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지금껏 글을 쓰게 된 원동력과 계기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결핍과 슬픔이 문학의 감성을 키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뒤란에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는 공동 우물이었다. 1년에 한 차례씩 음력 칠월 초하루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물물을 다 퍼내고, 청년들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 깊은 우물을 청소하였다. 그날은 소를 잡고 무병장수를 빌며 동네가 잘 되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냈다. 나는 언제나 그 우물가에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특히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우물 속에 동그랗게 내 얼굴이 비치고 거기다 노래를 부르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어느새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물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내 마음의 근심 걱정을 씻어 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르시시즘에 도취되듯 청아하게 울려 퍼진 노래로 기분이 좋아졌다. 뒤란에 홀로 나와 우물 속 들여다보면/ 키 높은 미루나무 별빛 달빛이 잠기고/ 괜스레 느껴 울던 슬픔 잔잔히 잦아드네/ 동그란 내 얼굴에 눈물처럼 고인 샘물/ 가만히 노래 부르면 낭랑
칭기즈칸, 알렉산더, 카이사르, 나폴레옹. 이들의 공통점은 위인전 주인공이자 정복자이며 ‘전쟁영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광개토태왕, 김유신 장군, 강감찬 장군 그리고 천재적인 전략과 지도력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전쟁영웅’이란 지금까지는 왕국 혹은 국가들 간에 패권경쟁에서 남다른 전공(戰功)을 세운 자들을 위한 칭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앞선 전쟁영웅들과는 현격히 성격이 다른 전쟁영웅을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는 리차드 위트컴(Richard Seabury Whitcomb, 1894~1982) 준장이다. 필자가 한묘숙 여사(1927~2017)를 처음 만났을 때가 4년 반 전이다. 당시에는 그녀의 남편이 미군 장성이었다는 소개와 함께 이름이 ‘위트컴’이라고 들었을 때는 생소했다. 한 여사와의 교류를 통해서 남편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 주요사건들을 접하면서 점차 위트컴이라는 인물에 대해 매료됐고 자료들을 수집하면서는 빠져들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전쟁 직후 이뤄진 두 분의 러브스토리와 전쟁참화 속에서 일어난 기록적인 실화들, 그리고 위기와 반전 등의 긴장감 넘치는…
붉은불개미의 위력은 빠른 확산 속도다. 남미가 원산지인 붉은불개미는 1930년 미국 화물선에 실린 목재에 붙어 플로리다에 상륙한 뒤 몇 년 사이에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토착개미의 3분의 2를 사라지게 만드는 등 생태계를 교란시켰다니 가히 공포 그 자체다. 아시아에서는 2004년 11월 중국 광동성 일대에서 발견된 후 홍콩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때문에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은 세계 100대 악성 침입 해충으로 규정하고 있다. 생존력과 번식력도 강해 홍수나 가뭄은 물론 영하 9도의 날씨에서도 끄떡없다. 여왕개미는 그 중심에 있는 개미제국의 지배자다. 평생 수천∼수십만 개의 알을 낳으며 종족을 보존시키는데 헌신한다. 일개미 병정개미를 아무리 없앤다 해도 여왕개미를 죽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특히 홍수가 날 때도 붉은불개미는 여왕개미를중심으로 구(球)를 만들어 물에 떠다니며 견딘다. 사실 개체로서 개미는 연약하지만 군집으로서의 개미는 무시무시하다. 철저한 계급사회, 분업사회이기 때문이다. 개미는 집을 짓고 음식물을 모으고 저장하며 새끼를 기르고 전투를 치르는 모든 일이 분업화돼 있고 페로몬으로 고도의 의사소통을 한다. 개미 한 마리에게 페로몬 냄새를 없애는 올레
연화장에서 /이현지 아주 잠깐이었어 꽃으로 기억되기 까지 예고도 없이 사라졌어 붉었던 그 자리 동트기 전 떨어져버린 풋감 같은 생 날개 치듯 털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계절을 잇는 비릿한 바람 한 겹 한 겹 거느리고 제 몸을 휘돌아 나간 연꽃 진자리 세상을 살다보면 준비되지 않은 이별, 원치 않는 이별, 어쩔 수 없는 이별 등 수없이 많은 이별을 접하며 살게 된다. 불가에서도 ‘愛別難苦’라 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큰 고통 중의 하나로 여겼다. 이별 중에서도 죽음으로 빚어지는 이별이야 말로 가장 큰 아픔이고 고통이지만 그 죽음마저 속수무책,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순리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획기적으로 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산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라졌어/붉었던 그 자리” 삶이란 동트기 전에 떨어진 풋감 같은 ‘것’이라고 화자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담담히 적고 있다.그리고 꽃으로, 누구로 기억되는 것은 &ldqu…
공공기관 부채가 올해부터 늘어난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관 중장기 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39개 주요 공공기관 부채가 올해 480조8천억 원으로 5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공공기관 부채는 올해부터 매년 늘어나 2022년에는 54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채는 올해 128조1천억 원에서 2022년 150조4천억 원으로, 한국전력은 55조4천억 원에서 75조3천억 원으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공공기관 부채는 결국 국민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사업확대와 투자증가로 부채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사업을 늘리다 보니 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다. 물론, 정부의 이런 입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핵심적 목표는 이윤을 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민과 저소득층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상황에 따라서는 돈을 빌려 투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공공기관 부채도 결국 정부 부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부채가 지나치게 불어나
오죽 절박하면 부모형제,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고국을 떠나 낮선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 피땀 흘려 험한 일을 하고 있을까.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차별과 착취를 당하고 있다.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심지어는 성추행이나 폭행피해를 입어도 단속 당할 까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노동현장에서 사망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3D업종 등 중소규모 제조업이 인력난을 겪게 되면서부터다. 1992년 한-중 공식 수교 후에는 중국 동포 노동자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이들은 중소 제조업, 농축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분야에 일하면서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래서 지난 3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고용허가제 송출국 대사 간담회에서 “노동이 존중받고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외국인 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라면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권익…
봉수대(烽燧臺)는 근대 이전에 사용하던 군사통신제도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전달하였다. 운용방법은 현장의 정세에 따라 1횃불은 평상시, 2횃불은 적이 나타남, 3횃불은 적이 국경 가까이 옴, 4횃불은 적이 쳐들어옴, 5횃불은 적과 싸움 일어남 등으로 구분되었다. 조선 시대 봉수로(烽燧路)는 5개로 한양 북쪽에 3개, 남쪽에 2개가 있었다. 전국에 설치된 봉수대는 600여 개로 모두 다음 봉수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종착점은 한양 남산이었다. 병조는 매일 남산 봉수대의 정보를 종합하여 승정원에 전달하고 또 승정원은 임금에게 알리게 된다. 즉, 남산 봉수대는 봉수의 종착지로 왕이 있는 곳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처럼 종착지 봉수가 남산 이외에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수원화성의 ‘봉돈’이다. 바로 수원화성 봉돈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든 봉수대에는 5개의 화두(火竇)가 있는데 다음 봉수대에서 횃불의 개수를 인지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길어 화두 5개는 동서로 설치되어야 다음 봉수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수원의 봉돈은 동서 방향 배치가 아닌 남북으로 설치되어 정보를
기획재정부는 지난 달 17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 보좌관들이 재정정보원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십만 건을 불법 유출했다며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에 심의원은 무고 혐의로 맞고소를 하였다. 검찰은 21일 심의원실을 압수수색하였고, 심의원은 현 정부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였다. “오후 11시 이후 비정상시간대에 사용한 건수는 총 231건 4천132만8천690원, 법정공휴일 및 토·일요일에 사용한 건수는 총 1천611건 2억461만8천390원”이라고 폭로하였다. 또 지난 2일 국회에서 추가로, 세월호 미수습자의 발인식이나,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등 민감한 시기에 업무추진비가 술집에서 부적절하게 쓰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김동연 장관은 비인가자료를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려받아 공개한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였고, 심의원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청와대는 아무 문제없다고 해명하였다. 국민의 시각에서 ‘청와대 업무추진비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업무추진비가 정상적으로 쓰였는지, 아니면 위법·부당하게 집행되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또 다른 쟁점은 심의원이 불…
문신 /조정인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었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 고양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먼저 죽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위해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남겨 놓았다. 할머니는 그 자국을 쓰다듬으며 살았다. 할머니와 고양이 사이에 남겨진 발톱자국. 작고 사소한 흔적이라도 그렇게 남기고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흔적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던 식탁’처럼 그 흔적이 나에게 남게 된 것을 기꺼이 받아들 수 있다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20명 중 1명은 지난 한 달간 한 번도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 이유는 외출하려고 해도 ‘몸이 불편해서’(72.7%), ‘외출 도우미가 없어서’(12.0%) 등이다. 중증 장애인만 본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또 장애인 절반 정도는 집 밖 활동에도 불편을 느꼈다. 외출 자체가 어려우니 다른 활동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1년간 영화관람을 했다는 장애인은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사회, 문화, 여가활동 여건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권리도 행사하기 어려웠다. 특히 투표하고 싶어도 투표장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를 향상한다고 하면 장애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용 시설을 확대하고 수당을 늘리는 것을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집이나 시설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동권 보장이 절실하다. 규모가 큰 건물은 물론이고, 음식점, 약국, 편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