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속의 방 /성향숙 여자가 구멍을 통해 밖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처럼 눈부신 사물들이 둥둥 떠 있다 정지된 방 안의 시간을 이리저리 굴리며 여자는 밖의 풍경들을 재단한다 그늘 영역 넓히는 정자나무 아래 소란스런 몇 명의 아이들, 철조망 줄줄이 붉은 꽃들, 벌 떼처럼 가벼운 장미 꽃잎이 골목의 소음이 된다 마른 국숫발 햇살이 두꺼운 구름 뚫고 양철 판자 지붕 위로 떨어진다 노란 현기증이 대지에 가득 퍼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틀거리는 풍경들 겹겹의 주름 속에서 붙었다간 흩어지고 흩어지다 다시 달라붙는, 여자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깜깜하다 단칸방 창문에 격자 한 칸만큼 덧붙인 쪽유리, 안쪽에 눈동자가 매달려 있다 작은 유리 구멍 속에는 엉덩이로 걷는 여자가 산다 -시집 ‘엄마, 엄마들’ 저 쓸쓸한 독거의 아득함이라니! 구멍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칩거를 함의한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아슬아슬한 시간의 다른 이름이며 언젠가는 닫히고야 말 눈꺼풀처럼 허무한, 최소한의 소통공간이다. 그러나 유폐된 삶에서의 구멍은 전 우주에 다름 아닐 것, 엉덩이로 걷는 여자에게 구멍 밖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4일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대체복무제 시행방안의 핵심 쟁점에 대한 정부 실무추진단의 안이 발표됐다. 복무 기간은 27개월(1안), 36개월(2안)이, 복무 형태는 합숙근무만 허용(1안), 합숙을 원칙으로 하되 일부 출퇴근 허용(2안), 복무 분야는 교도소 단일화(1안), 교도소나 소방서(2안) 방안이 각각 제시됐다. 대체복무제 도입 문제는 우리 사회 내에 첨예한 이견이 존재하는 뜨거운 이슈이지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내년 말까지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체복무가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는 현역 병사들의 군 복무 기간, 내용 등과 비교해 최소한 질적 등가성이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 안을 마련하면서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고,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유지하며, 국제기준이나 판례를 최대한 존중하는 등의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원칙에 부합하는지, 보완할 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 국제기구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 이상일 경우 징벌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 다수 국가에서도 1.5배 이하를 채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27개월 안이 마련됐다고
오는 2020년 7월부터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된다. 공원 일몰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녹지를 도시공원으로 지정만 해놓고 20년이 넘도록 개발하지 않으면 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다.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에서 풀어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9년 10월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공원부지 소유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천지역에서도 상당한 면적의 공원 부지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본보 3일자 6면). 현재 인천지역에서 공원 용도로 지정된 땅은 4천740만㎡다. 이 가운데 2020년 7월 1일부로 723만㎡가, 나머지 215만㎡는 2021년에 도시공원 일몰제로 공원계획지에서 해제된다. 이 938만㎡는 여의도의 2.5배, 인천대공원의 3배, 원적산공원의 40배나 되는 면적이다. 이에 ‘공원조성촉구 인천시민행동’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미세먼지와 이상기후에 시달리는 시민에게 공원녹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2020년까지 공원 조성에 필요한 예산 중 시비 3천727억 원을 반드시 편성해 달라”고 요구했
뉴욕 맨하탄에서 보기 힘든 한국섬유예술전이란 평가를 아트지 편집장, 미술관 디렉터, 컬렉터, 뉴욕작가들과 한국 교민들에게 받은 2018국제보자기포럼 뉴욕전은 많은 성과를 냈다. 또한 병행해 이루워진 워크샵에는 처음에 너무나 당당한 표정으로 전시를 관람 후 워크샵에 와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뉴욕 자수협회장 이브와 동영상 등으로 이미 혼자 공부한 뉴욕텍스타일협회이사 데보라등이 참가하여 비단과 모시 키트로 이루워진 한국전통바느질 감침질과 상침을 배웠다. 전시장 한편에 처음으로 전시한 문화상품들은 실제 사용해 볼 수 있어 좀더 친근하게 한국섬유문화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전시를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준 뉴욕에 5천명의 회원을 가진 코리아아트소사이트 회장 로버트는 온라인으로 통하여 회원들에게 알렸고 뉴욕 컬럼리스트 오비 리는 한국섬유예술를 애찬하는 장문의 글을 썼다. 전시를 한 세크라멘트센타는 소호와 로어이스트 중간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 연극과 공연 등이 항시 개최되는 곳으로 공모를 통해 모든 것을 정하며 뉴욕시에서 운영한다. 이번 전시도 공모로 당선되어 한국섬유예술의 우수성을 맨하탄에 알리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50대 상당수가 스스로를 ‘낀세대’라고 부른다. 사이에 끼인 ‘어정쩡한’ 세대라는 것이다. 50대가 부모 부양의 책임을 지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신의 노후는 자식에게 맡기기 힘든 첫 세대가 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50대 대부분은 1960년대 태생이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막내인 63년생이 만 55세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과거의 ‘386’세대 대다수도 이제는 50대가 됐다. 공자는 50대를 ‘쉰 나이에 천명을 알았다’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쉰 나이에 ‘지천명’ 운운하다가는 ‘실없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60대, 70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연륜을 따지는 자리에선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사회는 더욱 복잡하게 변하고 전문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해서 세상 이치를 알고 적응하는 데도 굼뜨다. 덕분(?)에 신세대로부터 ‘꼰대’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삶의 만족도 측면에서도 타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거기엔 “취업이 안 돼 대학원 들어간 아들 뒷바라지하고 딸 시집 보내야 한다. 요양병원에 모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니,/ 세상이 고통속에 있으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싯달타 왕자가 모친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세상에 태어나 일곱 발짝의 걸음을 걷고 남긴 탄생게다. 이교도들이 표면적으로 결국 “불교도 자신이 신이 되고자 신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의 여지를 주는 대목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어떻게 일곱 발짝을 걸었다고 하며 또한 이 우주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하였으니, ‘오만’함의 극치 아닌가, 겸손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우니, 이보다 더한 자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하다면 결국은 불교도 ‘오만한 종교’가 아니던가.” 이교도뿐만 아니라 일본의 저명한 불교문학가인 와타나베 쇼코도 자신이 지은 책 ‘불타 석가모니’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뜻을 비슷무리하게 풀이하였다. 쇼코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와 선정, 지계와 선근에서 자기만한 경지에 도달한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은 이러한 뜻을 가리킨다”라고. 그러나 공부가 조금이라도 된 불자라면 쇼코의 이러한 표피적 견해에 공감할 수 없으며 쇼코는 명백하게 해석의 오류를 범한
지난 9월 동대표의 중임제한을 완화하는 법이 통과되어 시행에 들어갔다. 앞으로 선출공고를 2회 했는데도 일반후보자가 없는 경우에는 중임 제한 후보자도 동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중임 제한 후보자는 일반후보자가 있는 경우 자격이 상실되며, 해당 선거구 입주자 등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동대표가 될 수 있는 등 일반후보자보다 엄격하게 적용된다. 아파트의 특성상 동대표로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극소수이고 언론에서는 쉴새없이 동대표의 비리기사를 쏟아내고 같은 단지에서 비난과 시비, 다툼과 무질서 상황에서 선뜻 동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이 기회를 노린 지역사회의 오랜 집단세력이 그 지역을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법령의 시행이 확정되자마자 일부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직업적 동대표’라느니, ‘장기집권 가능성’이라느니 비판적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수년간 공동주택 관리의 많은 부분이 예전보다 엄격해지고 투명화 됐다. 많은 조치들이 개선·시행 중이다. 입주민의 30% 이상이 동의할 경우 지자체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으며,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관리비 등 47개 항목을 공
누수 /이현서 눈 내린다 춘삼월의 눈은 스쳐 간 인연의 기웃거림이다 먼 행성에서 돌아온 낯선 이름들이 눈보라로 날리고 어디선가 흘러와 스쳐갔을 내 삶의 붉은 무늬 속 단단한 그늘 미완의 악보처럼 누워 있다 바람이 물고기자리를 건너는 동안 텅 빈 겨울 숲을 해찰하던 구름은 이동 경로를 바꾸었다 위태로운 질문처럼 무수히 흩어지는 파문 영역을 넓힌 상처의 흔적마다 꿈의 살점들이 흘러내렸다 안간힘을 쓸수록 무너지는 중심 시퍼런 시간의 넝쿨이 뚝 끊어졌다 - 이현서 시집 ‘구름무늬 경첩을 열다’ 어느 날 흘러나오는 것이 있다.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내 안에 무너지지 않게 묶어놓은 중심 같은 것이다. 시퍼렇게 접어 넣은 시간의 넝쿨이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바람도 구름도 날씨도 너에 대한 내 생각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란 없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의문은 위태로운 질문처럼 주어지고 파문은 무수히 흩어진다. 그리하여 가슴 속 품었던 꿈의 살점들이 흘러내리며 입게 되는 상처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기웃거린 인연으로 이동 경로를 바꾸어간다. 그러나 단단히 뭉쳐놓은 그늘처럼 내 삶 속에 드리워져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10월 방북’ 일정이 확정됐다.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오는 7일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방문에 이어 당일 서울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방북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미 간 기싸움 속에 4차 방북 일정이 조기에 확정됨으로써 협상 동력을 살려 나갈 수 있게 됐다. 방북 일정이 확정되고 김 위원장 면담이 정해진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양측이 그동안 물밑 대화에서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대한 일정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음을 의미할 수 있어 기대를 낳는다. 8월 말 한차례 취소됐다가 다시 이뤄지게 된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은 앞선 3차례 방북 이상으로 중요하다. 앞으로의 비핵화 전망, 2차 북미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를 포함한 북미관계 개선의 방향과 속도가 사실상 이번 방북 결과에 달렸다. 양측은 초기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의 순서와 내용을 놓고 양보 없는 신경전을 펼쳐왔다. 북한과 미국 모두 대화와 협상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미국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북한은 일방적 무장해제는 있을 수 없다고 서로 신경전을 펼치며 상
국세청이 최근 5년간 탈루위험이 높은 일부 고소득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4천426명이 소득을 숨겼다. 무려 5조2천826억원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군포갑)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고소득사업자 세무조사 실적(2013~2017년)’ 자료에 드러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는 총 11조6천456억원의 소득을 신고했어야 하지만 6조3천630억 원 만 신고하고, 나머지 소득 5조2천826억원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8월에도 유명 학원과 스타 강사,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상가 임대업자, 불법 대부업자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탈세 혐의가 있는 고소득 사업자 203명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 사례를 밝힌 바 있다. 한 기숙학원은 수백만원이나 되는 월 수강료를 강사 가족 명의 차명계좌로 받았다. 상가 임차인에게 실제 임대료보다 낮은 금액이 적힌 이중 계약서를 쓰도록 하고 차액을 직원 명의 차명계좌로 받아 수십억원의 소득을 빼돌린 한 부동산 임대업자도 있었다. 탈세 방법은 참으로 다영하고 교묘하다. 자녀에게 수십 억 원을 몰래 주고 주택이나 분양권을 사면서 증여세를 탈세하고, 싸게 산 땅을 비싼 값에 되팔고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