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이병초 꽃부터 솎아야 한다고들 해서 가지가지 온통 하얀 사과꽃 앞에 섰는데 어떤 꽃을 솎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수정된 꽃인지 아닌지 모두지 알 수 없어서 너 통하였느냐 물어보려는 참인데 꽃이 손가락 끝을 세워 벌의 어딘가를 긁어대는지 사알살 긁고 긁힐수록 살은 파들거리며 머릿속의 무거운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나오는 수상한 쾌감을 맛보는 건지 발소리 죽이고 어서 빠져나가야겠다 싶은데 어라, 사과나무에서 실눈 뜬 새싹들 숨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병초 시집 ‘까치독사’ 어느 철학자가 ‘통(通)’의 불가능성을 말했다지만, 이 봄에는 그런 ‘완벽한 통’이 아니더라도 ‘시원한 통’ 같은 거 한번 할 수 없을까. 내가 손가락 끝을 세운 꽃이 되어 너의 머릿속 무거운 것들을 긁어주고, 그 무거운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네가 손가락 끝을 세운 꽃이 되어 나의 머릿속 답답한 것들을 사알살 긁어주고, 그 답답한 것들이 시원하게 긁혀 내 생각이 쾌감으로 파들거리게 하는 일 한번 없을까. 주변의 딱딱한 숨들까지 몽글몽글해지게, 무겁고 답답하고 꺼림칙한 것들 몽땅 긁혀 나
요즘 대한민국이 성 관련 사건으로 시끄럽다. 관련자도 고위 공직자로부터 연예인, 언론관계자까지 폭이 넓다. 이 가운데 최근 김학의 전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김 전차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 김 전 차관은 강원도 한 별장에서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자 사퇴했다. 수사 중 적나라한 성접대 동영상이 나왔지만 검찰은 “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하기 어렵다” “관련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면서 무혐의 처분했다. 그렇게 사건은 묻히는 듯 했지만 최근 수사가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소시효를 연장해서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15일 오전 한국여성의 전화,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여성단체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개최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는 한 여성은 “지금도 많이 힘들고 떨린다” “그들의 협박과 권력이 너무 무서워 몇 번의 죽음을 택했다가 살아났다”고 치를 떨었다. “살려 달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해외 출장 중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주요기업 주주총회는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지배구조가 시대적-국제적 흐름에 근접하며 쉽게 후퇴하지 않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대표이사와 이사회의 분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기업 지배구조가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개선이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영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사회 의장이 재벌총수의 측근이라면 그 이사회가 총수를 견제하거나 감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대표이사-이사회의장을 분리한다고 발표한 기업들을 보면 그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다.게다가 상당수 대기업이 여전히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 판검사, 장·차관,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위 등의 출신이 재벌사의 사외이사 자리에 앉고 있다. 물론, 이들이 오랫동안 일선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 등이 사외이사 활동에 긍정적으로 쓰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들이 기업의 ‘바람막
미세먼지가 우리생활에 큰 위협을 주고 있다. 최근 연일 계속되고 있는 고농도 미세먼지로 인해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엄중한 상태가 일상화 되고 있다. 특히, 먼지 지름이 2.5 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먼지의 농도도 매우 나쁨 수준이 지속되고 있어 미세먼지와 더불어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미세먼지 위험 수준으로 사회경제 생활의 장애는 물론이거니와 장래 우리 국민들의 의료비용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미세먼지의 위험은 앞으로도 하절기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사회전체의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원인으로 대외적으로 중국의 산업화에 의한 것과 국내적으로는 자동차 배출가스, 건설현장, 화력발전소 등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다.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문제는 그 원인도 복잡하고 피해도 국가 경계를 넘고, 국내에서도 지역을 넘어 걸쳐있어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입지만 그 원인이 관할구역을 넘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미세먼지를 줄이기…
“나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먹는 물리적 나이, 다른 하나는 신체적 나이다. 신체적 나이가 물리적 나이와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총선 운동 중에 이렇게 ‘건강’을 과시한 마하티르 무함마드(93) 전 총리가 독립 후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루는 노익장을 과시해 화제가 된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100세에도 현역처럼 왕성하게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시대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대단한 노익장이다. 물론 정년 몇 년 차이로 웃고 우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경지지만…. 그러나 운전만큼은 이런 노익장에서 예외다. 나아가 들수록 인지능력이 저하,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고령운자자의 교통사고현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려가 커지면서 고령운전자 야간운전 조건부 제한 등 갖가지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령층 10명 중 7명은 아직 운전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반영한 정책 마련이 꾸준히 제기 되어 왔다. 실제로 노인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운전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노년학회가 최근 6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말이 있다. 쓸모없는 것도 쓸 데가 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산의 나무는 스스로 베이도록 자라고, 호롱불은 그 기름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며 자두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꺾이고, 옻나무는 칠할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진다. 사람들은 쓸모 있음의 용도는 알지만 쓸모없음의 용도는 알지 못한다.’ 우리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기로는 위대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떠받히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하찮은 사람들이다. 기름 묻은 장갑으로 땀 흘리는 기술자가 있기 때문에 전기도 쓸 수 있고 수돗물도 쓸 수 있다. 매일 새벽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인부들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아파트 정원들이 그림 같이 깨끗하다. 화염이 치솟는 불길 속을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안심하고 살아간다. 거리의 미화원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쓰레기 판이 된다. 뿐만 아니다. 조금 안다고, 조금 더 가졌다고, 아랫사람을 깔아 보고 우습게 여기고, 심지어는 남의 가슴에 무덤까지 안고 갈 악담도 한다. 그들이 누구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지는 모른다. 바…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다. 올라가려는 층의 버튼을 누른 후 한 쪽에 자리를 잡고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뒤에 탄 사람은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 앞서서 이미 탑승한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가까운 곳에 서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부부 또는 연인이나 자신의 어린 자녀가 탑승했다면 손을 잡거나 안아주는 행동으로 인해 둘 사이의 거리는 사라진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동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개체거리’가 사람 사이에도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개체거리란 동물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 또는 비둘기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어가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처럼 사람에게 나타나는 개체거리를 ‘대인거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상대방과 관계 정도에 따라 4개의 유형으로 나타난다. ‘공적거리’는 360~750㎝의 거리로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거나 자신에게 영…
한사람 /강빛나 당신의 무게 벚꽃잎보다 가벼웠나 봐요 해가 안 뜨는 줄 알았는데 밥을 먹어요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고 저녁보다 늦게 잎이 돋았다고 당신은 더 뛰고 비가 온다고 나는 우산을 돌렸어요 잠시, 당신 이마에 주름이 몇 개였나를 생각을 하다가 내일 아침 찌개에는 뭘 넣을까 고민해요 벚꽃 뿌리였던 당신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봄이 오는지 별 것이 아닌지 삶과 죽음은 한길이다. 삶은 짧은 순간 떨어지는 유성과 같다. 또한 삶은 내가 나라고 불릴 때, 당신이 당신으로 있을 때만이 비로소 서로에게 쉼을 주고 은신처가 된다. 그러나 살다보면 준비되지 않은 이별, 원치 않는 이별, 어쩔 수 없는 이별 등, 수없이 많은 이별을 접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고독이라는 짐을 홀로 져야하는 때가 누구에게나 기어이 오고야 만다.‘해가 안 뜨는 줄 알았는데/밥을 먹어요’ 화자는 슬픔의 깊이를 처연하게 가슴으로 몸으로 수행하고 있다. 새벽보다 일찍 일어나 나를 챙겨주는 당신의 주름살을 기억하려하지만 현실적인 내일 아침이 그것을 가로 막는다.벚꽃의 뿌리를 이제야 알게 된 ‘나’는 당신 없이 어떻게 봄이 오고, 꽃이 피는지 별일 없이 오늘도
북한의 비핵화협상 중단 고려 발표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인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재개 위협도 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도출에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북한은 미국에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서로 주고받을 조치에 대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북한이 참여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 여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북한과 협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이 대미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데 대해 미국이 강경 대응을 자제하고 협상의 문을 열어놨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스럽다. 북한도 협상의 판을 깨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미국과의 협상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일괄타결에 의한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강경 입장에 북한은 전격적으로 미사일과 핵 실험 재개 카드까지 꺼냈지만 회견 사실을 북한 주민에게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하고, 이에 상응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
지난 2월 한 차례 유행한 뒤 소강상태이던 홍역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확산되고 있다. 인천광역시에 따르면 14일 서구에서 베트남 국적의 29세 남성이 홍역 확진됐다고 한다. 이 남성은 지난 2월 28일 홍역 확진을 받은 베트남 환자와 접촉, 관리 보건소로부터 증상 발생에 따른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홍역환자가 2명 이상 역학적으로 연관되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하는 집단발생으로 분류했다. 아울러 인천시는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 지역 내 접촉자가 모두 86명임을 확인하고 위험군 접촉자에 대한 예방접종을 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전파 차단에 나섰다. 29세 남성에게 홍역을 옮긴 사람은 지난 1월25일부터 2월10일까지 베트남을 다녀온 뒤 홍역에 걸렸다고 한다. 올해 인천시에서는 카자흐스탄 국적 3세 아동과 39세 여성, 베트남 30대 남성이 홍역 확진을 받은 바 있다. 인천 뿐 아니라 전국에서 홍역 확진환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경북 경산에서 베트남 유학생이 고열·발진 등의 증상을 보여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 치료에 들어갔고 8일 대전에서는 가족과 베트남에 다녀온 8개월 여아가 홍역을 확진 받아 격리치료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