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가 선물로 들어왔다. 모과를 식탁에 올려놓자 은은한 향기가 감돈다. 모과 향기만으로도 집안이 산뜻해지고 찌뿌둥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모과차를 만들려고 칼집을 내자 훅 향기가 쏟아진다. 모과를 반으로 가르니 씨앗들이 가득하다. 검고 탱글탱글한 씨앗이 한 줄로 나란히 하고 있다. 저 씨앗들 속에 혹독했던 지난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폭염에 가뭄까지 감내하기 힘든 여름이었다. 그 혹독함을 견디고 실하게 열매를 맺고 제 안 깊은 곳에 까맣게 씨앗을 품고 있는 모과가 대견하다. 농약을 주지 않아 벌레 먹었다는 지인의 말처럼 모과의 살 속에 벌레의 집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병충해 예방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과실이 거의 없다. 그나마 무 농약이라는 것을 위안 삼는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 농약이 좋지만 과수나무의 입장에서는 과히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무줄기 속을 파고드는 벌레부터 과수열매를 병들게 하는 탄저병까지 여러 종류의 병충해가 있지만 극심한 가뭄 탓인지 과수나방이 유난히 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모과는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고 씨앗을 튼실하게 키웠다. 모과뿐이 아니다. 이맘쯤이면 식물들이 자신의 종족을 지켜내기 위
과거 우리나라 하천 살리기 사업은 이수(利水)와 치수(治水)에 맞춰져 진행되었다. 하천과 인간의 공존보다는 도시 확장을 강조하였다. 인천시 역시 하천의 생태복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2003년 시민과 함께하는 ‘푸르고 깨끗한 하천만들기 종합계획’을 발표할 때쯤이다. 인천시가 지난달 25일 원도심 활성화 7대 핵심사업 계획에 복개된 승기천 상류부에 대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2019년부터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승기천은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하천의 유로연장은 약 10㎞에 달한다. 상류구간은 복개하여 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고, 2009년 하류 약 6.2㎞ 구간에 대해 자연형하천 조성사업을 완료하였다. 상류부는 복개되어 하수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복원구간의 시점에 복개구간을 막아놓고, 복개구간에서 방류되는 하수는 차집관로를 통해 승기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고 있다. 하천의 절반은 여전히 오염되어 하천의 기능이 아닌 하수도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국내 자치단체들도 도시 재생과 연계한 하천 살리기를 추진하였다.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노송천은 1964년 복개돼 도로와 전통시장으로 이용되어왔지만, 수질오염으로 인한 악취가
숨은 신 /한영수 흰 낙타는 속눈썹도 흰색이었다 원 달라, 원 달라, 쉰 목소리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바람이 올 때마다 사막의 마른 빵 냄새를 풍겼다 바싹 마른 다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견디고 있었다 앞무릎을 꿇고 언제라도 뒷무릎마저 굽힐 자세였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앉아보고 내리는 낙타의 잔등은 비어서 외따로 높았다 한 무리 관광객이 빠져나갔다 살구꽃이 풀리고 있었다 하얗게 어둑발이 내렸다 저녁기도 시간이 왔다 무엇일까요, 무엇일까요, 집게손가락을 제 귓구멍에 넣고 묻고 있었다 마지막 장이 찢어진 경전처럼 먼 곳에서 먼 곳으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조용했다 낙타의 눈동자에 물기가 돌았다 흰 빛이 된 말이 길고 가는 속눈썹에 내려앉았다 객관적 상관물인 낙타를 통해 ‘숨은 신’과의 관계 혹은 의미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시앙 골드만은 그의 저서 ‘숨은 신(The Hidden God)’에서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숨은 신’의 개념을 빌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극적 세계관이 바탕을 이룬다고 말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드러나
수원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추진하고 있다. 수원역에서 장안구청에 이르는 구도심 6㎞ 구간에 2022년까지 노면전차(트램)를 도입하고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행공간을 크게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트램을 운행함으써 만성적인 도시교통문제를 해소하고,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관광을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 수원시의 의도다. 트램은 건설비가 지하철에 비해 최대 5배 정도 저렴하다. 또 동력으로 전기를 사용해 매연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게다가 지하가 아닌 지상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기에 유지보수가 용이하다고 수원시는 밝힌다. 경기도내에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도입하고자 하는 곳은 수원시가 처음이지만 국내에서는 2009년에 대구 중앙로 1.05㎞구간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3년엔 서울 연세로(0.55㎞)., 부산 동천로(0.74㎞)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시는 6명의 소통매니저를 통해 이 지역 상인과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화성행궁 광장에도 ‘소통박스’라는 것을 설치해 트램과 대중교통 전용지구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견을 듣고 있다. 아무래도 이 계획에 가장 민감하게 반
어제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70대 남모 씨는 돼지농장을 운영하면서 친환경인증 부적합을 받아 손해를 봤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가 1·2심에서 패소했다. 남 씨는 9월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했고 10월 김 대법원장의 퇴근 차량에 뛰어들기도 했다. 남 씨는 이달 16일 대법원이 자신의 패소를 확정하자 을지로에서 시너를 샀고 급기야 김 대법원장을 습격했다. 어떤 이유든 삼권 분립의 한 기둥인 사법부의 수장을 겨냥한 화염병 투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나 법관 비판 등은 있었으나 대법원장을 이런 식으로 물리적으로 공격한 일은 없었다. 2010년 1월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 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용훈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계란 6개를 던져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화염병 투척은 전정권 사법부의 사법 농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현 사법부의 후속 개혁이 지지부진한 와중에 국민의 사법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경고음으로도 들린다. 양승태 사법부의 고위 법관들이 무더기 수사를 받는 데 이어 관련 현직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전국법
가난한 사람은 무기력하고 의존적이며, 당장의 삶을 연명해나갈 뿐이다.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 실천은 가난한 사람에게 덧씌워진 왜곡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2018년, 여전히 가난의 얼굴은 어둡다. 가난한 사람은 힘겨운 노동, 생필품의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경제적 여건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가난으로 인한 삶의 그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한다.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제한을 경험할 때 사람은 그 안에서 최소한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가난의 특징이다. 가난한 사람의 다양하지 못한 삶의 선택지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개인의 역량과 함께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 사회적 무시와 같은 사회적 폭력도 포함되어 있다. 사회복지는 가난의 문제를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도 삶의 주인공으로 삶의 변곡점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난은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가난은 이제 단순히 경제적
우정을 삶의 가치로 깊이 생각한 적 없다. 효를 제대로 실천해 본 적도 없고 형제도 살뜰이 챙겨 본 적 없는데 우정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감정의 낭비가 아닌가했다. 주변에서 만나지는 사람에 집중하며 좋으면 감정을 넘치게 쏟다가 마음에 거슬리면 한순간에 접기도 하는 감정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다른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궁금해하는 것은 타인의 공간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 적당하게 거리를 두어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곁을 내줄 정도의 다정함에 끌려 더 이상 숨길 것 없이 속을 보이고 나면 관계가 나빠진 상황이 됐을 때 더 할 수 없는 상처의 칼날로 마음을 다쳤던 적도 부지기수다. 감정이란 것이 예고를 하고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신기루처럼 불현듯 다가설 때도 있고 소나기처럼 잠깐 왔다가 언제인가 싶게 물러가기도 하며 먹어도 헛헛하고 가늠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라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이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어려운 것이라 여겼다. 사람을 얻으려거나 혹은 단호하지 못해 원하지 않은 기계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살다보니 우정이란 관념에 흥미를 잃었던 것도 있었다. 이렇듯 마음의 눈을 반쯤은 닫고 우정에는 메마른 나를 일깨운 하나
민방위는 항공기가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활동이다. 19세기 말까지의 전쟁은 지상과 해상에서 주로 군대끼리 벌이는 양상이었으므로 민간인이 전쟁으로 인해서 입는 피해는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그 양상은 바뀌었다. 공중 폭격에 의한 민간의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사실 1916년 독일이 최초로 항공기에 의한 런던공습을 실시할 때만 해도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짧고 폭탄 적재량이 적어서 목표지역에서의 공습은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이때의 민간 방공활동은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길거리의 시민들이 건물 안으로 대피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중에 등장한 원자폭탄과 그 뒤의 핵무기 개발은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민간에 의한 방위체제를 더한층 심각하게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민방위제도가 시작된 것은 1951년 1월 국방부에 민방공본부와 각 도에 지부를 설치한 것이 효시이다. 1972년 1월부터는 매월 15일을 ‘방공·소방의 날’로 정하여 민방공훈련을 실시했다. 그 뒤 1975년 민방위 업무를 통합, 그 해 9월 22일 전국에 민방위대가 창설되었다. 지금은 매월 15일…
지난주에 소속된 봉사단체 국제회의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어 참석하고 왔다. 호주, 싱가포르, 태국,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 회원들이 주로 참석하였고, 첫날 리셉션부터 수일간 회의하면서 각국 회원들과 많은 대화를 하였다. 의제와는 관계없지만 인상적인이었던 것은 82세의 여성으로 필리핀 재무이사가 있었는데 그녀의 자녀가 9명이고 손자, 증손자까지 합하면 직계가족이 50명이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2017년 1.05명(2018년 0.97명 예상)으로 70년대 4.43명에 비해 크게 하락한 상태이고, 현재 세계 최하위 수준에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세대가 늘고, 결혼을 해도 가급적 아이를 안 갖거나 하나만 낳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이런 저출산 추세가 계속된다면 갈수록 인구가 줄고 국가의 위상도 축소될 전망이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릴 때는 천사같이 귀엽고, 자라는 과정에는 같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즐거움이 있고, 자라서는 듬직하고 자랑스런 존재이다. 손자나 손녀가 태어난다면 귀여움은 말할 것 없고 자신의 생명이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수 있게
초·중·고교 교사들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에 하루 4시간 이상 접속하는 등 과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2017년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신동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6년 초등학교 교직원은 1인당 836.7시간을 나이스에 접속해, 하루 평균 4.4시간을 접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학교 교사는 수업일수 기준으로 하루 평균 4.8시간, 고등학교 교사는 평균 4.5시간을 접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처리할 공문이 많아서 수업 연구는 꿈도 못 꾼다”, “업무하다 틈틈이 수업한다”라는 교사의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지난 11월 국정감사 시즌에는 당일 아침에 메신저나 공문으로 담당교사에게 공문이 배정되어 당일 낮 12시까지 자료를 작성하고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그냥 수업은 하지말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단위학교에 하달되는 대부분의 긴급 공문은 촉박한 보고기한을 지정하여 교사들이 자료에 대해 인지하고 실태파악하고 작성하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경기도 S교사는 “교육청이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선점해 놓은 각종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