향점을 향해 기존 체제의 해체도 마다하지 않으며 진화해가는 진보라는 두 날개는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모두 필요하다. 촛불의 무혈 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와 지난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에 기대했던 진보 인사들은 노동 문제를 포함해 빠른 사회 개혁이 진행되지 않다 보니 실망을 표시한다. 이들은 민주당 주류를 이루고 있는 70-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제 기득권이 되어 사회 개혁보다는 정치 권력 놀음이라는 구태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일제 점령 이후 100여년에 걸쳐 형성된 친일 기득권 세력이 만든 사회 구조는 물론, 그런 조직 문화에 길들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