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는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사이를 말한다. 즉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한다는 것으로 배움이 넉넉한 스승일지라도 제자를 가르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여 제자에게 가르치고 제자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성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스승과 제자관계를 일컬어 인간 최대의 만남이라고 했다. 물론 선생이라는 직책 또한 직업으로서의 명확히 정립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자기직업에 진실한 애정과 관심을 지니지 못하고 스승이 스승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 참다운 내적 역할에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애가 순탄하고 평온한 길만이 주어졌다고 지적할 수는 없으니 모름지기 학문을 연구하고 인격을 연마하는 도량에서의 선생과 학생 상호간의 관계는 존경과 신뢰로 이어진 것이 맞다. 사회 제도권 속의 획일적인 교육상황과 압박 속에서도 분명한 신념을 지니고 의연한 교육자로서의 당당한 자세와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 로빈 월리엄스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불신과 불확실의 세대에 생존하고 있는 우…
천지 앞에 섰다. 가슴이 쿵쾅대고 숨이 멎는 듯 했다. 웅장하고 푸르게 고요한 듯 힘찬 물들이 일제히 일어서 함성을 지르는 듯 했다. 말갛게 갠 하늘과 선선한 바람, 마음 같아선 태극기라도 흔들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눈을 감고 두 팔 벌려 천지를 가슴에 담았다. 눈을 감고 가슴으로 느끼는 천지는 황홀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 연상되고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흘러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불구덩이 속에서 천지가 생기고 그 용암이 흘러 금강대협곡을 만드는 장관이 그려졌다. 아득한 순간 눈을 뜨고 천지를 보았다. 화산석을 만져보았다. 포슬포슬함이 그날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이렇게 가슴 벅찬 순간이 살면서 얼마나 있었을까. 이대로 돌이 되어 천지에 머물러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이 허락한 사람만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산을 오를 때 퍼붓던 소나기가 천지 앞에 서니 거짓말처럼 그쳤다. 많은 비와 안개로 1년 중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불과 40여 일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두 번 여행에 두 번 다 천지를 보았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장군봉 백운봉 천석봉 등에 둘러쌓인 천지는 99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새로운 언어, 영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접근방식을 암시하고, 또한 지적인 경험의 확장을 의미한다. 들었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말하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언어를 잘 구사하려면, 우리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확실하고 뚜렷한 충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독창적이거나 비판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한 지적 호기심과 인간의 사상이 표현될 수 있는 무한한 방식에 대한 지속적이고 활기 넘치는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재빠른 관찰력, 적절한 흉내와 모방능력, 좋은 연상과 일반화 능력, 오래 유지되는 기억력 등이 요구된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능력을 향상시키고, 주의집중력을 활성화시키며, 조심성의 증대와 감수성을 강화시킨다. 또한 정치적, 문화적, 과학적, 학문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게 되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국제화시대에서 영어는 단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요구조건은 아니다. 영어는 이미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국제적 사고이며 문화이다. 또한 영어는 공적인 시험의 욕구충족 이외에도 해외여행에서의 더 큰 편리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사업가들은 직·간접적으로 영어 서신
노끈 /이성목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른 꽃대를 볕 아래 놓으니 마지막 눈송이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들어 남은 향기를 품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몸을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 쩡쩡 얼어붙었던 물소리가 저수지를 떠나고 있었다 묶었던 것을 스르르 풀고 멀리 개울이 흘러갔다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들여다보면 묶이는 꽃대와 묶는 노끈이 ‘나’와 ‘그’의 대립 항이 아니라 다같이 手動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부질없이 흘러가 버리는 세월을 부질없이 쓸어내는 빗자루가 우리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인연이라는 것이다. 노끈의 ‘나’ 와 ‘그’의 관계는 기쁨으로 종결되는 추억담이 아니라 이별의 아픔으로 귀착 되는 인연이다. 그래서 더 크고 깊어진 눈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들여다보고 되돌아보게 한다. “몸은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고 웅얼거리는 화자의 애절함이 독자에게 그대로…
임대사업 등록자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아직도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토부 장관이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세제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어떤 혜택을 줄이겠다고는 공개하지 않은 채 축소 방침만 밝히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는 지난 2일 등록 임대주택에 주던 세제 혜택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음지에 있던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을 양성화하겠다며 내놓은 임대등록 활성화 정책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다주택자가 집을 사는 데 임대등록 활성화 정책을 역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책변경 추진의 이유다. 하지만 시행한 지 8개월에 불과한 정책을 바꾸는 것을 두고 악용 소지도 예측하지 못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일 넘게 혼란만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다주택자 임대등록 활성화 정책의 이유는 간단하다. 등록 임대주택에 사는 무주택자가 안정적 임대료로 4년 또는 8년 이상 거주할 수 있다는 정책적 효과가 커서다. 양도세 중과세 대상인 다주택자에게 매각이나 임대등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주는 효과도 기대했다. 등록 임대사업자에게는 취득·재산세 등 지방세와 건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은 비핵화 조치와 군사 긴장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평양공동선언이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했다. 또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할 방침이다. 또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이밖에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자연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을 위한 남북 환경협력도 적극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강산 지역의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도 빠른 시일
전주시의 발표에 의하면 ‘한옥마을’은 2017년 1천109만7천33명의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증가하는 추세다. 그리고 2천만 명의 관광객을 목표로 하면서 ‘글로벌 문화도시’로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그래서 전주시에서는 ‘한옥마을’의 핵심 콘텐츠 등을 개발하려고 하는 의지 또한 강한 듯 보인다. 최근에는 ‘한옥마을 역사관’도 개관하였다. 초기 전주 한옥마을은 지금과는 달리 한옥마을의 독특한 운치가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慶基殿)과 전주향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이곳 한옥마을은 전주시에서도 가장 부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으로 1970년대 하더라도 일 년에 1만석을 거둬들이는 이들이 살았다고 한다. 1986년 개정된 건축조례에 의해 ‘4종 미관지구’로 변경 지정하여 변화를 시도했지만 재산권 침해라는 반발에 부딪쳐서 1997년에는 한옥 보존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1999년 이곳이 ‘전주생활문화특구’로 기본계획이 발표되고 2002년 전주월드컵경기장 개…
일찍부터 시작된 더위가 연일 40도에 가까이 오르며 맹위를 떨친 여름이다. 그래서 종종 몸을 일으켜 가까운 체육관을 찾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보면 동호인클럽에서 수박을 시원하게 준비해 주기도 한다. 냉장고에서 속까지 골고루 잘 냉장된 시원한 수박을 썰어 한입 베어물면 땀으로 인해 생긴 갈증과 한껏 오른 열기를 식히는 데에 얼음물보다 더 빠르게 해갈이 된다. 수박은 여름을 떠올리게 하고 여름이면 적어도 한 덩이 이상은 소비하게 되는 과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수박이 내겐 어려운 과일이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익은 수박을 고르려면 매의 눈으로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엔 꼭지를 보고 싱싱함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수확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판매하는 곳에서 슬그머니 꼭지를 떼버리기도 하여 꼭지로 신선함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박의 진한 초록색 줄의 선명함으로 잘 익은 것을 고를 수 있다는데 그 기준도 불분명한데다 눈도 허술하여 선명함을 기준삼기가 또한 어렵다. 다음엔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은 수박이란다. 이런저런 수박 고르는 상식을 다 동원해
오징어 총각과 멸치 처녀가 열렬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혼인을 하려고 양가를 번갈아 방문했다. 오징어 가문에서는 “멸치가 체구는 작아도 뼈대는 있는 집안이니 그 집 규수를 한번 얻어 보자”며 환영했다. 그런데 멸치 문중에서는 “예로부터 뼈대 없는 집안 사람들은 지조가 없어요”라며 반대했다. 거절당한 오징어 집안은 그래도 자신들은 먹 글씨 쓸 먹통도 있는 선비 집안이라며 애써 멸치 집안을 무시한다. 소설가 한승원의 동화 ‘뼈대 있는 집안, 뼈대 없는 집안’에 나오는 이야기다. 흔히 세상에서 공부깨나 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먹물 좀 먹었다는 말로 빗대곤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뼈대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먹물 좀 먹은 자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며 서민보다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입만 열면 애국 애족을 말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석연찮은 이유로 자신과 자식들의 병역은 면제받은 자들이고 대부분 미국 영주권자들이 많다. 민족의 자존과 역사의 심판을 거론하지만 친일 행위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는 자들, 모두 먹물 좀 드신 분들이다. 인간은 오징어보다는 멸치에 가까운 존재라고 한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일생동안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던 드가는 1889년에서 1992년 사이 갑자기 수십 점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눈을 쉬게 하려고 떠난 기차 여행길에서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모로코, 부르고뉴, 볼로냐 등을 여행했으며, 풍경화들은 모두 파스텔로 그려졌다. 작가의 시력이 너무나 많이 손상되어 유화작업이 어렵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대상의 정확한 묘사를 중요하게 여겼던 그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산천들은 완만하게 그려졌고 둥글둥글한 덩어리처럼 포현되었으며, 그러면서도 색은 더욱더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 시력의 손상은 화가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시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가는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전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세잔은 엑상 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며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저 사실적인 회화보다는 대상으로부터 그 안에 숨어있는 더욱 견고한 그 무엇을 끄집어내길 원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목표는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회화적 노선은 전혀 달랐다고 봐야 맞는데, 세잔의 경우 좀 더 일찍부터, 그리고 보다…