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일산, 평촌, 영통에 이어 최근 광교분양이 마무리된 듯하고 이어 동탄지구에 추가 분양이 늘고 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누구나 신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이 커질 것이다. 그래서 시(市) 명칭보다는 신도시 이름을 앞에 놓고 싶어한다. 대표적으로 분당, 판교에 산다하고 성남시민이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원광교라 하지 않고 화성동탄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글자수가 많거나 말하기에 길어서가 아닌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신도시에 산다는 것을 강조함일게다. 과거 젊은이들 대화를 들어보자. 친구가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몇 평이냐고 논스톱으로 되묻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가 궁금해 한다. 중부권에서는 평수보다 어느 신도시인가 궁금한 것이다. 평수를 묻는 것은 가격까지 답하라는 것이니 조금 미안한 일이고 한양서울을 중심으로 동서남(東西南) 어느쪽인가 알고싶은 것이다. 내심 우리집보다 넓은 아파트면 기분이 상할 위험도 있다. 4년전에 남양주시는 8개 책임읍·동으로 행정의 효율성을 증진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중단했다. 신도시 00에 산다고 자랑했는데 읍, 동으로 개편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나보다. 얼마전에 130㎝짜리 오래된…
과거에는 변화의 속도가 거의 없었거나 느렸기 때문에 대부분 안정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효과적이었던 개념과 기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었고, 이러한 보수적인 경영활동의 흐름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과거에 생각하지도 못 했던 새로운 기술들과 상품들이 시장에 선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속도(speed), 폭(Width) 그리고 깊이(depth)는 점점 더 빠르고 광범위해져 가고 있다. 2016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한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무려 50년도 더 전에 인류의 미래는 제조업 기반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옮겨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대표 저서인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고했고, 탈대량화, 다양화 지식기반 생산 등의 현상이 거의 맞아 떨어지면서 세계적 미래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지식은 인류의 미래 경제에 있어 핵심 자산이자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출간하면서 강조했던 내용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세…
일요일 아침이다. 새벽잠이 깨었는데도 나는 일어날 줄을 모른다. 오늘 하루만큼은 내 자유다. 출근할 걱정 없고 지시받을 일 없고 눈치 볼 일도 없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낑낑거릴 이유도 없다. 그러니 세상천지가 내 것이다. 그런데 또 귀가 간질간질한 게 아주 신경에 거슬린다. 귀찮지만 반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서랍에서 면봉 하나를 꺼내 든다. 이걸로 후벼, 말아? 잠시 망설이다가 면봉을 귀에다 살그머니 집어넣는다. 오매, 오금이 저린다. 이 순간, 이 느낌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살살 후빈다.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듯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너무 깊이 넣지 마라. 이비인후과 가기 싫으면…. 알지, 알아. 그렇지만 이 정도론 시원찮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는 조금 더 면봉을 귓속에 밀어 넣고 살살 후빈다. 돌린다. 심하지 않게 간지러운 곳을 찾아다닌다. 그럴 때 기분은 홍콩 가는 길이 따로 없다. 조금 돌린다는 게 조금 더 돌린다. 조금 넣는다는 게 조금 더 들어간다. 면봉이 귓속 깊숙이 들어가 고막에 닿은 듯하다. 찌릿, 한순간 고막에 통증이 온다. 아차! 너무 깊이 넣었네. 과유불급이라. 후비는 데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이렇
코로나19 사태는 학교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3월에는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교사와 학생은 온라인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후 학교급과 학년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교개학을 시작하면서 지난 6월 8일 드디어 전국의 학생들이 학교에 갔다. 학생들의 등교는 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첨예한 문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았고 새로운 지역확진자와 해외 유입확진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때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부터 폭발적인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의 하나라도 학교에서 감염이 시작된다면 기하급수적인 감염 상황도 예상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는 학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우려 속에서 학생들은 학교로 갔고, 안타깝지만 단위학교에서 지엽적으로 발생하는 감염 사례도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6월 22일 현재 전국 49개교에서 등교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전체 2만902개 유·초·중·고교 가운데 0.2%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학교를 통한 대규모 확산 감염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공직이라는 틀속에서 긴 세월 근무한 터라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내는데 익숙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 공무원 생활을 추억하는 데는 능숙한 척 한다. 그래서 격식과 형식과 컨셉이 맞는가 틀리는가도 모른 채 자화자찬으로 글의 내용이 기울어 가는 것 같다. 군 간부 출신 앞에서 월남전 군대이야기를 꺼내고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신 분 앞에서는 초·중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의무적으로 꺼내야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시골 면사무소 공무원은 당시에 ‘머슴’이라 했다. 공무원 신조에 ‘공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전을 보면 공복(公僕)이란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 설명한다. 공무원에 첫 발을 내딘 당시 부면장님과 산업계장님이 시키는 일은 거의 다 따랐다. 직계 선배의 심부름도 열심히 했다. 8급 때는 4층 위 옥상에 설치된 노랑색 물탱크 안에 들어가서 침전된 황토흙을 퍼냈다. 물을 잠그고 배수를 한 후에 들어가니 바닥에 2㎝ 황토앙금이 침전됐다. 사감실이 습기차고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고는 벽채를 헐고 옆 창고까지 사감실을 넓혔다. 당시 수용비라는 예산비목은 도깨비 방망이였다. 1종보통 운전면허를 받아 사무실 차를 몰고
동생이 죽던 해, 고향 동네에는 납골당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음성의 납골당에 안치를 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을 굳이 동네 분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죽음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 세대의 어른들은 자식의 죽음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당신이 먼저 가야 그게 순리라 생각했다. 몇 해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동생의 곁에 안치했다. 그랬는데 어머니 나이 팔순에 이르자 오래 살아왔던 곳으로 남편과 자식을 고향으로 불러오고 싶어하셨다. 동생에게는 고향이었다. 마침 윤달이 든 올해, 나와 형제들은 어머니 뜻에 동의를 했다. 두 사람도 고향에 오고 싶어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납골당이 많이도 생겼다. 민간이 운영하는 납골당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관리비도 5년치를 선불로 받는 다는 걸 알게 되었다. 씁쓸했지만 어쨌든 옮기기로 하고 고향 동네에 새로 생긴 납골당을 둘러보게 되었다. 새로 지은 납골당인데다가 화려하게 지어 놓았고 수목장이니 잔디장이니 해서 안치 방법이 다양해서 좋았지만 역시 마음에 드는 안치 방법은 매우 비쌌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모셔올 걸 염두에 두고 둘러보면서 마음에 들어하신 안치실이 있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
봄비 /김연화 연못위로 뛰어 내리며 아직 꿈결인 연못물을 흔들어 깨우며 수련의 눈가에 묻은 늦잠을 털어 낸후 연꽃을 타악 터 뜨리고 싶은걸까 꿈에서도 꿈 아닌듯 실눈을 뜨고 잎마다 황급히 켜는 꽃등 ■ 김연화 1959년 전남 화순출생, 고려대 생태작가 아카데미와 수원문학 아카데미수료, 좋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옴, 한국 생태환경학 이사, 대한 시문협 이사, 2017 전국예술대회 대상, 수원문인협회 회원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예술감수성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2달 이상 초·중·고 학생들은 온라인 개학 및 수업으로 제대로 된 음악과 미술 수업을 체험위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개학 및 수업이 진행되면서 원격학습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교과로 미술과 음악 등 예술과목을 위한 교육청 차원이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인즉, 온라인 수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위한 예술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학생들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학교예술교육은 교육과정 상에 이뤄지는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거나 외부의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다보니,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연계성을 발휘하기가 곤란하였다. 교육부, 교육청, 지자체 등의 사업주체의 다양한 공모사업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단위학교 현장에서 지역과 학교의 특색을 갖춘 예술교육이 어긋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교육과정 속에서 예술교육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보니, 학생들을 위한 예술교육이 적절하게 교육과정에 녹아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교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돈암서원의 강당인 응도당에서 정회당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정회당은 응도당과 같은 라인에 있지만 정회당이 입덕문을 향해 살짝 축을 틀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특별한 꾸밈없이 정직하게 쓰여진 정회당 편액은 기둥머리에 걸려있다. 정회당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아버지인 김계휘 선생의 서재로 대둔산 고운사 경내에 있었다. ‘정회당’이라는 편액을 건 김계휘 선생은 이곳에서 강학을 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정면4칸, 측면 2칸의 건물은 전면 1열과 좌우 1칸씩은 문이 달리지 않은 마루이다. 좌우 1칸끝의 머름은 설치하되 문은 달지 않아 개방된 느낌을 준다. 반면에 정면 가운데 2칸, 후면1칸에는 벽과 문을 달아 방을 만들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단층의 기단 위는 사방으로 전돌을 깔아 다른 건물과는 조금 다른 격을 느낄 수 있다. 정회당은 건물 기둥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건물 앞뒤로 주춧돌 위의 기둥 다리부분이 색이 다른데, 이는 빗물에 기둥 아래 부분이 삭아서 교체를 했기 때문이다. 건물 한 바퀴를 빙둘러 색이 다른 기둥들을 보니 건물의 세월이 느껴진다. 정회당은 약 460여년 된 건물로 고운사 터에서 195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