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징용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3년 8개월 만에 원고승소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들은 1995년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1999년 패소하자 2005년 국내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법원에서는 패소했으나 2012년 대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이른바 ‘사법농단’에 의하여 지금까지 판결이 지연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판결에서 소멸시효를 3년이라 했으므로 2015년까지 재판을 지연시켜 수만 건으로 예상되는 추가소송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2013년 김기춘 비서실장이 삼청동 공관에서 차한성 행정처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만나 판결을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설치와 판사들의 해외파견을 늘려달라고 했다. 그밖에도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법조계를 사찰하여 외압을 가하고, 내부의 비판적 판사들은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것이 사건의 내용이다. 수사가 진행중이고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
어두워지는 일 /류미야 저녁이 사력을 다해 밤으로 가고 있다 떨어진 잎새 하나 어두워지는 초겨울 가로등 불빛 아래 많은 것이 오간다 낮을 걸어 나오면 밤이 될 뿐이지, 저무는 것들의 이마를 짚어본다 불현듯 낡아 있거나 흐려지는 것들의 서리 낀 풀숲에 겨우 달린 거미줄이나 명부冥府 같은 우물에도 이 밤 별은 뜨리니 죽도록 어둠을 걸어 아침에 닿는 것이다 굳게 닫힌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다친 마음 바닥에도 실뿌리를 뻗어본다 겨울이 오는 그 길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저녁을 걷는다. 차츰 어두워지는 능선에서 검은 선이 명백하게 그어지고 있다. 어둠이란 항상 바깥에서 시작해 안으로 들어오며, 내부의 모든 빛에 스며드는 법이다. 시인은 저녁을 걸으며, 스며드는 어둠의 투박하고 자세한 골목들을 본다. 골목은 혈관처럼 집을 향해 흩어지는데, 느리고 사소하며 급격하다. 먼 곳의 희미한 냄새들처럼 모호하면서도 가볍다. 저녁을 걸으며, 이 골목들이 찍은 발자국을 본다. 발자국이란 삶의 반경이며 속도이고 망설임의 표식이다. 발을 디디면서 발바닥의 앞쪽에 힘을 주었을 때, 몸의 기울기가 생기고 그 무게만큼의 어둠이 밀려와 스며들고 흩어지며 급격해지기 때문이다. “저
경기도 2019년도 예산안이 5일 확정됐다. 24조3천604억원 규모로 역대 최대다. 고용과 분배 관련 지표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번 예산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올해 본예산 21조9천765억원에 비해 2조3천839억원(10.8%) 늘어났고 일반회계 예산 첫 20조를 돌파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수치상 ‘역대 최대’에 그쳐선 안 된다. 이재명지사가 “공정한 경기도를 닦아나갈 중대한 이정표”라 밝힌 것처럼 지속추진이 관건이어서다. 편성된 경기도예산을 살펴보면 일반회계 21조849억원, 특별회계 3조2천755억원 등 모두 24조3천604억원 이다.세입예산은 지방세수입 11조6천77억원, 보조금 8조183억원, 보전수입 및 내부거래 8천791억원 등이다. 세출예산은 국고보조사업 9조2천746억원, 시·군 및 교육청 전출금 등 법정경비 6조5천994억원, 자체사업 2조1천905억원 등이다. 그중 복지예산이 올해 7조2천191억원에서 8조9천187억원으로 1조6천996억원(23.5%) 증가한것이 먼저 보인다. 자체사업 예산은 도가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가용재원이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의 핵심 공약사업 확장 기조가 더욱 뚜렷해졌다. 청년배당에 1천227억원, 산후조
어제 인천에서 평소 심장 질환을 앓던 70대 노인이 차량을 몰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기둥을 들이받고 숨졌다. 지난 2일과 3일 경남지역에선 72살과 80살 고령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병원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만 7천여 건이었던 고령운전자 사고 건수는 지난해에는 2만6천여 건으로 1만 건 가까이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한국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 비율은 14.3%였다. 2000년엔 65세 비율이 7% 밖에 되지 않았는데 17년 만에 두 배로 늘어 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이와 함께 노인 운전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수는 11.9%씩 증가,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운전자는 약 280만명이나 된다.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2013년 8.2%, 2014년 9.1%, 2015년 9.9%로 2016년에는 11.1%였다. 최근 5년간 전체 교통사고의 12.3%를 차지했다. 나이가 들
성(城)을 만들 때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 중 하나가 식수(食水) 확보이다. 유사시 고립이 장기화되므로 식량보다는 식수 확보에 따라 항전의 기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수원화성을 처음 계획할 당시 수원천을 성 내부로 끌어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천이 성을 통과함으로써 수문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성곽에서 문(門)은 방어에 취약한 곳이다. 그래서 사대문 앞에 옹성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문(水門)은 대문과 달리 문을 여닫을 수가 없고 항상 물이 흐르도록 열어놓아야 하므로 대문보다 더 취약한 곳이 된다. 방어측면에서 보면 수원화성의 대문은 성곽과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방어는 그 앞에 설치된 옹성이 전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수문에는 옹성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곡성(曲城) 형태로 만들어 방어력을 보완했다. 곡성이란 문을 성곽 안쪽으로 꺾어 넣어 문을 숨기는 형식이다. 수문 하부구조를 보면 수문의 구조는 홍예로 돼 있으며 북(北)수문은 물이 들어오는 곳이고 남(南)수문은 물이 나가는 곳이다. 북수문은 홍예가 7개이고 남수문은 성안의 물이 더해져 북수문 보다 수량(水量)이 많기 때문에 홍예가 2개 많아진 9개로 돼 있다. 수문
1957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신성일은 서울 청계천에서 호떡 장사를 했다. 그리고 재수를 하던 중 우연히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고, 신상옥(1926~2006)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 배우 모집에 응모,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속배우가 됐다. 그때 신 감독으로부터 ‘뉴스타 넘버 원’이란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받게 된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밝게 빛난 ‘큰별’의 등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1960년 신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그는 출연 영화만 524편,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이기도 하다.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가 총 185편이었으니 당시 그의 존재감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따라서 항상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뉴스가 됐다. 특히 1964년 반항적인 주인공을 연기한 ‘맨발의 청춘’이 크게 성공하면서 ‘청춘 스타’로 대규모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고, 이 영화로 연인이 된 배우 엄앵란과 1년만에 올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하다. 여행으로 잠자리를 며칠 바꾸었더니 그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감기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오늘은 나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에게 환절기 건강관리 잘하시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평소 스포츠 중계방송 시청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에 우리나라 선수가 뛰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국내 야구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는데 며칠 전에 끝난 플레이오프 5차전은 명승부를 넘어 감동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팽팽하던 것이 5회를 넘기고 6회에 3점을 먼저 뽑은 넥센은 기세가 살아나는 듯했으나 이내 SK 외국인 선수 로맥에게 동점을 허용하는 3점 홈런으로 원점이 되었다. 기세가 오른 SK는 여세를 몰아 6회가 끝나기 전에 최항의 3점을 쓸어 담는 역전 2루타로 멀찌감치 3:6으로 도망갔다. 게임은 SK가 굳히기를 한듯해 보였고 8회가 마무리될 때는 4:9가 되어 있어 있었다. 9회 초 공격만이 남아있고 5점 차이이니 누가 봐도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였다. 아웃 카운트 세 개만 잡으면 되니 그냥 맥없이 끝날 거란 생각으로 너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9회 초에 나타난…
전국적으로 심각한 학교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금, 학교폭력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학폭위 심의건수가 지난 4년 새 전국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고, 학폭 피해 학생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된 보험 건수만 지난 5년간 6백여 건, 액수로는 4억2천5백여만 원이며, 학폭위 이후 소송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교사들의 보험 가입도 대폭 증가해 한 법률비용보험 상품의 교사 가입자는 1년 새 10배로 폭등한 상태이다. 최근 스마트학생복이 10일부터 약 일주일간 초·중·고교생 총 1179명을 대상으로 벌인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상황 및 인식 변화 등을 파악하는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작년 대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약 53.6%가 감소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으며. 그중 절반이 넘는 학생이 ‘성인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51.7%)’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과 함께 도입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이른바 학폭위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을 직접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는 처벌을,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치료나…
휘파람새 /박미라 사랑을 훔쳐서 목숨으로 쓴다는 도둑이 있었다 도둑질할 품목의 무게와 특성쯤은 알아야 한다고 한여름 생선보다 쉽게 상할 수도 있고 보관방법도 천차만별이라고 더구나 그 무게를 아는 자 없더라고 달랠 만큼 달랬는데 전설 속 대도大盜라도 된다는 듯 휘파람소리만 강물처럼 흘려보내더니 마침내 나는 눈멀고 귀멀어 도둑의 행방 환하게 보이고 찢어진 목청을 다스릴 만한데 이제, 목숨을 훔쳐서 사랑으로 쓴다는 도둑의 소식에 나는 그저 겨울로 향하는 휘파람새 소리거니 귀를 닫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훔쳐야만 살아갈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이나 자식의 사랑, 혹은 친구나 연인, 나아가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을 훔쳐 파먹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의 무게와 특성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사랑의 정체는 변화무쌍 그 자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것, 그것으로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애가 타는 일인가. 그런데 ‘도둑’은 이제, 목숨을 훔쳐 사랑으로 쓴다고 한다. 사랑으로 목숨을 살리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목숨으로 사랑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목숨이 아니라 사랑…
중·고교 여학생들이 급기야 거리로 뛰쳐나왔다. 전국 각지 여학생 모임 등 30여 개 단체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3일 서울 도심에서 ‘스쿨미투’ 집회를 열었다. 학교 내 미투(Me too) 운동을 일컫는 스쿨미투가 200여일이 지나자 교문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교육·사법 당국과 학교가 스쿨미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고 넘어가기에 급급했던 탓이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명칭의 스쿨미투 집회는 학교 현장의 민낯을 보여줬다. 이들의 목소리는 학교에 만연된 구조적 성차별 문화와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워준다. 학식과 덕행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가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는 고개를 들지 못할 처지가 됐다. 스쿨미투는 지난 4월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불을 붙였다. 이 학교 학생들이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등을 적은 메모지를 창문에 붙이면서 스쿨미투는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용화여고에서는 교사 18명이 성폭력으로 파면·해임·정직·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광주의 모 고교에서는 전수조사 결과 학생 180여 명이 교사들에게 성적인 모욕이나 추행을 당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